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애플티비 ‘마지막 해녀들’

미디어가 제주도를 배경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때 대체로 등장하는 직업이 있다. 바다에 뛰어들어 오랫동안 숨을 참으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 바로 해녀다. 지난해 방영된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를 비롯해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영화 ‘계춘할망’에서도 해녀는 극 중 주요 캐릭터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해녀의 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지난 2월 제주도의회의 해양수산국 업무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활동한 해녀의 수는 2839명으로 2022년 3226명 대비 387명이 감소했다. 해녀의 수가 가장 많았던 1970년 1만 4143명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사라져 가는 해녀 문화를 기록하다

다큐멘터리 ‘마지막 해녀들’ 포스터. 출처 애플티비
다큐멘터리 ‘마지막 해녀들’ 포스터. 출처 애플티비

‘마지막 해녀들’은 실제 해녀들의 삶을 통해 사라져가는 해녀 공동체의 현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제49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분에 초청돼 첫선을 보인 후,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분에 초청받아 정식 공개 전 국내 관객과 만났다. 한국계 미국인 수 킴 감독이 연출과 제작을 맡았다. 그는 마지막 해녀들 제작 이유에 대해 8살 때 제주도를 방문해 처음 해녀 문화를 접한 후 사랑에 빠졌고, 성인이 된 이후 다시 찾은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난 84살의 해녀의 ‘자신들이 마지막 해녀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라는 말을 듣고 이들의 삶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2014년 최연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파키스탄 여성 교육 운동가인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제작사 엑스트라커리큘러 프로덕션과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제작한 미국 유명 제작사인 A24도 제작에 참여했다. 지난달 11일 글로벌 OTT 플랫폼 애플티비에서 애플티비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로 공개됐다. 전 세계 OTT 플랫폼 내 콘텐츠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 따르면 ‘마지막 해녀들’은 공개 3일 만에 영화 부문 글로벌 3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다. 총제작 기간 3년. 다큐멘터리가 바라본 한국 해녀의 현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해녀들이 보여주는 그들의 현실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기 전 체조를 하고 있다. 출처 애플티비 마지막 해녀들 예고편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기 전 체조를 하고 있다. 출처 애플티비 마지막 해녀들 예고편

다큐멘터리는 해녀 문화의 낭만적인 묘사가 아닌 이들이 직면한 현실적 위협에 초점을 맞추었다. 해녀를 오랫동안 연구한 역사학자 김순이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해 해녀가 감소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해녀는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물속에서 최대 2분 동안 숨을 참아야 하고, 한번 물질을 나가면 이런 잠수를 최소 100회에서 300회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고난도의 작업에 비해 보상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 젊은 세대의 해녀가 많이 보이지 않는 이유라고 말한다. 실제로 현재 해녀의 대부분은 60~70대다. 어려웠던 시절 가족의 끼니를 책임지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모든 고통을 감수했던 해녀들이 편리함과 안온함에 익숙해진 현대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새로운 세대가 해녀 일을 이어 나가고 싶어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환경으로 변해가는 바다이다. 조류를 타고 제주 바다로 밀려오는 쓰레기들을 보며 해녀들은 예전과 다른 바다의 모습에 한탄한다. 다큐는 바다 곳곳에 쌓여있는 쓰레기와 배 위에 모여 근심 어린 표정을 짓는 해녀들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해양 오염, 생태계의 변화, 육지 사람들에게는 기껏해야 추상적인 위험일지도 모를 바다의 변화는 해녀들에게 당장 눈앞에 닥친 생존의 위협이 되고 있다.

바다를 지키려는 그들의 용기

제주도 해녀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시위에 참여해 방류 반대 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 애플티비 마지막 해녀들 예고편
제주도 해녀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시위에 참여해 방류 반대 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 애플티비 마지막 해녀들 예고편

쓰레기로 변해가는 바다를 바라보는 해녀들에게 더 큰 시련이 닥쳐온다. 바로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이다. 해녀들은 삶의 터전인 바다를 지키기 위해 잠수복이 아닌 전통 해녀 복장을 하고 제주 시청 거리를 나섰다. 제주도의 나이 많은 해녀들뿐만 아니라 거제도에서 활동하는 젊은 해녀들도 연대했다. 그들이 시위에 나선 이유는 해녀들의 일거리와 바닷속 생명들, 그리고 바다가 죽어갈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었다.

다큐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72세 해녀 장순덕 씨가 UN 인권위원회를 방문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장면이었다. 장순덕 씨는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그마한 희망을 품고 13시간의 비행을 거쳐 스위스 제네바로 날아갔다. 그는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본인의 생각을 영어로 준비했다. 영어를 하진 못하지만 메시지를 모두 또박또박 한글로 표기해 인권위원회에 참석한 세계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늦은 밤까지 연습한다. 드디어 회의가 열리던 날, 늙은 해녀 장순덕 씨는 어설프지만, 무거운 진실을 담은 영어로 세계인들에게 말했다.

“제발 오염수를 방류하지 마세요. 너무 늦기 전에요.”

새로운 목소리가 되는 콘텐츠의 역할

제주도 해녀가 물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다. 출처 애플티비 마지막 해녀들 예고편
제주도 해녀가 물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다. 출처 애플티비 마지막 해녀들 예고편

수 킴 감독의 ‘마지막 해녀들’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은 바다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에 새삼 경각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또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해녀 문화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죽어가는 바다와 사라져가는 문화를 살려내 지키는 것은 각자의 실천일 것이다.

지난 10월 윤석열 대통령은 제주도를 방문해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데 이어 2023년에는 유엔 세계 중요농어업유산에도 등재된 ‘해녀 문화’의 보전과 전승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10월 발표될 제4차 어촌어항발전 기본계획을 통해 제주 해녀 어업 보존과 발전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금도 해양쓰레기는 계속 바다에 쌓이고 있고 후쿠시마에서 방류된 핵 오염수는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제주 바다를 향해 오고 있다. 탄식과 선언만 있고 행동이 없을 때는 바다도 해녀 문화도 살아남을 수 없다. 해녀들은 오염수를 방류해도 된다는 사람을 만난다면 꼭 묻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당신은 미래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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