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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누명에 ‘산 자의 고통’은 여전
[단비인터뷰]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2018년 08월 05일 (일) 19:23:11 양영전 기자 yyj4120@hanmail.net

“많은 분들이 그렇게 죽어갔는데, 우리는 살아 있잖아요. 살아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못 하면 되겠어요?”

양윤경(58)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70년 전 제주도민의 10분이 1이 처참하게 학살된 4.3사건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집안의 종손이었던 큰아버지(5촌 당숙)가 당시 경찰에 총살되는 바람에 그의 양자로 입적돼 자라야 했다. 또 작은 할아버지가 난리통에 행방불명되는 등 생계를 꾸려갈 남자 어른들이 드문 집안이라 일찍부터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귀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4.3의 진상규명을 위해 발 벗고 뛰었다. 지난 2016년 유족회장에 선출된 그는 지난 5월26일 제주시 봉개동의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단비뉴스>와 만나 “4.3문제 해결을 위해 산 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희생자 3만명,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유족들

   
▲ 양윤경(58)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이 70년 전 자신의 집안 어른들이 겪은 비극을 설명하고 있다. ⓒ 양영전

1948년 약 30만이었던 도민 중 무려 3만여명이 군·경과 서북청년단 등으로 구성된 ‘토벌대’에 죽임을 당한 제주에는 ‘4.3유족 아닌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2017년 기준 제주도민이 약 66만 명으로 늘었지만, 이 숫자와 견줘도 3만여 명은 엄청난 희생이다. 당시 미군정 치하의 좌·우 대립 상황에서 토벌대는 이념이 뭔지 알지도 못 했던 양민들에게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웠고, 학살은 이승만 정권에서까지 계속됐다. 처참한 죽음을 겪은 유족에겐 절규와 한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4.3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을 쓴 현기영씨는 출판(1978년) 직후 군수사관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4.3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헌트>의 조성봉 감독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1998년)했다.

지난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국가는 오랜 시간 4.3을 금기어로 만들었고, 도민들은 살기 위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양 회장은 이 아픈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인데 좀처럼 진전될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4.3특별법 개정안

지난 4월3일 제주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제주4.3 희생자추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대통령 방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4.3이 ‘국가 폭력에 의한 무고한 양민 학살 사건’이라며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이어 ‘항쟁, 봉기, 학살, 사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4.3의 정명(正名)을 찾는 문제’ ‘희생자·유족에 대한 배·보상’ ‘생존희생자를 위한 트라우마센터 건립’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과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4.3특별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렵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장을 지낸 이석태 변호사를 단장으로 유족회 산하 법률지원단을 구성해 개정시안을 만들고, 제주 출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논의를 거쳐 개정안에 들어갈 내용을 추렸죠. 오영훈(49·제주시을) 의원 대표 발의로 지난해 12월 법안이 제출됐는데, 지금까지 소위원회에서조차 단 한 차례도 심의되지 못했어요.”

양 회장은 지난 2000년 특별법 제정 이후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고 국가추념일이 지정되는 등 성과도 있었지만, 유족에 대한 배·보상이나 군사재판 무효화 등 숙원사항들은 법적 근거가 없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당시 군사재판을 통해 사형, 무기징역형 등을 받은 사람들의 명예회복이 절실한데 재판 기록이 없어 재심 청구도 안 된다는 것이다.

   
▲ 제주4.3평화재단 건물에 붙어있는 특별법 개정 요구 현수막. ⓒ 양영전

그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2월 국회에서 오영훈 의원 질의를 받고 “(당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군사재판은) 중대한 적법절차를 위반한 대단히 문제가 있는 과정이었으며 수형인 명부에 등재된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명예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을 상기시켰다.

“장관이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잘못된 재판이었다고 답변했는데도 국가가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겁니까? 이런 사항들을 담아내지 못하면 4.3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어요.”

그는 정치권이 말로는 유족에게 공감한다고 하면서도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데 대해 “매우 분개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야지도부는 물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들을 어렵게 다 만나서 설득했는데 국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심의가 안 됐고, 이젠 전반기 국회가 끝나 상임위원들이 다 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생존희생자 112명, 평균 나이 90세

양 회장은 인터뷰 며칠 전 98세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의 조문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113명이었던 생존희생자는 이제 112명으로 줄었다. 4.3 당시 감옥살이, 총상, 구타, 성폭행 등 온갖 고초를 겪고 그 후유증으로 고통 받으며 살아 온 사람들이다. 양 회장은 “이분들 평균나이가 90세는 충분히 될 것”이라며 “이들은 국가로부터 어떠한 배·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 분들이 죽은 다음에 해결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정치권에서는) 이것을 모르는 것 같아. 어떻게 살아왔는데 이 분들이….”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수형인명부에 오른 이는 2530명으로 집계됐다. 내란죄와 이적죄(국방경비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 중 384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또 무기징역형이 302명, 징역 20년이 97명, 징역 15년형이 570명이었다.

   
▲ 양윤경 회장은 “평균 나이가 90대인 생존희생자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4.3특별법 개정안이 꼭 처리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 양영전

양 회장은 4.3 당시 제대로 매장하지 못했던 양아버지의 묘를 6년 전에 이장한 얘기를 들려주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서른 살이던 당숙은 초가집 지붕 엮는 일을 도와주다가 마을 사람 12명과 함께 끌려가 총살당했다고 한다. 산에서 먹을 것을 찾아 내려온 사람에게 쌀을 줬다는 이유였다.

“묘를 옮기면서 내가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본 거죠. 시신을 보면서 아 그때 3만의 우리 도민들이 이렇게 죽어갔구나…. 그래서 나는 4.3에 대해 알면서도 안 나서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양자라도 이 얘기만 하면 감정 정리가 안 되는데 자식 없이 희생된 분들, 연고가 없어서 희생자 신고도 못 한 분들, 뱃속에 있을 때 부모가 희생돼 얼굴도 모르는 자식들, 이분들은 어떻겠냐는 거죠. 이분들 생각하면서 4.3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편집 : 권성진 기자

[양영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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