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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한반도를 친 적이 없다
[저널리즘특강] 한승동 전 <한겨레> 선임기자
주제 ① G2 시대의 역사 인식
2018년 06월 10일 (일) 19:12:57 조은비 양영전 임동우 기자 finestrain@naver.com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1학기 [저널리즘특강]은 한승동 김영미 오연호 강정수 이정환 최경영 박인규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역사를 제대로 살펴보면, 강대한 통일국가로 중화체제를 확립한 중국이 한반도를 공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어떤 때 공격해 왔느냐? 오히려 그 체제가 무너지거나 허물어질 때였습니다. 침략의 주체도 대부분 중국이 아닌 서북변방의 유목민들이었습니다.”

G2로 성장한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를 움직이는 강대국이 됐다. 머지않아 힘의 논리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런 와중에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이 주변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중국위협론’은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논쟁거리였다. 중국위협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과거 한반도가 중국으로부터 수많은 침략을 당해왔으니 오늘날 강성해진 중국 역시 우리에게는 위험한 존재라고 경고한다.

과연 그럴까? <한겨레>에서 도쿄특파원, 국제부장, 책지성팀장을 거쳐 지난해 말 정년 퇴임한 한승동 선임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2018년 1학기 저널리즘특강 첫 주제로 ‘G2 시대의 역사 인식’을 강의하면서 중국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강조했다.

   
▲ 한승동 선임기자는 우리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친 중국이지만 강성해진 중국을 편견 없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조은비

한반도가 수천 번 중국의 침략을 당했다고?

“고려는 417년 동안 1.09년에 한 번꼴로 침략을 받았고, 조선 왕조 519년 동안엔 1.44년에 한 번꼴로 침략을 당했다고 한다. 이 피침은 거의 대부분 중국과 일본에 의한 것이었다.” (조선일보, 2004년 5월 19일 자 기사)

한 기자가 지목한 위 기사에 따르면, 고려부터 조선 왕조에 이르기까지 약 1천년 간 한반도는 약 1500번의 침략을 당한 셈이다. 한 기자는 이 기사의 핵심이 ‘중국을 뭉뚱그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삼성 교수가 2009년에 쓴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를 보면, 이 많은 사례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사한 내용이 담겼다. 결론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중대한 침략은 중국이 아니라 서북 변방의 유목민이 자행했다는 것이다. 1627년 정묘호란과 10년 뒤 일어난 병자호란은 만주족의 공격이었고, 10세기 고려를 침략한 주체는 북방 거란족이었다. 13세기 고려를 침입한 것도 몽골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통합된 중화체제를 구축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한반도를 공격하지 않았다. 중화체제를 확립하기 전의 그들을 중국으로 통칭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 2009년 발간된 이삼성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의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는 총 2권으로 구성돼 있다. ⓒ 한길사

“이 기사는 사실이면서 사실이 아닙니다. 침략의 정의를 무엇으로 규정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이 녹둔도에서 여진족과 싸운 것이라든가 거란 등 소수 민족과 끊임없이 부딪혀 온 일들도 침략으로 봐야 할까요? 아마 <조선일보>는 1500번에 가까운 침략에 이것을 모두 포함했을 겁니다.”

상대국 똑바로 인식했다면 참변 피했을 수도

한 기자는 “동아시아의 지배적 질서가 변화할 때 우리가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나라가 망할 수도 있고 흥할 수도 있다”며 “우리가 굉장히 중요한 외교 문제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으면 전혀 다른 대처를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선왕조 비운의 왕 광해군의 중립적인 외교 노선을 사례로 들었다. 역시 이삼성 교수의 분석과 일맥상통한 관점이다.

세자 시절 광해군은 임진왜란 분조(分朝)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혁혁한 공을 세웠다. 분조는 선조가 요동으로 망명할 때 대비하여 임금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라는 왕명에서 나온 작은 조정을 일컫는다. 그러나 광해군은 임진왜란 20여년 뒤 쫓겨나고 말았다. 뛰어난 역량을 가져 촉망받던 왕이 반정(反正)이 일어나 폐위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가 중국을 섬겨온 지 2백여 년이 지났으니 의리에 있어서는 군신의 사이지만 은혜에 있어서는 부자의 사이와 같았고, 임진년에 나라를 다시 일으켜 준 은혜는 영원토록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선왕께서 40년간 보위에 계시면서 지성으로 중국을 섬기시며 평생에 한 번도 서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으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광해는 은덕을 저버리고 천자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배반하는 마음을 품고 오랑캐(후금)와 화친하였다. (중략) 천리를 멸절시키고 인륜을 막아 위로 중국 조정에 죄를 짓고 아래로 백성들에게 원한을 사고 있는데 이러한 죄악을 저지른 자가 어떻게 나라의 임금으로서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으며, 조종의 보위에 있으면서 종묘·사직의 신령을 받들 수 있겠는가? 이에 그를 폐위시키노라.’ (광해군일기 15년 3월 14일)

<광해군일기>는 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이 편찬한 실록이다. 위 서술을 통해 서인들은 중화(中華)적 세계관에 입각해 나라를 통치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국운이 다한 명나라를 지극히 섬기고 후금을 적대시했던 서인의 시대착오적 외교관은 조선이 쇠망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인조반정 4년 뒤 정묘호란이 일어났고, 10년 뒤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후금이 조선을 공격한 이유는 화친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정 후 나라를 장악한 서인들은 강대국으로 부상한 후금과 화친하기는커녕 오히려 망한 명나라에 사대했다. 이에 심기가 불편해진 후금이 중원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한 것이다. 반면 광해군은 통치 시절 후금에 적극적으로 사대하면서도 첩보작전을 펼치는 등 능동적인 외교술을 펼쳤다. 광해군의 역사 인식은 정확한 것이었다. 한 기자는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았더라면 조선이 이토록 비극적인 참화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서인의 잘못된 현실 인식이 조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한승동 선임기자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 양영전

G2 시대 대비해 편향된 이데올로기서 벗어나야

‘G2’는 중국이 세계적으로 떠오른 것을 시사하는 말이다. 동시에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지속된 미국 일극체제의 종결을 함축한다. 이는 구체적인 경제 수치로도 확인된다. 화폐 구매력으로 GDP를 조정해 상대적 실제 구매력을 나타낸 평가지수(PPP)에서 지난 2014년 중국은 미국을 넘어섰다. 중국의 세계적 부상은 전 세계적 권력 교체를 필연적으로 예고한다.

   
▲ 중국의 시진핑과 미국의 트럼프가 2017년 11월 중국에서 회담을 했다. 두 정상의 만남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지속된 미국 일극체제의 종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SBS 8시 뉴스

전 세계적 권력 교체기에 한국은 충분히 준비를 마쳤을까? 한 기자는 오늘날 한국이 세계적 권력 교체기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의 모습이 명·청 교체기 조선과 비슷하다고 보는 까닭이다.

명·청 교체기 당시 조선을 지배한 서인들은 권력 교체를 제대로 읽어내지도, 읽으려 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조선은 병자호란을 피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주류 세력 또한 지난날 조선의 서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이 급부상하는데도 여전히 미국만을 바라보고 있다. 되레 중국의 부상을 애써 평가절하한다. 대중에게 중국의 부정적 이미지를 계속 주입하는 이미지 정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다.

“중국을 지지하라거나 ‘친중파’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편향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현재 중국의 실상을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병자호란 당시 조선 민중 50만이 청나라로 끌려갔던 것과 같은 참혹상이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편집 : 김서윤 기자

[조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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