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교양특강] 이나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트럼프 2기의 키워드는 ‘세계화가 엘리트만을 이롭게 한다’는 반글로벌주의에 기반한 고립주의,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라이벌 중국에 대한 반중국주의, 이상주의가 아닌 거래주의(transactionalism), 그리고 다자주의가 아닌 양자주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20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이나경(39)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트럼프 2기의 국제정치와 한반도’를 주제로 강연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 인문사회교양특강 연사로 초청된 그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주창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이은 미국 우선주의가 5가지 중 핵심이라고 꼽았다.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국가안보실 자문위원, 국제통화기금(IMF) 프로젝트 공동연구자 등으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연구와 자문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구현하는 무기 ‘관세’
이 교수는 “트럼프 시대의 통상 정책을 한 글자로 줄여보면 관세”라며 “공정무역과 상호관세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상대국과 똑같은 수준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활용해야 무역이 공정해지고, 무역적자를 해소하며, 해외에 뺏겼던 제조업 일자리를 되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논리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트럼프 시대에는 관세가 전통적인 무역협상의 도구를 넘어서 다른 정책을 관철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고 말했다. 이민과 국경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관세를 적극적으로 동원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임기 시작과 함께 불법 이민과 마약 통제를 명분으로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 교수는 관세가 달러의 지위를 방어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가 미국 달러에 대항해 자체 통화를 기축통화로 만들려고 하는데, 미국이 ‘관세로 보복하겠다’ ‘미국 시장 접근을 차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경제적 일관성은 없다”며 “외교협상의 도구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정부 주요 인물 성향 파악하고 대응해야
이 교수는 트럼프 1기 때 주요 장관 등이 고립주의와 관세정책에 반대해 사퇴하거나 해임되기도 했지만, 2기에는 트럼프에게 반발하지 않는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가 핵심적인 ‘관세 3인방’이다. 이 교수는 “러트닉 장관은 시총 3위 가상화폐 ‘테더’의 대주주로 트럼프의 친암호화폐 정책과 긴밀한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고 베센트 장관은 헤지펀드 출신으로 은행 규제완화를 지지하며, 그리어 대표는 1기 관세정책에도 관여했다”며 한국이 이 3인방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국이 자동차·배터리·반도체 등 한국에 타격이 큰 품목에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 삼성과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중국 내 생산기지를 둔 한국 기업에 공급망 전환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폐지해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줄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해당 법안을 통해 이득을 보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이 공화당 우세주에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2026년 미국 중간선거와 2028년 대선에 영향을 미칠 스윙스테이트(특정 정당이 압도적으로 지지받지 못하는 경합 주)를 겨냥해 투자 등을 추진하는 전략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이런 지역에 공장을 지으려다 잘 안돼 몇만 명의 고용기회가 사라지면 큰 문제이기 때문에, 다음 대선을 노리는 제이 디 밴스 부통령이나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대화하며 새 교역국 발굴 등 ‘투트랙’ 필요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박세은(27) 씨는 양자주의 성향의 트럼프 정부와 협상하면서 한국이 별도의 다자외교를 위해 노력한다면 미국이 ‘반미’로 보지 않을지 물었다. 이 교수는 “미국과의 대화 테이블에는 꾸준히 참여하면서도, 트럼프 초창기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교역국을 발굴하는 양방향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런 접근이 미국에 특별히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반미로 보지는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같은 대학원의 황두길(27) 씨는 “국가 혹은 기업 차원에서 트럼프의 상호관세에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 교수는 기업 차원에서는 스윙스테이트에 투자를 하거나 공장을 짓는 것이 중요하고, 정부 차원에서는 인적 네트워크를 잘 파악해 로비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특히 “트럼프는 국민들한테 ‘내가 이걸 했어’하고 생색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색을 낼 수 있는 것들을 좀 카드로 주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같은 대학원의 김현재(29) 씨는 북한과 미국의 핵협상 가능성과 한국의 자체 핵무장 논의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이 교수는 “트럼프의 양자주의 성격을 고려하면 북한과 단둘이 협상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핵무장에 관해서는 “한국이 핵보유를 하면 일본과 대만도 핵을 보유하고자 하는 연쇄효과로 인해 국제 정세가 불안해진다”며 “미국 의회에서도 반대할 것이므로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