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충북 제천시 시골 마을엔 여전히 ‘배제된 이동권’

충북 제천시 봉양읍 삼거1리 두무실에 있는 집 앞에서 농작물을 정리하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강선각(왼쪽), 이순하 씨 부부. 이예진 기자
충북 제천시 봉양읍 삼거1리 두무실에 있는 집 앞에서 농작물을 정리하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강선각(왼쪽), 이순하 씨 부부. 이예진 기자

‘이동할 권리’ 보장받기 어려운 읍·면 지역

충북 제천시 봉양읍 삼거1리에 두무실 마을이 있다. 봉양읍까지는 약 7 킬로미터(km), 제천 시내 중앙시장까지는 8km 정도 떨어진 산골 마을이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농사일에 필요한 농약을 사고, 병원에 가고, 머리를 다듬으려면 읍이나 시내로 가야 하는데 양쪽 다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버스 같은 대중교통도 마땅찮다. 이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까지 거리는 1km가량 된다. 무릎이 안 좋은 이순하(81) 씨가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거의 30분이 걸린다. “자꾸 넘어져서 신경을 다치는 바람에 지팡이를 꼭 짚고 걸어야 해요.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숨도 많이 차고.” 시내버스가 조금 일찍 와서 차를 놓치는 날에는 집으로 다시 걸어온다. 왕복 1시간을 허비하는 셈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엔 택시를 타는데 시내까지 편도에 1만 7000원, 왕복하면 3만 원이 훌쩍 넘는다. 이 씨는 “병원에 갈 일이 많은데 자주 갈 수 없으니 시내 가는 날에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를 한꺼번에 간다”고 말했다. 이 씨와 남편 강선각(83) 씨는 나이가 더 들면 병원 갈 일이 더 잦아질까 걱정이 태산이다.

봉양읍 삼거1리 제비골 자택 앞에 이상철(오른쪽) 씨와 채임선(왼쪽) 씨가 서 있다. 이예진 기자
봉양읍 삼거1리 제비골 자택 앞에 이상철(오른쪽) 씨와 채임선(왼쪽) 씨가 서 있다. 이예진 기자

이상철(84) 씨와 채임선(73) 씨가 23년째 살고 있는 봉양읍 삼거1리 제비골 마을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거리는 1.3km가량이다. 길이 좁아 시내버스가 마을까지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한참 걸려서 버스를 탄 기억이 없어요.” 평소에는 이웃들의 차를 빌려 타지만 이웃들이 집에 없는 날엔 일반 택시를 타야 한다. “중앙시장까지 가는 데 1만 원, 조금만 멀리 가면 3, 4만 원 넘어요.” 세금을 내고, 병원에 가고, 약을 사기 위해 시내로 가야 하지만 비싼 교통비 때문에 쉽게 나서려는 마음을 먹기 어렵다.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서면 꽉 차는 제비골의 좁은 길목. 이예진 기자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서면 꽉 차는 제비골의 좁은 길목. 이예진 기자

주민 발이 되어줄 교통수단으로 도입된 행복택시

제천시 읍·면 지역은 이미 고령화가 심각하다. 지난달 말 기준 인구 현황을 보면 제천시 전체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5%를 조금 넘는 수준인데, 8개 읍·면 지역으로 가면 그 비율이 무려 45%를 넘는다. 거의 절반이 고령인구인 셈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제천시는 승객의 호출을 받고 운행하는 수요응답형 교통체계인 행복택시를 교통 취약지역을 대상으로 운행하고 있다. 2015년 전라북도 완주군이 전화로 버스를 부르는, 이른바 ‘콜버스’를 도입한 이래 전국 지자체별 교통 취약 지역에 비슷한 교통 서비스를 잇달아 도입했다. 경기도는 ‘똑버스’, 제주는 ‘옵서버스’ 등의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행복택시는 충북도가 2015년 8월부터 ‘시골마을 행복택시’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사업으로, 올해로 시행 9년을 맞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제천시 내 행복택시가 다니는 읍·면·동은 모두 7곳이다. 한번 이용할 때 이용자는 1500원을 내고, 나머지 요금은 시비 45%, 도비 30%, 국비 25%로 대부분 지자체가 부담한다. 행복택시는 주민들이 발급받은 전자카드를 갖고 이용할 수 있다. 이용 횟수는 한 달을 기준으로 1인 가구는 8회, 2인 이상 가구는 12회다. 차량을 갖고 있으면 1인 가구는 이용할 수 없고, 2인 이상 가구는 5회를 이용할 수 있다. 그달에 이용하지 않았다고 이용 가능 횟수가 이월되지 않는다. 택시를 탈 때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행복택시 카드를 전용 단말기에 대면 GPS로 탑승 위치와 하차 위치를 인식해 운행구간과 요금을 자동으로 확인한다.

모든 교통 취약계층에 가닿지 못하는 행복택시

행복택시는 실제로 교통 취약지역에 산다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은 아니다. 행복택시 운영에 관한 조례에 나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사는 지역이 5세대 이상에 주민이 10명 이상이 사는 마을이어야 한다. 같은 면에 산다고 모두 행복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용할 수 있는 구간도 제한이 엄격해서, 해당 마을에서 읍·면 소재지나 전통시장을 가는 경우만 행복택시를 탈 수 있다. 또 제천시 조례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행복택시가 운행하기 위해선 충북도 기준에 따라 버스 노선이 없거나, 있더라도 버스 정류장에서 700 미터(m) 이상 떨어진 마을이어야 한다. 버스 정류장이 가깝게 있으면 행복택시를 탈 수 없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행복택시 조례에 규정된 운행 요건을 모두 갖춘 지역이라고 해서 실제로 행복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행복택시를 운영하겠다는 택시 사업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행복택시가 운행하는 지역 7곳 가운데 백운면에 3대, 화산동에 2대가 등록돼 있을 뿐, 나머지 면 지역은 각각 등록된 행복택시가 1대씩뿐이다.

더구나 행복택시 운행 요건을 갖춘 지역이지만 행복택시 사업자가 아예 없는 곳도 있다. 제천시에서 유일한 읍 단위 지역인 봉양읍에는 계속 행복택시 사업자가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 2015년 행복택시 사업을 시작한 뒤로 봉양읍에서 행복택시가 운행한 것은 지난 4월과 5월 두 달 뿐이었다. 올해도 제천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봉양읍과 송학면의 행복택시 운송 사업자를 추가 모집한다는 공고가 세 차례 올라왔지만, 지원자를 구하지 못했다. 올해에는 제천시 전체에서 51개의 마을이 행복택시 운행 대상으로 선정됐는데, 봉양읍에 있는 마을 4곳을 포함한 마을 7곳이 사업자를 구하지 못해 지금은 44곳에서만 행복택시가 운행 중이다.

수요에 바로 응답하지 못하는 수요응답형 교통수단

지역별로 등록된 사업자가 적다 보니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이라고 해서 항상 택시를 탈 수도 없다. 해당 지역에서 택시를 운행하는 사업자가 일을 하지 않는 날이면 그 지역에서는 그날은 행복택시가 없는 것이다. 행복택시 사업자로 나섰던 택시 기사들이 수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그만두기도 한다. 봉양읍에서 지금까지 단 두 달만 행복택시를 운행한 것도 처음으로 행복택시 운행에 나섰던 사업자가 두 달 만에 그만뒀기 때문이다. 봉양읍 두무실에 사는 이순하 씨는 그 두 달 사이에도 행복택시를 불렀다가 못 탄 기억이 있다. “행복택시를 살면서 딱 두 번 이용해 봤는데, 콜 하니까 오늘 안 한다고 해서 못 탄 적이 몇 번 있어요.”

행복택시가 정해진 구간만 운행한다는 점도 이용자로서는 불편한 부분이다. 정해진 운행 구간 밖으로 가려면 그때부터는 일반 택시처럼 미터당 요금을 내야 하니 이용자들이 사용을 꺼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제천시 교통과 주무관은 “운행 구간을 설정한 이유는 시내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의 교통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교통 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빠져나오면 버스 정류장이 있으니까 정해진 구간 안에서 운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운행 제일 활발한 곳은 백운면…“이용 횟수 늘었으면”

백운면은 제천시에서 행복택시 대상 지역 7곳 가운데 운행 마을이 18곳으로 가장 많고 운송 사업자도 3명으로 가장 많다. 그나마 사정이 제일 나은 곳이다. 개인택시를 28년간 운행했고, 사업 초기인 2015년부터 계속 행복택시를 운행하고 있는 김지민(70) 씨처럼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하는 기사가 있는 것도 주민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김 씨는 이 지역 출신으로 지금도 백운면에 살다 보니 호출에 빨리 응답할 수 있고, 지리도 잘 안다.

백운면 운학리에서 마을 주민 두 사람을 태우고 있는 행복택시. / 이예진 기자
백운면 운학리에서 마을 주민 두 사람을 태우고 있는 행복택시. 이예진 기자
백운면 운학리 주민을 태운 행복택시가 버스가 들어서기 힘든 백운면 덕동의 좁은 비탈길에서 주행하고 있다. 이예진 기자
백운면 운학리 주민을 태운 행복택시가 버스가 들어서기 힘든 백운면 덕동의 좁은 비탈길에서 주행하고 있다. 이예진 기자

기자가 취재하러 갔을 때 콜을 받고 백운면 운학리로 간 김 씨의 택시에는 마을 주민인 김기옥(71), 김종임(67) 씨가 탔다. 콩나물과 두부를 사고 방앗간에 참기름을 짜러 가기 위해서다. 이들이 행복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횟수는 한 달에 12번이다. 제천 시내 다른 곳과 비교하면 택시 사업자가 셋이나 있어 원할 때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들로서는 이용 횟수가 항상 부족하다. 12번을 탈 수 있는데, 가족 전체가 여섯 번을 왕복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국 매달 행복택시를 탈 수 있는 횟수를 넘겨 일반 택시 요금을 내고 다닌다. 마을 안까지 들어오는 시내버스는 하루에 석 대뿐이기 때문이다. 김기옥 씨는 “밤에 여기서 병원에 급하게 가야 하면 시내까지 가는 데 5만 원이 드는데 왔다 갔다 하면 10만 원이라 급한 일을 생각하면 걱정”이라고 말했다.

행복택시 전용 앱에 이용자의 행복택시 교통카드를 갖다 대면 잔여 이용 횟수와 주행 시작 버튼이 뜬다. 이예진 기자
행복택시 전용 앱에 이용자의 행복택시 교통카드를 갖다 대면 잔여 이용 횟수와 주행 시작 버튼이 뜬다. 이예진 기자

 

김범열(84) 씨의 집 바로 앞에 차도리 종점 버스 정류장이 있다. 주희 PD
김범열(84) 씨의 집 바로 앞에 차도리 종점 버스 정류장이 있다. 주희 PD

 

 

 
집 앞 차도리 종점 버스정류장에서 김범열(84) 씨가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조옥주 PD
집 앞 차도리 종점 버스정류장에서 김범열(84) 씨가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조옥주 PD

 

 

정류장과 가깝기만 하면 행복택시 대상에서 제외돼

잘 다니지도 않는 버스 정류장에 가깝다는 이유로 행복택시 대상에서 배제되는 사람들도 문제다. 마을이 버스 정류장에서 700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버스가 자주 오지 않아도 버스 정류장이 가까이 있으면 행복택시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제천시 백운면 운학2리 차도리 마을에 64년째 살고 있는 김범열(84) 씨의 집은 종점 버스 정류장 바로 뒤에 있다. 그러나 운학2리에는 시내버스가 오전에 두 번, 오후에 한 번씩만 운행한다. 시내로 가려면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마을이 시내에서 멀기도 하지만 버스가 여러 마을을 들러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백운면 차도리 마을로 가기 위해 오전 11시 55분에 제천 시내 부근의 무곡 정류장에서 882번을 타고 기착지 중 하나인 방학리 정류장에 도착하니 오후 1시 27분, 백운면 차도리 종점에 도착하니 오후 1시 55분으로 2시간이 소요됐다. 이예진 기자
기자가 백운면 차도리 마을로 가기 위해 오전 11시 55분에 제천 시내 부근의 무곡 정류장에서 882번을 타고 기착지 중 하나인 방학리 정류장에 도착하니 오후 1시 27분, 백운면 차도리 종점에 도착하니 오후 1시 55분으로 2시간이 소요됐다. 이예진 기자

차도리보다 시내로부터 더 먼 마을까지 돌아서 오는 시간에는 편도로 2시간이나 걸린다. 실제로 기자가 제천 시내에서 오전 11시 55분에 시내버스를 타고 차도리 종점에 도착하니 오후 1시 55분으로 2시간이 걸렸다. 행복택시 운행 마을 44곳 중 18곳으로 가장 많고 운행 중인 행복택시도 3대로 가장 많은 백운면의 사정도 마을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김 씨는 손가락을 크게 다쳤을 때에도 비싼 택시비 때문에 긴 배차 시간을 기다려가며 버스를 타는 바람에 손가락에 큰 흉터가 나기도 했다. “밭일하다 다친 건데 119 부르기 미안하고 별로 안 다친 것 같아서... 택시가 비싸기도 하고. 7시에 버스 첫 차 타고 8시 넘어 성지병원 도착했어요. 버스에서 계속 누르고 있으니까 피는 멎었는데 아홉 바늘을 꿰매고 왔어요.” 차도리에서 시내까지 일반 택시를 타면 만 9천 원이니 시내까지 다녀오면 교통비만 4만 원 가까이 지출되는 셈이다.

충북 제천시 교통취약지역에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겠다는 행복택시가 들어선 지 햇수로 9년이다. 하지만 제도의 변두리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지금도 이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읍면 지역 고령인구 비율이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현행 제도에서 미흡한 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 행복택시 이외에 또 다른 수요응답형 제도는 없을지, 또 운행 횟수가 적은 시내버스 노선을 줄여 그 비용으로 교통취약지역까지 닿게 할 방안은 없을까? 내년이면 10년째에 접어들게 되는 행복택시 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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