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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잘잘’ 선수 ‘중간길’에 ‘두린이’도 열광
[단비스포츠] 여성과 청소년으로 저변 넓힌 야구문화
2018년 11월 20일 (화) 22:06:04 장은미 기자 josinrunmi@naver.com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사는 고등학생 신현제(18)군은 올해 전국을 7000킬로미터(km) 이상 돌아다녔다. 서울~부산을 9번 왕복하는 거리인데, 엔씨(NC) 다이노스의 원정경기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2012년 NC 다이노스 창단 이래 꾸준히 응원해 왔다는 신군은 이 구단의 ‘1호 팬’을 자처한다. 시즌권을 끊어 홈구장 경기는 전부 관람했고 원정경기도 최대한 많이 가려 애썼다고 한다. “처음엔 어머니가 반대했지만 지금은 잘 보내주신다”는 신군은 기회가 된다면 야구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관(직접 관람)의 매력이요? 현장성이죠. TV 중계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생생한 경기 모습과 응원 열기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입니다.”

술 마시고 떠드는 중년 남자의 시대는 갔다

   
▲ 지난 6월 3일 NC다이노스의 홈구장인 마산종합운동장에서 야구팬들이 응원하는 모습. NC다이노스 ‘창단 팬’인 신현제군은 “시즌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야구가 그립다”고 말했다. ⓒ 신현제

대학 휴학생인 진경희(23·여·가명·부산시 하단동) 씨는 얼마 전 4박 5일 일정으로 일본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올해 프로야구 정규시즌이 끝난 후 현지에서 마무리 캠프를 하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을 보기 위해서다. 선수들은 지난 10월 26일부터 한 달 일정으로 훈련 중인데, 진씨는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직접 사진 찍어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는 “새로 오신 (양상문) 감독님이 말도 걸어주셔서 반가웠다”고 말했다.

진씨는 평소에도 롯데 자이언츠 경기 모습을 고화질 카메라로 찍어 인스타그램 등에 올린다. 매일 연락하는 친한 언니와 야구 얘기를 하고 직관도 같이 다닌다. 선수들 모습이 담긴 열쇠고리, 스티커, 달력과 같은 굿즈(goods: 기념상품)를 직접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즐긴다. 진씨는 야구가 삶의 활력소라고 말했다. “야구하는 시간만 되면 팍팍하고 지루한 일상에 활기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지난 1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에스케이(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가 벌인 ‘5시간의 혈투’를 끝으로 올해 프로야구는 포스트 시즌까지 모두 끝났다. 하지만 신군과 진씨 같은 ‘골수팬’은 여운을 지우지 못한 채 내년 시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야구팬 중에서도 이들과 같은 여성, 청소년 관중은 야구장 안팎의 문화를 눈에 띄게 바꿔나가고 있다.

과거엔 야구 ‘골수팬’이라고 하면 중년 남자들이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선수들의 실수를 지적하며 욕설도 하는 풍경을 떠올렸다. 하지만 요즘은 야구장에 가족단위 관람객과 여성, 청소년이 더 많아졌다. 프로야구 관중이 2011년 이후 8년 연속 600만명을 돌파한 것은 여성과 미성년자 등으로 팬층이 넓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야구관계자들은 말한다. 최근 각 구단이 어린이, 청소년, 여성을 겨냥한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펼치면서 이런 흐름이 가속화하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돌 얘기 대신 투구 속도 품평

지난 8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의 서울 잠실 원정경기. 선수들의 ‘출근길’을 보려고 몰려든 70여 명 팬 중 대다수는 10~20대 여성들이었다. 원정 선수단은 보통 경기 3시간 전에 전용버스로 도착하는데, 이들 중 일부는 구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몸을 푼 뒤 다시 버스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팬들은 이를 ‘중간길’이라고 부른다. 출근길과 중간길, 그리고 경기를 마친 후 버스를 타는 ‘퇴근길’은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시간이다.

   
▲ 야구팀 원정경기의 출근길, 중간길, 퇴근길에는 선수들의 사인회가 펼쳐진다. 삼성라이온즈 외야수 김헌곤(30) 선수가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 장은미

서울에 할머니 댁이 있어서 종종 서울 원정경기에 혼자 온다는 중학생 장다연(15·경북 의성군)양은 “학교에 가면 아이돌 팬이 많지만 나처럼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다”며 “야구팬들은 어느 투수가 요즘 구속이 떨어졌다느니 하는 이야길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뿐 아니라 어린이들도 야구장의 단골손님이 되고 있다. 두산 베어스 외야수 박건우(28) 선수는 경기 전에 몸을 풀다가 종종 관중석에 있는 두린이(두산 어린이팬)와 캐치볼을 주고받은 뒤 공을 선물로 준다. 지난해 8월 22일에는 이런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혔는데, 해당 동영상은 약 19만회나 조회되며 인기를 끌었다.

   
▲ 박건우 선수와 ‘두린이’ 캐치볼 영상 갈무리. ⓒ SPOTV

박 선수의 팬이라는 김미정(26·여·가명·서울)씨는 “두린이들을 아끼는 모습이 박 선수의 매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씨는 3년 전 친구를 따라 ‘치킨과 맥주를 먹으러’ 잠실야구장에 갔다가 신나는 두산 응원에 매료돼 팬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올 들어 홈경기 직관만 30회 정도 했다는 김씨는 “올해는 ‘현생(현실생활)’이 바빠 작년보다 원정경기를 많이 못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두산 원정경기를 보기 위해 전국 9개 구단 야구장을 다 가보는 ‘전 구장 도장 깨기’를 목표로 했는데 결국 성취했다고 자랑했다.

젊은 여성팬 겨냥한 '스타 데이' 마케팅도 

이런 여성팬을 겨냥한 야구단의 마케팅도 늘어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해 구자욱(25) 선수와 박해민(28) 선수의 ‘스타 데이’ 행사를 열었다. 경기 전후와 중간에 두 선수의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를 나눠주고 팬 미팅을 진행했다. 해당 경기는 여성팬들의 열렬한 반응으로 매진됐다. 올해는 김상수(28) 선수와 다린 러프(32) 선수가 ‘라이온즈파크 스타 데이’를 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젊고 잘 생기고 경기에서 눈에 띄는 역량도 보여준다는 것. 요즘 야구팬들은 이들을 가리켜 ‘야구도 잘생긴 사람이 잘한다’는 의미의 ‘야잘잘’이라고 부른다.

   
▲ 대표적 ‘야잘잘’로 꼽히는 삼성 라이온즈의 구자욱 선수가 지난 7월 포항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후 수훈선수로 뽑혀 팬들에게 사인볼을 던져주는 모습. ⓒ 삼성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최충연(21) 선수의 잠실 경기를 보기 위해 충남 천안에서 올라왔다는 중학생 최현아(16)양은 상기된 얼굴로 “최 선수는 실력도 좋고 팬서비스도 좋고 잘 생겨서 ‘야잘잘’이란 말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양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안고독한 최충연’방을 운영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알려 준 야구 재미, 이제는 딸과 즐겨

삼성 라이온즈 팬 사이에 ‘다경엄마’로 유명한 박지나(35)씨는 “어렸을 때 아빠 손을 잡고 시민 야구장을 찾았는데, 이제 딸아이 손을 잡고 야구장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날 때 같이 캐치볼을 한다거나 구장에 가서 응원하는 것까지, 야구는 우리 가족을 이어주는 의미 있는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박씨의 딸인 초등학생 최다경(8)양은 삼성 라이온즈 구단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삼성라이온즈 TV>에 치어리더 응원을 야무지게 따라 하는 모습으로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 삼성을 응원하는 어린이 팬을 ‘삼린이’라 부른다. 치어리더 못지않게 맵시 있는 동작으로 인기를 끈 최다경 어린이. 온 가족이 열혈 삼성 라이온즈 팬이다. ⓒ 삼성라이온즈

이런 팬들의 열성이 프로야구 전성시대를 견인하고 있지만, 가끔은 무리한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팬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잠실 원정경기를 응원하러 왔던 회사원 정소현(32·여)씨는 “삼성이 잠실 원정경기를 올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직관을 하고 전국 야구장과 2군 구장까지 다니는데, 종종 ‘이건 아닌데’ 싶은 모습을 본다”고 말했다.

“광주 원정경기 때 호텔에서 투숙객들에게 민폐가 될 정도로 선수들에게 무리하게 사인 요구를 하는 팬들을 봤어요. 선수들은 투숙객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양해를 구했고요. 2군 때부터 응원한 선수들에게 특별한 팬이 되고 싶은 마음에 무리한 부탁을 하거나 부담을 주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어요.”

정희준(53) 동아대학교 생활체육학과 교수는 “현재 프로스포츠는 야구로 쏠림이 심하다”며 “응원 등 관람 그 자체를 즐기는 보다 성숙한 관중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편집 : 나혜인 기자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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