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태 칼럼] 방통위원장 탄핵심판 기각을 계기로 살펴본 방통위 구조의 문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직무에 복귀했다. 지난해 8월 2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지 거의 여섯 달 만이다. 여섯 달이라면 헌법재판소법에 규정된 180일이라는 심판기간을 거의 다 채운 셈이다. 탄핵심판은 국회의 탄핵소추만으로 무조건 대상이 되는 공직자의 직무가 정지되기 때문에 헌재에 특별히 신속하게 처리할 의무가 부과되어 있다. 통상 법원과 헌재는 이런 류의 기간을 강제력을 갖는 규정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걸려 있는 선거법 재판이 1심 6개월, 2심과 3심 각각 6개월이라는 법률 규정이 있음에도 2022년 9월에 기소된 뒤 지금까지 1심만 끝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탄핵심판은 거의 9개월 만에 기각됐으니 이진숙 위원장 건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와중인데도 빨리 결론이 나온 셈이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 사건 선고기일 재판이 열렸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 사건 선고기일 재판이 열렸다. 연합뉴스

헌재가 나름 이진숙 위원장 탄핵심판을 서둘러 마무리한 이유는 아무래도 방통위라고 하는 중앙 행정기관이 완전히 기능 상실 상태에 놓여 있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 정부 부처들은 장관이 없으면 차관이 직무를 대행하면 어떻든 실질적으로 큰 문제 없이 운영될 수 있다. 하지만 위원회 구조인 방통위는 다르다. 방송사업자 인허가와 승인 등의 업무를 포함한 각종 방송 규제 업무, 통신에 대한 전반적인 규제 업무가 방통위에 맡겨져 있다. 하지만 방통위는 독립성을 이유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 차관으로 이어지는 체계가 아니라 5명의 위원이 주요 사안을 의결로 정하도록 하는 위원회 조직이다. 대통령이 지명하는 위원장은 장관급, 부위원장을 포함한 그 밖의 4명의 위원은 차관급인데, 3명은 국회가 추천한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원래의 구조 설계에는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이 3명, 야권이 2명을 추천해 3대 2의 구조를 상정하고 있다.

정권 잡으면 방통위 장악 시도…충성도·전투력 중심 위원 선임

현 정부 들어서서 이 방통위가 온전히 5인 체제로 운영되지 못한 기간이 훨씬 길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 정상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리하게 방송통신 정책에 전문성이 없는 사람을 무리해서 위원장이나 위원으로 보내는 것은 기본이다. 정권을 잡으면 어떻게든 방통위를 장악하려고 위원장 교체를 무리하게 밀어붙였고, 정치색 짙은 사람들을 위원으로 앉히려고 다들 애를 썼다. 전문성보다는 해당 진영 내에서의 충성도와 상대방과의 싸움 실력이 더 주요하게 고려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기본적으로 방통위원들의 임기는 3년이다. 대통령 임기든 국회의원 임기든 딱딱 맞아 돌아갈 수가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처럼 대통령 임기보다 임기가 길어서 교체 주기가 넉넉한 것도 아니다. 사실 방통위는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라고 위원회 구조로 만들어 여야가 구성에 참여하게 한 점을 생각해보면 대통령 임기와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의 한국처럼 방송언론, 특히 공영방송의 감독권을 누가 갖느냐를 두고 정치권이 쟁탈전을 벌이는 상황이 되면 말이 달라진다.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이전 대통령이 임명한 방통위원장과 방통위원들이 임기를 유지하고 있으면 앞에서 설명한 여야 사이의 3대 2구조가 실현되지 않는다.

방통위원 구성이 유지된 상태에서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어 대통령이 바뀌면 이제 방통위는 여야가 2대 3인 여소야대 기구가 된다. 중앙행정기관의 지위를 갖는 기관인데 여소야대로 운영된다는 점에 위원장이 전임 정부가 임명한 정치색이 분명한 사람이라면 새 정부로서는 눈엣가시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방통위는 양대 공영방송인 KBS, MBC의 감독기구를 구성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사실상 이들 방송사의 사장 선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방통위 구성을 놓고 정치권이 사생결단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결국은 방송사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걸려있기 때문인 셈이다.

지금와서 최근에 방통위에서 벌어졌던 활극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임기가 남은 방통위원장을 몰아내기 위해 감사원을 동원해 잘못을 찾아내는 것은 기본이고, 한발 더 나가 수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별일 없으면 배석하던 국무회의에 부르지 않으면서 싫은 기색을 확실히 드러내는 일도 있었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 취임 당시 위원장은 한상혁이었는데 배석할 일이 없다며 국무회의에 부르지 않았다. 어차피 방통위원이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방송통신 정책만 하더라도 당장 문화체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관련성이 크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관련 안건이 없다며 회의 배석을 막은 것이 얼마나 속이 훤히 보이는 조치인지 알 수 있다.

방통위를 둘러싼 이런 실랑이는 위원들이 하나 둘 임기를 마치고 나갈 때마다 커져갔고, 대통령 지명 몫을 제외하고는 임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위원들만 존재하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2인 체제가 거의 기본이 되다시피 했다. 심지어 지난해 7월 25일부터 7월 31일까지는 방통위원이 아무도 없는, '0인 체제'였던 시기도 있다. 김홍일 위원장이 탄핵소추안 처리 직전 사퇴한 데 이어 이상인 직무대행까지 탄핵소추안 처리 전에 사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통위 운영이 엉터리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몇 가지 논점들을 생각해보자.

헌법재판소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한 지난달 23일 경기도 과천시 방송통신위원회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한 지난달 23일 경기도 과천시 방송통신위원회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위원 자격 제한 강화해야…정당원·캠프 활동 등에 '3년 제한' 필요

먼저 위원의 자격이다. 지금도 일정한 위원 자격 제한이 있다. 최초로 방통위가 만들어질 때에 비해 지금은 조금 더 강화된 제한 기준이 있다. 하지만 부족하다. 방송사업자 쪽 사람이 규제기구인 방통위원이 되는 것은 퇴직 후 3년이라는 제한을 통해 포괄적으로 막아놓았다. 하지만 지금도 정치권 출신이 낙하산으로 오는 것에 대한 대비는 부족하다. 현재 당원이 아니기만 하면 되는 기준을 '3년 이내에 당원이었던 자'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선과 총선 캠프 등에서 공개된 직책을 맡은 사람, 대통령직 인수위원만이 아니라 인수위 등에서 정식 직책을 맡은 사람, 대통령 참모 등은 역시 3년 동안은 배제해야 한다. 단순히 지지 선언에 이름 올리는 것을 넘어서서 실제로 선거운동을 한 분들은 일정 기간은 언론 관련 업무에는 거리를 두는 게 스스로도 당당할 것이다. 이런 기준만 도입해도 최근 논란이 된 많은 분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이진숙 위원장도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선거 캠프에 이름을 올렸고,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는 공개적인 지지 활동도 벌였으니 여기에 해당하는 셈이다.

배제 기준만이 아니라 전문성에 대한 기준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판사나 검사, 변호사는 15년 이상 경력만 있으면 어떤 일을 했든 자격을 인정한다. 하지만 방송, 통신, 행정 등에 관한 사건을 어느 정도 다룬 경험이 있는지를 실질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명확한 계량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자격 기준은 있어야 한다. 실제로 인사청문 과정에서 관련된 전문성을 꼼꼼하게 조사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 진영에 대한 충성도나 전투력을 위원을 뽑는 기준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임기는 6년까지 늘리고 후임 올 때까지 자동 연장 필요

임기도 고민할 대목이다. 나는 이런 정도의 어려운 기준을 적용해서 적임자를 뽑는다면,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들처럼 6년 정도의 임기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딱 두 배다. 연임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방송과 통신 정책은 어려운 분야다. 복잡하고 미묘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적절한 규제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일반적인 행정 업무와는 성격이 다르다. 좀 심하게 말하면 3년 동안 잠깐 봉사하고 본업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득하게 자리 잡고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의미에서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임기도 미국처럼 종신제로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10년씩으로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임기를 늘린다면, 최소한 위원 구성을 놓고 벌어지는 쟁탈전이 지금처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제안이 더 있다. 임기 종료에도 불구하고 후임이 오지 않는다면 임기가 자동 연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위원의 임기가 5년인 미국 FCC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렇게만 해도 방통위가 위원 2인 체제, 1인 체제, 심지어 0인 체제가 되는 일은 피할 수 있다. 그럼 방통위 설치법을 만들 때 왜 이런 부분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이지만 지금 같은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 여야 대치가 벌어질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이미 우리가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이상, 이제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의결정족수 명시해야…민감 쟁점은 '4인 찬성' 특별의결정족수 필요

방통위의 의결정족수 문제도 큰 쟁점이 됐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방통위원이 임기를 마쳤다고 자동으로 임기 종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후임이 올 때까지 임기가 자동 연장되는 것으로 한다면 의결정족수가 문제 될 상황은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3인 이상의 위원이 찬성해야만 의결할 수 있다는 정도의 기준은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단순히 3인 참석이 아니라 3인 의결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사안에 대해서다.

사실 이 의결정족수 규정을 잘 만들면 방통위를 정치적 논란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다. 공영방송 이사진 결정과 같은 정치적 쟁점 사안을 결정할 때는 위원 4명의 찬성이라는 특별의결정족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KBS 이사 추천이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을 할 때 위원 4명이 찬성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기본적으로 이는 방통위의 3대 2 구조를 넘어서는 요건이고, 결국 여야가 정치적으로 타협하지 않으면 의사결정을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야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어느 한쪽이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로 방통위를 채우거나 공영방송 감독기구를 채우는 일은 피할 수 있다. 타협과 합의, 절제의 전통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런 족쇄를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조건들은 어떻게 보면 매우 가혹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자기 스스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대통령이 총선에서 참패하자 갑자기 부정선거 의혹을 들고 나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와 선관위에 군부대를 투입하는 일은 현실적인가? 명색이 중앙행정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수시로 2인 체제로 유지되고 1인 체제는 물론 수시로 0인 체제가 되는 것은 현실적인가?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방통위원장을 감사와 수사권을 동원해 쫓아내고, 야당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통위원장마다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쫓아내거나 직무정지시키는 상황은?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조금은 더 원칙적인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격전장이 된 방통위 구하려면 특단의 조치 강구해야

지난달 23일 헌재의 탄핵안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경기 과천시 방송통신위원회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헌재의 탄핵안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경기 과천시 방송통신위원회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방통위는 방송 규제의 중심축이다. 공영방송은 물론 모든 방송에 대한 정권의 통제는 방통위를 통해 구체화된다. 이진숙이 방통위원장이 되자마자 했던 일이 공영방송 이사진을 바꾸는 일이었다는 것이 그것을 보여준다. 현 정부 들어서 야당인 민주당이 특정 정부 기관의 장에 대해 모조리 탄핵소추로 압박한 것도 방통위가 유일하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심지어 위원장 직무대행도 탄핵소추 대상이 됐었다. 이렇게 치열한 격전장이 된 방통위를 구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기왕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방통위 구조에 대해, 여야는 물론 언론 단체들도 조금은 지금과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볼 수는 없을까?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개편을 한다는 것은 현재의 방통위 1기 체제를 완전히 종료하고, 사실상 방통위를 새로 출범시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치자면, 기본 프로그램의 문제를 놔두고 계속 업데이트 패치를 덕지덕지 붙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삭제 후 재설치’를 해보자는 것이다. 방통위 체제를 이렇게 근본적으로 바꾸는 입법을 통해, 기존의 방통위를 삭제하고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닌 사람들로 새로운 방통위를 재설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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