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영화 ‘B급 며느리’ 선호빈 감독

“옛날 (여자) 어른들이 그런 말 했잖아요.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저는 (아내) 진영이를 존경해요. 물론 진영이 때문에 힘들긴 하죠. 그래도 약간 대리만족도 있어요. ‘시어머니, 이거 맛없는데요?’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응원했던 것 같아요.” 

지난 1월 개봉한 독립영화 <B급 며느리>의 선호빈(38) 감독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이제 거리를 두고 가족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남들이 알 까봐 쉬쉬할 법한 자기 어머니와 아내의 문제, 고부갈등을 영화로 만든 그는 편집과정이 무척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상처를 응시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상영관이 많지 않은 독립영화의 특성상 지금까지 1만 9000여 명이 그의 영화를 봤을 뿐이지만 “여자 관객들에게 욕은 많이 먹었다”는 그를 지난 5월 30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고 지난 14일 문자로 추가 인터뷰했다.

자기 집 고부갈등 다룬 영화로 욕 많이 먹어

▲ 작업실 부근인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만난 선호빈 감독. 어머니와 아내 사이의 실제 갈등을 다룬 영화로 ‘남편이 왜 저러느냐’ 등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 윤종훈

그는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아들이자 남편인 자신이 덜 드러나게 하고, 평소 성격이 ‘센’ 시어머니 조경숙(61)씨의 발언도 줄여서 며느리인 김진영(37)씨를 중심으로 영상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처음 편집본에 감독 자신의 행동을 많이 넣었더니 ‘거대한 변명’ 같은 영화가 나와서라고 한다. 그러자 여러 시사회에서 중장년층 관객들은 ‘어머니가 착한데 진영씨가 너무 심하다’고 하고, 여성 관객들은 ‘남편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며 비난했다.

“다큐는 절대 실제가 아니거든요.”

영화 속의 선호빈과 영화감독 선호빈은 다른데도 일부 관객들은 자신을 ‘(무책임하고) 한심한 캐릭터’로 보더라며 그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고부갈등이나 부부간 충돌은 스크린에서 보여준 것 이상이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예를 들어 명절 무렵 TV를 보며 “꼭 저렇게 시댁에 가야 하느냐”고 아내가 질문했을 때 “싫으면 가지 말든가”하는 대꾸는 말다툼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안 가도 마음이 편치 않은 현실을 외면한, 무신경한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명절 문제, 부모에게 도움을 받는 문제, 가족 제사에 참여하는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을 영화는 경쾌하게 다뤘지만 실제론 스트레스가 굉장했다고 선 감독은 말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선 감독의 처지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한다.

“(사회의) 갑을관계나 고부관계가 비슷하다고 봐요. 공통점이 뭐냐면 사람이 당당하지가 못한 거예요. 우리가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으면 (부당한 일이 있을 때) ‘어머니, 다음부터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죠. 그런데 저번 달에 부모님께 30만 원 꾸고 다시 전화를 해요. 그러면 ‘야, 너 돈 필요할 땐 나한테 전화하면서 손자 한 번 안 보여주고 너무 한 거 아니냐?’하시죠. 사실 할 말 없어요. 어머니 심정도 이해가 되죠.”

전세보증금이나 생활비 등의 원조 때문에 아내에게 “한 번만 참아 달라” “이번엔 (부모님 댁에) 아들 데리고 가자”고 부탁을 했다가 결국 화를 내며 싸운 적도 있다고 한다.

“오빠가 지금 나를 어머니처럼 만들고 있는 거야” 

▲ ‘시월드’에 맞서는 발칙한 주부가 등장하는 선호빈 감독의 영화 포스터. ⓒ 영화연구소

선 감독에 따르면 아내는 결혼 후 시집 식구를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시어머니가 “왜 웃지 않니? 웃으면서 인사해야지. 다시 인사해” 등 크고 작은 간섭을 했기 때문이다. ‘시동생은 도련님이라고 불러야지’ ‘차는 며느리가 끓여와야지’ 등의 ‘관습적’ 가치들을 아내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결혼하는 순간 독립적 인격체인 ‘나’를 버리고 시댁의 질서에 순종하고 인내하는 게 당연하다고 보는 어른들의 기대를 아내는 거부했다. 선 감독은 그런 아내에게 “우리 엄마 선씨 집안에 시집와서 그렇게 희생만 하고 불쌍한 사람이니까 좀 봐줘”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김진영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오빠가 나를 지금 어머니처럼 만들고 있는 거야. 그렇게 (시댁 식구에게) 맞춰주면 그렇게 되는 거라고. 그렇게 불행한 인간을 만들고 있다고 오빠가. 난 안 해.”

설거지 등 집안일을 도맡게 된다는 것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시어머니, 저 마음에 안 들어요”라고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그게 핵심이었다. 결국 진영씨는 “시댁에 안 가겠다”고 선언했고, 선 감독은 지난 5월 어버이날에도 아들 해준(6)이만 데리고 친가에 다녀왔다. 선 감독은 회사가 통합할 때 인턴, 비정규직 등 ‘약한 고리’가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과 결혼 후 ‘약자’인 여자들 간에 고부갈등이 나타나는 현상이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 간 갈등의 배경에는 ‘가부장제적 가족주의’를 중시하는 아버지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창피해하면서도 서로를 더 알게 된 가족 

영화개봉 후 가족의 반응을 묻자 선 감독은 “부모님은 많이 창피해하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과정에서 평소 못 했던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고 온전히 이해는 못 하지만 서로를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아내 진영씨는 최근 카페에서 시간제 일을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결혼하고 돈 버는 경제행위는 처음 하는 거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결혼 후 어쩔 수 없이 진영이는 애를 키우고 저는 사회생활을 했어요. 애한테 완전히 종속되어서 한때 우울증도 왔고요. 진영이가 번역을 본격적으로 배워볼까 그러는데, 언어 감각이 있거든요.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선 감독은 몇 년 전 아들 해준이를 맡길 어린이집을 찾기 위해 인천 강화도로 이사했다. 도시를 벗어났어도 벌이가 일정치 않은 선 감독에게 이런저런 명목으로 부모들 지갑에서 나가야 하는 월 수십만 원의 보육비는 큰 부담이다. “빚을 덜 내고 양육할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한 달, 한 달이 정말 빠듯하다”고 그는 말했다.

▲ 영화 속에서 김진영씨와 선호빈 감독이 함께 사주를 보며 웃고 있다. 선 감독 부부는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영화를 본 한 남성관객은 “(보통 한국 남자들과 다르게) 아내와 대화를 그렇게 많이 하다니 훌륭하다”고 치켜세웠다고 한다. ⓒ 영화 <B급 며느리>

‘이건희 명예박사 반대’ 학생 징계 사건, 다큐로 고발

선 감독의 독립영화 경력은 2011년에 만든 영화 <레즈(Reds)>에서 시작됐다. 그는 고려대 언어학과 재학 중이던 2006년 고려대 병설 보건대 학생들이 총학생회 투표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다 출교당한 사태를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 안암동에 있는 본교 캠퍼스와 달리 당시 병설 보건대는 정릉동에 있었는데 총학생회투표권 제한 등 차별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 측이 징계내린 명단을 보니 2005년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에 앞장서 반대했던 학생들이었다.

그는 대학 측이 학생자치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보복성 징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이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도 ‘삼성 취직 못 하면 너희가 책임질래?’ 등의 목소리가 커지고 학생 운동에 반대하는 우파모임이 생겨나던 현상도 기록했다. 캠퍼스 안에 스타벅스가 들어서는 등 신자유주의 문화가 확산하는 것도 이런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이런 기록들이 영화 <레즈>의 토대가 됐다.

그의 자신의 영화가 정치적 목적을 위한 행동주의(액티비즘)라기 보다는 다소 냉소적으로 ‘모순이 있네?’하고 드러내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B급 며느리>도 이런 시선이라고 볼 수 있다.

선 감독은 앞으로 만들 영화에 대해 “1960년대 김현옥 서울시장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김 전 시장을 ‘박정희 개발독재시대의 아이콘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현재의 서울 교통망과 얼개를 다 건설했는데, 폭력적이고 과시적인 재밌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가 형성된 방식, 현재 서울이 김현옥을 극복하는 방향을 다루는 다큐를 기획 중”이라고 덧붙였다.


편집 :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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