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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홍준표, 누가 ‘괴벨스’인가
[상상사전] ‘선동’
2018년 12월 28일 (금) 11:29:53 오수진 기자 rainmaker-sj@daum.net
   
▲ 오수진 기자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 고 김범석 소방관의 아버지 김정남씨는 지난 9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2014년 서른한 살에 혈관육종암이라는 희소병으로 숨진 아들의 ‘공무상 상해’(공상)를 입증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진행하며 국가에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국가는 김 소방관에게 ‘위험직 공무원’이라는 칭호를 붙여 희생을 요구했지만, 공상의 책임은 회피했다. 현대의학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희소병에 관해 피해자인 유족이 인과관계를 밝히도록 뒀기 때문이다. 1심은 증거부족으로 기각된다. 진실을 외면한 채 수집한 증거만으로 판결을 내렸고, 대중의 바람과는 다른, 그릇된 정의가 힘을 얻게 됐다.

우리 공동체는 받아들일 수 있는 증거가 있으면 정의로 인정한다. 증거만 확보하면 살인이나 거짓까지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히틀러 신화를 창조한 나치 선동가 괴벨스는 입맛에 맞는 정보를 선택해 과장하고 편견이 담긴 사진을 내보내거나 특정 주제를 반복해 대중을 그릇된 길로 이끌었다. ‘한 문장만 주면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단언하던 그였다. 대중은 대부분 자신이 주인이고 자기 의지대로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99가지 거짓과 1가지 진실이 적절히 배합된 새로운 진실이 등장하면 왜곡된 사실이라 하더라도 진실로 믿게 되는 때가 많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국가정보원의 여론 조작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 당시 모든 언론과 대중에 마녀사냥을 당했던 홍가혜씨 이야기 등이 대표적 사례다. 모두 잘못 수집된 증거나 조합된 이야기가 대중의 정서를 파고 들어 새로운 진실로 믿게 만든 사건들이다. 다수의 생각이 무조건 진실이고, 늘 옳다고 받아 들여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런 오류를 범하는 이유는 주류 언론의 무차별적 왜곡보도를 늘 접하면서 친숙해진 나머지 오보임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중 선동의 무서운 힘이다.

   
▲ 대중이 믿는 정의는 사법, 정치권력, 언론이라는 여러 배후들로부터 조작되거나 진실이 되어 완성된다. ⓒ pixabay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이 있다. 증거가 부족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에 따라 판단한다는 말이다. 법관은 공소사실에서 피고인의 혐의가 있는지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할 어떤 책무도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온 국민이 정의의 보루라 믿던 사법부에서도 수장의 재판 거래 정황이 드러났다. 간첩조작 사건에 적극 협조했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해 대중에게 잘못된 정의를 믿게 만들었다. 최종심까지 일정이 남았지만, 김 소방관 유족의 패소는 법에서조차 1가지 진실이 99가지 거짓에 묻혀 버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승리한 자가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던 괴벨스의 말이 이명처럼 들리는 이유다.

이것은 대중을 향한 경고일지 모른다. 괴벨스가 대중 선동에 참고했다는 저서 <프로파간다>에서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선전이 좋은지 나쁜지는 내세우고자 하는 명분의 가치와 발표되는 정보의 정확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대중이 믿는 정의는 사법, 정치권력, 언론이라는 여러 배후들로부터 조작되거나 진실이 되어 완성된다. 그 때문에 대중을 움켜쥐려는 여러 요인으로부터 진실된 정의를 찾으려는 조직된 노력이 필요하다. 선동에 휩쓸리는 것도 대중이지만, 선동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도 대중이기 때문이다. 대중에 의해 진실은 확산되고 정의가 된다. 대중 선동은 위험하지만 진실에 의한 대중의 각성은 사회의 안전판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24일 ‘거짓말 정권, 괴벨스 공화국이 TV 홍카콜라를 불렀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그는 또 ‘우리의 목표는 100만 구독에 하루 조회수 100만인데 그러면 괴벨스 공화국을 타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9년 한국에서 ‘괴벨스’는 누구인가? 대중의 각성과 판정에 달렸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태형 기자

[오수진 기자]
단비뉴스 시사현안팀, 지역농촌부 오수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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