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삶’

얼마 전 <한겨레>에 스타일리스트 보조가 겪은 열악한 노동 조건을 폭로한 기사가 실렸다. 매일 옷 수십 벌을 들고 홍보대행사가 몰려있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돌아다니고, 20시간 가까이 일하고도 월급 50만원밖에 손에 쥐지 못하는 20대 초반 스타일리스트 보조들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참 힘들겠다’ 생각하며 스크롤을 내리다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징징대지 좀 마라’거나 ‘그러게 누가 그런 일을 하래?’ 따위 반응이 여럿이었다.

‘그런 일’이 뭔지 직감적으로 이해가 됐던 건 나 역시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하면 망한 인생’이라는 한국 사회의 오랜 협박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얼마 전 JTBC 한 강연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학생이 자기 삶을 소개하며 사용한 사진 한 장을 소개했다. 폭 1m도 안 되는 구불구불한 벼랑길에서 사람들이 위태롭게 자전거를 타고 있다. 이 사진은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붙잡을 데 없는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았다는 고백이다.

▲ '괜찮은 삶'이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만을 위한 포상으로 전락한 사회는 모두를 패자로 만들 뿐이다. © Pinterest

대학에서 더 ‘그럴듯한’ 전공을 공부하고 더 ‘번듯한’ 직장을 구해도 ‘징징댈’ 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지방 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친구는 관사 옆방에 사는 부장 교사의 괴롭힘을 피해 관사에서 멀리 떨어진 시내로 이사할 생각이다. 50대 유부남 부장은 시시콜콜 연락을 하고, 밥을 먹자며 불러내고, 한사코 거절해도 차로 학교에 데려다주겠다고 고집을 피운단다. 몇 번 핑계를 대고 피했더니 “튕긴다”며 언짢아했다고 한다. 임용고시에 어렵게 합격한 그는 어디 하소연도 못 하고 학교를 옮길 날만 기다린다.

헨리 소로우는 <월든>에서 철도가 놓이기 시작하던 미국의 초기 산업화 사회가 어떻게 인간을 소모하고 착취해 인간적인 삶으로부터 소외시키는지를 통렬히 비판한다.

“사람이 철로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다. 실은 철로가 사람 위를 달리는 것이다. 철로 밑에 깔린 저 침목들이 무엇인지를 당신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침목 하나하나가 사람이다. (중략)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철로 위를 달리는 즐거움을 맛본다면 다른 사람은 그 밑에 깔리는 불운을 당하게 된다. (중략) 기차가 몽유 상태에서 걸어가던 사람 하나를 치어 그의 잠을 깨워놓으면 사람들은 기차를 세우고 이것이 무슨 예외적인 사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야단법석을 떤다.”

지난해 11월 산업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생을 달리한 서귀포산업과학고 3학년 이민호군 소식에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다. 실업계고 취업률을 무조건 높이려 했던 정부, 지원금에 눈이 멀어 학생 안전을 외면한 학교, 비용 절감을 위해 현장실습생에게 과도한 책임을 맡기고 혹사시킨 업체, 그러나 그들만의 잘못일까? 학력, 나이, 재산, 성별, 직업 등으로 삶을 줄 세워 어떻게든 착취하려는 구실을 만드는 신자유주의 논리에 동조한 이들이 책임에서 자유롭다 할 수 없다.

장벽을 넘기 위해 맨몸으로라도 장벽에 매달려야 하는 노동 현실을 외면한다면, 사고는 예고된 것이고 착취는 제도화한 것이다. 장벽도 함께 힘을 합하면 부술 수 있다. 힘을 합하려면 내 마음속 장벽부터 부숴야 한다. 가진 자는 갖지 못한 자에게, ‘불로’소득자는 ‘근로’소득자에게, 정규직은 비정규직에게, 교수는 시간강사에게, 명문대학생은 지방대학생에게 갖는 구별 짓고 싶은 욕망부터 내려놔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11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2학년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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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양영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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