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2년 차, 제도 보완 필요
인구는 줄고 있지만 교통약자는 늘고 있다. 교통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지난 2023년 기준, 국민 10명 중 3명은 교통약자였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3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를 보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인구는 5132만 명인데 이 중 교통약자 수는 총인구의 약 31%에 해당하는 1586만 명이었다. 교통약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에 5184만 명이었던 인구는 4년 뒤인 2023년 약 52만 명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교통약자는 64만 명 늘었다. 보고서는 2028년까지 교통약자가 약 450만 명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교통약자의 절반은 노인이다. 고령화의 영향으로 나이 든 교통약자가 늘고 있다. 국토부의 실태조사 연구를 보면 2023년 기준 교통약자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는 전체의 52.4%로 절반을 넘어섰다. 전체 교통약자가 늘어나는 이유가 고령자 증가 때문인 셈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교통약자의 이동권 강화를 위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가 시행됐다. 지난 2021년 12월 31일, 저상버스 도입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한「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23년 1월에는「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고쳐 지방자치단체가 시내·마을·농어촌버스를 새로운 차량으로 교체할 때 저상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했다. 따라서 시외버스를 제외한 모든 노선버스는 현재 저상버스 의무 도입 대상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22년 9월에는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년까지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을 62%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 국토부의 조사를 보면 2023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38.9%다. 17개 시도 중에서는 서울이 66.7%로 가장 높고 울산이 14.6%로 가장 낮다. 충북은 33.3%로 평균을 밑돈다. 과연 내년까지 전국의 저상버스 도입률을 62%까지 올리겠다는 국토부 발표는 실현이 가능할까?
제천·단양·영월 합쳐도 저상버스 노선 1개뿐
현실은 이런 장밋빛 계획과는 따로 가고 있다. 현재 충청북도 제천시의 시내버스 74대 가운데 저상버스는 2대뿐이다. 저상버스 운행 노선은 전체 노선 134개 중 1개에 불과하다. 2대의 저상버스로 노선 1개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인접한 충북 단양과 강원 영월군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운행 중인 저상버스가 한 대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면서도,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 예외 규정을 만들어뒀다. 시행규칙 제4조의2를 보면, 도로의 시설, 구조 등 도로 환경이 저상버스 운행에 적합하지 않은 노선은 버스 운송 사업자가 노선별로 교통행정기관에 저상버스 도입 예외 승인을 신청할 수 있다.
예외 승인은 관할 교통행정기관인 각 지자체 교통과와 국토교통부를 거쳐 확정된다. 버스 운송 사업자로부터 신청을 받은 교통행정기관은 신청 40일 이내에 교통약자 관련 법인 또는 단체와 교통 분야 관계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 저상버스 도입 예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교통행정기관은 매년 1월 말까지 전년도 저상버스 도입 예외 노선, 사유와 개선 계획을 소관 교통행정기관의 누리집에 게재하여 국민에게 공개하고, 국토교통부로 제출해야 한다.
“불법 주정차 때문에 저상버스 도입 어렵다”는 것도 승인한 제천시
저상버스는 일반 시내버스보다 차체가 낮아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성을 높여주지만 그만큼 차량 하부가 도로와 쉽게 접촉해 파손 위험이 크다. 일반 시내버스보다 가로 폭도 넓어 도로에서 회전할 때 더 큰 도로 폭이 필요하다.
<단비뉴스>가 충북 북부권과 인근 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저상버스 도입 예외 승인신청서를 입수했다. 대상 지역은 충북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 강원 영월군으로 제천시와 인접한 곳이다. 확인 결과, 저상버스 도입이 어렵다고 주장한 주요 요인으로는 높은 과속방지턱과, 폭이 좁은 도로, 급한 도로 경사, 회차 공간 부족 등이 있었다. 네 곳의 승인신청서는 모두 승인됐다.
이 밖의 예외 승인 사유로는 회차 공간 부족, 고원식 횡단보도, 불법 주정차가 있었다. 제천시가 지난 1월 누리집에 게재한 저상버스 도입 예외 승인 노선 자료를 보면, 133개 예외 승인 노선의 저상버스 도입 저해 요인 가운데는 불법 주정차도 있었다. 지난 2017년 제천 하소동 스포츠센터 화재에서 불법 주정차 차량이 소방차 진입을 가로막아 화재를 키운 적이 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지난 2019년부터 불법 주정차 주민 신고제가 만들어졌는데, 지역의 불법 주정차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불법 주정차를 해결해야 할 제천시가 이를 저상버스 도입 저해 요인이라고 신청한 것을 그대로 승인했다는 것이다.
제천시는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들며 불법 주정차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제천시 교통과 교통행정팀 김영준 주무관은 “아침이나 저녁 시간대 불법 주정차 때문에 운행이 어렵다”며 “교통지도팀에 협업을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인 계획까지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업무 시간이 아닌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대 불법 주정차를 단속하긴 힘들다며 “업무 시간 이후에 단속을 나갈 수도 없지 않냐”고 덧붙였다. 근본적으로 불법 주정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상버스 도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천시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대 주정차 단속은 하지 않는다. 불법 주정차를 단속하는 교통지도팀 최환성 주무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차량으로 불법 주정차 감독을 하고,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CCTV로 사후 모니터링 단속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상버스 예외 사유를 해결할 책임이 시청에 있지만, 문제로 지적된 야간 불법 주정차 단속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주무관은 “교통과에 있는 주정차 단속 인원이 4명뿐이고, 단속 인원을 늘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외 다른 교통약자 의견은 듣지도 않아
교통약자법 시행규칙 제4조의2 제4항에는 ‘교통행정기관은 저상버스예외승인을 하려면 미리 교통약자 관련 법인 또는 단체와 교통 분야 관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제천시·충주시·단양군·영월군 4곳 모두 장애인 단체의 의견만 들은 것으로 확인됐다. 장애인 외에 고령자·어린이·임산부 등의 의견은 노선 편성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마저도 제천시와 충주시는 2023년에만 의견을 듣고, 지난해에는 따로 의견을 조사하지 않았다. 2023년 의견 청취 결과를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제천시 김영준 주무관은 “변경된 내용이 없고 전년도와 동일하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한 것”이라며 “올해는 저상버스 도입 노선이 늘어날 수 있도록 의견을 반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고령자 단체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조직화 되어있는 장애인 단체에 비해, 의견을 낼 만한 마땅한 노인단체가 없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박성준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령자, 임산부 등 다양한 교통약자가 있지만, 별도의 집단이 있지는 않다”며 “반면 장애인 단체는 명확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주로 장애인 단체를 접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충주시 교통정책과 김영기 주무관은 “충주시에서는 충주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위원회 소속 단체들의 의견을 듣는데, 이곳에는 노인을 대표할 만한 단체가 없다”고 말했다.
단비뉴스가 지난 15일 제천 시민문화회관 버스 정류장 앞에서 만난 고령자들도 저상버스 확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청전동에 거주하는 배금숙(70) 씨는 “두 달 전에 시내에서 제천역까지 갈 때 저상버스를 딱 한 번 타봤는데 문만 열리면 무거운 짐도 바로 올릴 수 있고 오르내리기 수월해서 정말 편했다”며 “오늘은 농사지으러 봉양읍으로 가는 일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상버스가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명대 사거리에 거주하는 임장옥(89) 씨는 “복지관과 병원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거의 매일 타는 편”이라며 “저상버스가 거의 없어서 일반버스를 더 많이 타지만 (저상버스가) 계단도 낮고 짐이 많을 때 편해서 좋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시민들은 저상버스를 한 번도 타본 적 없어 필요성이나 편의성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지 않은 지자체도 있다. 강원 영월군의 경우 관내 장애인 단체 7곳의 의견만 듣고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영월군청 안전교통과 교통행정팀 담당 주무관은 “청취하지 않은 이유는 전임자가 알고 있어 따로 답변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개선 계획 없으면 허울 좋은 말 잔치
저상버스 예외 노선 승인을 규정하는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는 예외 노선에 대한 사후 관리를 규정하는 항목이 있다. 예외 노선으로 인정받았다고 해도, 저상버스가 원활하게 도입될 수 있도록 예외 승인 사유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자체 교통과 등 교통행정기관은 예외 노선에 대한 개선 계획을 누리집에 게재해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간략한 내용만 기재하거나, 매년 비슷한 내용을 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단양군은 2023년부터 올해까지 3년째 ‘중형저상버스 도입 및 운행 가능 노선 우선 투입, 도로 여건 개선, 전기충전시설 설치’라는 내용의 ‘향후 계획’을 게시했다. 충주시와 영월군은 2년째 같은 내용의 개선 계획을 게시했고, 제천시는 ‘시내버스 노선 체계 개편을 통한 중장기적 방안 마련’이라고 짤막한 내용만을 공지했다.
4곳 지자체 모두 2023년부터 올해까지 공개한 ‘저상버스 도입 예외 승인 노선’에 변화는 없었다. 간단한 개선 계획만을 공지할 뿐, 실제로 개선이 이뤄지지는 않은 것이다.
정기적인 모니터링 제도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정기적인 모니터링 도입 등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교통약자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좀 더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지혜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행 시행규칙이 모호하고 그냥 ‘교통약자의 의견을 들어라’ 정도에 그친다”며 “모니터링 이행 주기, 이행 기간, 책임기관 지정 등을 구체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축물의 경우 BF(배리어프리) 인증 제도로 장애인 단체가 건축물 적정성 평가를 하고 있다”며 “교통 분야에도 비슷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1년부터 시행 중인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BF인증)은 고령자, 장애인, 어린이 등 누구나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평가·인증하는 제도다. 건축물을 평가하듯, 대중교통 편의성을 평가하는 모니터링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고령자와 유아 동반 보호자 등 다양한 교통약자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며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자, 임산부, 유아차 이용자 등 다양한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방식의 의견 수렴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규정에서는 단체나 전문가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하고, 얼마나 자주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지도 규정돼 있지 않다”며 제도 전반의 정비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도경 서울시립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는 “저상버스는 장애인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고령자, 어린이 등 장애인 이외의 교통약자에게 훨씬 도움이 되는 교통수단”이라며 “고령사회에 맞게 제도를 검토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령층 비율이 늘어나는 만큼 저상버스가 필요한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수학 공식처럼 기준을 딱딱 세울 수는 없다”면서도 “고령자 단체, 임산부, 영유아 관련 단체 등 더 많은 의견을 반영하고 동의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단비뉴스 지역사회부, 시사현안팀 이예진입니다.
드러나지 않고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꾸준히 관찰하고 추적해서 밀려난 사람들 곁으로 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