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EBS ‘딩동댕 유치원’

아동 성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최근 전국 각지의 학교와 공공 도서관에서 성교육, 성평등을 다룬 도서가 사라지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11월 관내 초등학교에 부적절한 논란의 내용이 포함된 도서를 조치하라는 공문을 보냈고, 지난 2월 성교육 도서 처리 목록 제출을 요구했다. 충북, 충남 지역 공공도서관에서는 관련 도서 일부가 열람실에서 사라졌다. 이런 움직임엔 성교육 도서는 선정적이며 동성애를 조장하는 음란물이라는 등 일부 학부모 단체와 시민단체의 주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 2020년엔 '나다움 어린이 책' 회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전문가들과 함께 어린이 성 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해 약자 존중, 몸에 관한 이해, 차별 타파 등의 내용이 담긴 '나다움 어린이 책'을 선정하여 학교, 기관에 보급하였다. 그런데 일부 학부모 단체와 국회의원이 ‘책에 조기 성애화, 선정성, 동성애 조장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고 비판했고, 그 후 해당 책은 도서관에서 자취를 감췄다. 아동 성교육에 대한 이런 부정적 분위기에서 <EBS>가 유아 성교육 프로그램을 제작·방송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킨 건 당연한 일이다.

EBS 딩동댕 유치원의 대담한 도전

"성교육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어떤 내용으로 성교육을 할지 우려된다. (중략) 음란한 소재는 아닐지 사람들이 걱정하더라…"

지난해 9월 말 한 지역 맘카페에 올라온 글 내용 중 일부이다. EBS의 ‘딩동댕 유치원’에서 2024년부터 유아 성교육 코너를 시작한다는 보도 자료를 본 맘카페 회원이 ‘딩동댕 유치원 유아 성교육 방송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딩동댕 유치원'은 국내 최장수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올해 두 번에 걸쳐 유아 성교육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딩동댕 유치원 ‘내 몸은 내 거야’에서 경계와 동의 개념을 설명하는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딩동댕 유치원 ‘내 몸은 내 거야’에서 경계와 동의 개념을 설명하는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2월 14일 방영된 성교육 1편의 제목은 ‘내 몸은 내 거야’이다. 방송은 다양한 비유를 통해 성교육을 처음 접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첫 장면에선 고양이 ‘샤샤’에게 자신이 먹던 뼈다귀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강아지 ‘댕구’와 댕구가 싫어하는데도 댕구의 몸을 계속 간지럽히는 샤샤의 이야기가 나온다. ‘딩동샘(딩동댕 유치원 선생님)’은 가르칠 때가 왔다며 비장해진다. 딩동샘은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싶어서 방에 들어간 캐릭터 ‘조아’의 예를 든다. 문을 닫아도 함부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몸에서 사이렌이 울린다고 말한다. 이 얘기가 성교육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딩동샘은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쿵쿵거리는 것 같이 어떤 상황에서 불편하거나 위험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그게 바로 우리 몸을 보호하는 사이렌이라고 설명한다. 그럴 땐 당당하게 “안 돼”, “싫어”, “하지 마”라고 말하라 알려준다. 또한 아무리 문을 두드리면서 동의를 구해도 절대 넘어오게 하면 안 되는 상황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 상황에서 ‘하늘’이 “너무 떨려서 말이 안 나오면 어떡하나?”는 현실적인 고민을 얘기한다. 이에 딩동샘은 “너무 무서워서 싫다고 말 못하거나 부끄러워서 도와달라고 못 할 수도 있다”며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말하라고 답한다.

딩동댕 유치원 ‘참 예쁘다 내 몸!’에서 미의 기준에 대해 노래하는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딩동댕 유치원 ‘참 예쁘다 내 몸!’에서 미의 기준에 대해 노래하는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2월 21일 방송된 성교육 2편 ‘참 예쁘다 내 몸!’에선 어린이가 자기 몸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돕는 내용을 담았다. 문학소년 ‘조아’는 동네 어른에게 “책만 읽어서 몸이 약하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한테 놀림당한다. 다 널 위한 소리다”라는 말을 듣는다. 한편, 태권도를 잘하며 운동과 음식을 좋아하는 ‘하리’는 조부모에게 “예쁘고 날씬해지는 운동 해라, 아이돌이 돼라”는 말을 듣는다. 아이들은 미디어에 나오는 정형화된 여성성, 남성성의 모습에 자신을 대입해 보며 '나도 저런 어른이 돼야 하나? 고민하고, 그렇지 않은 자신이 못생기고 안 예쁜 건가?'라며 속상해한다. 조아와 하리의 이야기를 들은 유치원 친구들은 자신들도 “미스코리아 돼라, 뚱뚱해지면 안 된다”라며 평가를 일삼는 어른들에게 상처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딩동댕 유치원 ‘참 예쁘다 내 몸!'에서 아이들이 되고 싶은 어른 모습에 대해 노래하는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딩동댕 유치원 ‘참 예쁘다 내 몸!'에서 아이들이 되고 싶은 어른 모습에 대해 노래하는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이에 대해 딩동샘은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내 몸, 내 얼굴에 자신감이 없어지지”라고 말한다. 딩동샘은 아이들에게 하리의 모습이 어떤지 물어본다. 아이들은 “튼튼해요, 골고루 잘 먹어요. 공룡 이름을 잘 외워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조아에겐 “상냥해요. 말을 잘해요. 모르는 책이 없어요”라며 칭찬한다. “너희들이 몸으로 하는 모든 게 멋진 거야.”라는 딩동샘의 말에 하리는 “태권도를 잘하게 하는 제 팔, 제 다리가 대단해요”라고, 조아는 “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제 머리가 마음에 들어요"라고 대답하며 자기 모습을 긍정하게 된다. 아이들은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고, 나다운 게 예쁘다는 걸 깨달으며 자신감을 얻는다. 딩동댕 유치원생들의 대화를 들으며 어른인 나도 나다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그렇게 다르기에 특별하구나’ ‘예쁘다, 아름답다는 단어의 의미를 고칠 필요가 있겠다’고 깨닫는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며 왠지 모를 뭉클함을 느끼고 위로를 받게 된다.

딩동댕 유치원은 성교육 코너를 기획한 후, 6개월간 준비하며 성교육 전문 교수와 유아 성교육 특화 기관 ‘딱따구리 우따따’의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제작진의 노력은 딩동샘에게서 잘 드러난다. 딩동샘은 어른으로서 따뜻하고 능숙하게 아이들의 고민에 대처한다. 어떤 상황에 어떻게 행동 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되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내 마음을 불편하게, 슬프게 하는 일이 생기면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꼭 말하라고 당부한다. 아이들은 딩동샘의 설명을 듣고 자기 결정권의 개념과 곤란한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을 익혔다. 딩동샘의 설명과 더불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노래, 그림, 비유를 통해 아이들의 궁금증을 쉽고 재밌게 풀었다.

딩동댕 유치원 ‘내 몸은 내 거야’에서 딩동샘이 아이들에게 곤란한 상황일 때 "하지 마"를 외치라고 알려주는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딩동댕 유치원 ‘내 몸은 내 거야’에서 딩동샘이 아이들에게 곤란한 상황일 때 "하지 마"를 외치라고 알려주는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쉬쉬하는 아동 성교육...언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성교육을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부끄럽고 음란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국제적으로 검증되었다. 예를 들어 유네스코에서 발간한 국제 성교육 지침서는 성교육 가이드 연령을 5세(만 4세)로 권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2016년 옥스퍼드대학 연구 결과를 인용해 성교육을 통해 성행위 시작 시기 지연, 피임 증가와 같은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선 아이들에게 성에 대한 정보를 감추고, 공개적인 논의를 금기시해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8년 공개한 ‘청소년 성교육 수요 조사’에 따르면 ‘학교 성교육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한 비율이 34.1%였고, 절반 이상이 ‘학교 밖에서 성 지식과 정보를 얻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0 청소년 매체 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 10명 중 4명은 ‘최근 1년 사이 성인용 영상물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초등생 이용도 2016년 18.6%에서 2020년 27.7%까지 늘었다. 성을 쉬쉬한다고 성 관련 문제가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식을 왜곡하고 퇴행시킨다. 그중 한 가지 사례로 ‘n번방 사건’이 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많은 여성이 디지털 성범죄를 당하였고, 가해자 중 가장 어린 나이는 12세로 밝혀졌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아동 간 성추행 뉴스도 종종 볼 수 있다. 성범죄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모두를 위한 성교육이 필요한 시점

성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성교육은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학습을 위해 시행되는 교육이다.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나와 상대의 몸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 성교육의 기본이다.

딩동댕 유치원 ‘내 몸은 내 거야’에서 딩동샘의 설명을 궁금해 하는 아이들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딩동댕 유치원 ‘내 몸은 내 거야’에서 딩동샘의 설명을 궁금해 하는 아이들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그러나 성교육을 할 양육자도 성에 대해 잘 모른다. 어른들도 성을 낯설어하고, 어떻게 대할지 어려워한다. 타인의 몸과 마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지니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설명은 어른도 이해하기 쉽기에 성 문제에 둔감한 어른들이 딩동댕 유치원을 보면서 배워도 좋을 것 같다. 이번 딩동댕 유치원의 성교육 에피소드는 처음 공개되는 코너인 만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구성했다고 EBS는 밝혔다. 딩동댕 유치원은 유아 성교육을 특별편이 아닌 정식 코너로 편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유아를 대상으로 한 성교육에 어디까지 포함해야 할지 논의해 봐야 할 점이 많겠지만 앞으로의 딩동댕 유치원 행보가 기대된다.

어린이 프로그램에 다양성을 담는다는 것

딩동댕 유치원은 재작년 개편을 시작으로 사회의 다양성을 프로그램에 담아내고 있다. 2022년엔 신체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하늘’, 남미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마리’, 노는 걸 좋아하는 체육 소녀 ‘하리’, 독서를 좋아하는 문학소년 ‘조아’가 출연하기 시작했다. 2023년엔 자폐 아동 캐릭터인 ‘별이’가 등장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캐릭터의 등장은 한국 아동 프로그램에서 첫 시도였다. 어린이 프로그램에 사회적 소수자를 넣는 시도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나와 다른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

딩동댕 유치원 ‘참 예쁘다 내 몸!’에서 예쁘고 멋진 내 몸에 대해 노래하는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딩동댕 유치원 ‘참 예쁘다 내 몸!’에서 예쁘고 멋진 내 몸에 대해 노래하는 장면. 유튜브 채널 '딩동댕 유치원' 화면 갈무리

이제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어린이'의 뜻은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이다. 이는 아이를 인격을 가진 한 사회 구성원으로 대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한 인격체로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 나아갈 첫걸음은 성교육을 통한 올바른 성 인식 확립이 아닐까. 우리 사회가 딩동댕 유치원 어린이들처럼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다른 모습을 가진 모두와 함께 잘 사는 곳이 되길 희망한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