[상상사전] ‘관계’

▲ 고하늘 PD

'내가 무언가 된다는 것은 어딘가에 다다르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진화하는 방법, 더 나은 자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이다.' 미셸 오바마가 자서전 <비커밍>(Becoming)에 쓴 문장이다. 그는 책에서 '자기다움'을 강조한다. 이 책뿐 아니라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 '자기다움'을 말하는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들은 세상에서 '나'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말해준다.

김수현은 '냉담한 세상에서, 아무런 잘못 없이 스스로 질책해야 했던 나와 닮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며 책을 펴낸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김수현의 말마따나 세상은 차갑다. 힘을 가진 자는 힘없는 자를 짓밟고 가진 것 없는 이는 돈 많은 이에게 휘둘린다. 개성을 몰수하고 다양성을 배척하는 관계 속에서 개인은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신에게 초라함을 느끼며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도 한다. 관계가 수평이 아니고 수직일수록 이런 상황은 개인을 억압하고 짓누른다.

'나'를 죽이는 수직관계는 한국의 그릇된 사회체제에서 비롯한다. 가부장제는 가장이 되는 남성에게 권위를 부여해 여성과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하게 한다. 또 신자유주의 체제의 인간소외를 조장하는 물질만능주의와 1등만 살아남는 경쟁지상주의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한다. 조직은 다수의 행복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미덕으로 여겼고 정부는 국가 발전과 경제 성장을 핑계로 가정폭력과 갑질 등 반인권적 행위를 묵인하고 방조했다.

▲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행복하려면 '자기다움'을 지키며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 pixabay

미봉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수직관계에서 비롯한 문제를 감추기 급급했던 한국 사회는 속부터 곪아오다 터지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강서구 한 아파트에서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이혼한 전처를 찾아가 살인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직원 폭행 영상과 <TV조선> 대표의 초등학생 딸이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일삼는 녹음 파일이 공개돼 공분을 샀다. 이들 모두 수직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었으며 을을 향한 행동에 도덕도 윤리도 없었다.

강압적인 수직관계에서 비롯한 경직된 사회구조가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다.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행복하려면 '자기다움'을 지키며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관계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면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은 사회의 기본 단위가 개인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조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말고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삶을 존중할 때 공동체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윤종훈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