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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단장을 거부한 엄마
[상상사전] '새'
2018년 01월 04일 (목) 21:46:13 황금빛 기자 hgb1987@nate.com
   
▲ 황금빛 기자

‘새’는 생존을 위해 몸단장을 한다. 깃털에 유분을 묻히는 일은 깃털을 튼튼하게 해 잘 날아다니게 할 뿐 아니라 체온을 조절하고 방수까지 되게 한다. 새는 하루에 몇 번이고 털 고르기를 한다. 털 속 기생충을 제거하면 건강해질 수 있고, 건강해 보여야 더 강한 짝을 유혹하고 건강한 새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새들도 몸단장을 게을리 하는 시기가 있다. 알을 낳았을 때다. 이때는 몸단장보다 새끼 키우기가 우선이다.

얼마 전 종영한 TV 드라마 <고백부부>가 많은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결혼을 후회하는 주인공 부부가 18년 전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 그들이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하며 결혼의 의미와 부부 관계를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다. 여주인공 ‘진주’의 현재는 38살 ‘애엄마’다. 음식물이 묻은 목 늘어난 티셔츠에 화장도 하지 못해 퀭한 얼굴, 축 처진 어깨. 반면 20살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진주’는 예쁜 옷에 구두에 화려한 화장에 한껏 몸단장을 하고 미팅에 나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지금 남편을 만났다.

   

▲ 새는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몸단장을 다시 시작한다. Ⓒ flickr

새나 사람이나 제 새끼를 키우는 상황에서는 몸단장도 뒷전이 된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새는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몸단장을 다시 시작한다. 반면 사람은 오랫동안 자식을 품에서 놓지 않는다. 심지어 몸단장에 열중하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한다. 라파이유와 로머는 <왜 그들이 이기는가>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해 매우 느리게 성숙한다고 말한다. 오랜 기간이 지나야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 생존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음식, 주거지 등 기본 욕구를 충족해주는 하나의 구조가 필요한데 탄탄한 가족 구조가 이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생물 논리는 인간 전체의 생존을 돕지만 자식을 낳은 엄마 개인의 생존력을 떨어뜨린다. 몸단장을 하는 일이 단지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엄마도 몸단장을 통해 좀 더 생기 있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아를 구체화할 수 있고, 가정의 일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존감 높은 모습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목 늘어난 티셔츠, 퀭한 얼굴의 엄마는 자기 생존보다 아이 생존을 우선한다.

한국에서 여성의 경력단절은 출산과 동시에 명확해진다. 여성의 구실은 아이의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엄마에 한정된다. ‘사회적 몸’을 연구한 사회학자 크리스 실링은 여성들이 남편과 자식들의 욕구를 우선 충족하기 위해 자기 몸의 욕구를 희생한다고 했다. 엄마가 된 여성이 몸단장을 하지 못하는 이유다. <고백부부> 속 애엄마가 된 38살 ‘진주’는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퀭한 얼굴로 유모차를 끌고 대학가를 지나는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한다. 우리는 그녀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을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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