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어린 왕자’와 우리의 여행, 무엇이 다른가

▲ 안윤석PD

우리 눈으로 볼 때, 생텍쥐페리의 소설 속 ‘어린 왕자’의 여행은 완전히 실패했다. 얻어가는 것 하나 없이 자기 별로 돌아간다. 고생해서 지구에 온 ‘어린 왕자’가 본 거라곤 황량한 사막, 깡마른 여우, 불시착한 조종사 정도였다. 기념품이 여행 목적이었다면 더 뼈아프다. 그가 자기 별로 돌아갈 때 손에 쥔 것이라고는 불시착한 조종사가 그려준 양, 벽돌 모양처럼 생겨 차마 양이라고 부르기에도 뭐 한 그림 한 장뿐이었다. 맛있는 거 먹고, 가보지 못한 유명한 명소만을 골라 여행을 가는 우리의 시각으로 판단해본다면 ‘어린 왕자’의 지구 여행은 완전한 실패임이 분명하다.

▲ 어린 왕자가 지구에 힘들게 와서 만난 건 불시착한 조종사, 황량한 사막, 그리고 여우였다. ⓒ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

우리의 여행은 ‘실패’가 없도록 기획된다. 평소 많은 걸 포기해야 갈 수 있는 게 우리의 여행이다. 여행을 가기 위해 우리는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입고 싶은 것도 ‘다음에’로 넘긴다. 한번 가는 여행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 분위기 좋은 숙소, 유명한 관광지, 맛있는 음식은 그래서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여행 가는 목적은 다를지라도 이 세 가지 중 하나는 모든 여행객마다 공통적이다. 이 요건이 갖춰지지 못하면 여행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에서 더 바쁘다. 한정된 시간에 맛있는 음식을 하나 더 먹기 위해, 관광명소를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사진’은 많이 찍을수록 좋다. 남는 건 결국 사진이다. 현실보다 더 바쁘게 다닐수록 여행은 ‘성공’ 가도를 달린다.

분명히 ‘성공’해야 하는 여행이라면 여행 후 현실은 행복해져야 한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보면 여행의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올려진 SNS를 다시 보며 사람들은 현재를 외면하고 과거를 회상한다. 자신이 가지 못한 여행지 속 타인의 여행 사진을 뒤져보는 일도 어느새 일상이 돼 버린다. 현재를 보지 않고, 과거를 되돌아보고, 남의 여행을 부러워하면서도 우리는 여행을 통해 진짜 ‘힐링’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여행의 해방감은 잠시뿐 사람들은 다시 길을 잃어버리는 시간이 길다. 행복했던 사진을 바라보며 ‘이땐 이랬지’라 회상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 시절을 기억하며,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사람들이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여행을 갔다 와서도 아쉬움이 남는 건 ‘내가 하는 고민’이 없어서다. 현대인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로 따라가기 바쁘다. 패키지여행 판매 비중이 꾸준히 늘어간다는 분석 결과만 봐도 그렇다. 그들의 여행 ‘주체성’은 다른 사람의 ‘욕망’에 쉽게 무너진다. 마치 중세 시대에 내 뜻이 아닌 ‘신의 뜻’에 따라 여행하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남들이 한 대로’ 시작한 여행 계획은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만든 여행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찝찝하지 않을 수 없다.

진짜로 성공한 여행에는 ‘자신만의 욕망’이 들어있다. 조금 덜 봤어도,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고 먹은 게 빵 한 조각뿐이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여행이 흘러갔다면 그것은 성공한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한 대로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찾는 일”이니까.

‘어린 왕자’의 여행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 분명 실패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관광명소를 다양하게 보고 오는 것도 여행에선 중요하니까. 하지만 ‘어린 왕자’가 지구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별로 돌아간 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를 하진 않을 것 같다. 적어도 그는 현대인과 다르게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얻어갔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지구여행을 통해 ‘어린 왕자’는 그의 행성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장미가 왜 소중한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를 좋아해 주는 건 왜 기적인지, 오후 4시에 오는 사람이 있다면 왜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지는지 등을 깨달았을 것이다. 여행이 끝났을 때 ‘어린 왕자’는 비로소 자기 삶의 길을 찾지 않았을까?

‘내 주변에 익숙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다는 걸 ‘어린 왕자’가 지구여행을 통해 배웠다면 그가 맛집, 관광명소, 남겨야 할 사진, 기념품… 이 모든 것을 놓쳤다 할지라도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참 잘 실패했다’고.


편집: 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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