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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의 ‘피할 수 없는 전쟁’과 북핵
[단비발언대] 곽호룡 기자
2018년 01월 01일 (월) 22:44:41 곽호룡 기자 avoidapuddle@daum.net
   
▲ 곽호룡 기자

고대 아테네의 장군이자 역사가인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기존 강대국이 신흥 강대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다 큰 전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스파르타를 맹주로 한 펠로폰네소스동맹과 아테네를 축으로 한 델로스동맹이 20년 전쟁을 벌인 것도 기존 강자인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도전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이 재현된다면

미국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피할 수 없는 전쟁(Destined for War)>이라는 책에서 이런 현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인류가 이로 인해 대규모 전쟁에 휩싸인 게 10번 이상이며,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독일의 전쟁도 그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섬뜩한 것은 앨리슨 교수가 현재 투키디데스 함정에 직면한 나라로 꼽은 게 패권국 미국과 신흥강국 중국이며, 둘이 격돌한다면 그 무대는 한반도가 될 것이라고 봤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도, 영국과 독일도 서로 전쟁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3국 때문에 전쟁에 휘말렸다”고 말했다.

   
▲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의 대결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빗대 설명했다. Ⓒ GettyImages

앨리슨 교수를 포함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한반도에서의 미·중 격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북한의 핵도발이다.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1일 신년사에서도 “미국 본토 전역이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는 것은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큰소리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도발을 막기 위해 필요한 일은 뭐든지 하겠다며 무력공격 가능성을 여러 번 내비쳤다. 유엔(UN) 차원의 대북제재에 마지못해 동조하면서도 북한의 전통적 후원자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중국은 북·미가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순간, 앨리슨 교수의 관측대로 북한 편에 설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역학관계에서 우리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고 국익을 지키려면 정말 냉정한 현실 분석과 주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북한은 결코 핵을 먼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개발을 강행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 얻으려는 게 확실히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전쟁의 교전 상대이자 정전협정 당사자인 미국으로부터 김정은 체제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전례가 있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은 미국의 압박으로 핵포기를 선언했다가 미국 등 나토연합군의 공습을 받고 무너졌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가 체제보장의 안전판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경제적 목적도 있다. 북한은 핵개발을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지원을 끌어내는 지렛대로 삼으려 한다. 지난 93년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계기로 제네바합의를 이끌어 내 미국의 경제원조를 받은 일이 있다. 또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위상은 경제난과 정치적 억압 등에 대한 내부의 불만을 누르고 김정은 체제를 공고하게 하는 대내적 효과도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더 많은 무기수입 대신 더 적극적인 대화를

이렇게 뚜렷한 목적을 가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고, 한반도가 미·중 격돌의 발화점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가 과거 정권과는 다른 전략 아래 주도적이고 치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미국과 중국 모두 북핵에 대한 이해관계가 우리와 다른 부분이 있으므로 이들이 한반도 평화에 이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려면 과거의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2016년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최근 10년간 미국에서 약 36조원어치의 무기를 사들였다. 2014년 미국 의회조사서(CRS)를 보면 그해 우리나라 무기계약 액수는 약 9조원으로 이라크 등 분쟁지역보다 높은 세계 1위였다. 북한의 핵도발에 군비경쟁 논리로 대응하면서 ‘최대 무기수입국’이 됐지만 안보 상황은 더 나빠졌다.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입은 경제적 타격 등도 지난 정권이 미국의 요구에 중심 없이 휘둘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미국의 군수업체 록히드 마틴이 한국에 수출한 자사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lockheedmartin

우리에게 북핵 문제의 본질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를 몰아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소설가 한강은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 가능성이 언급될 때마다 공포감에 몸서리친다고 호소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이런 우리 입장을 주변국에게 명확히 인식시키고, ‘압박과 위협의 경주’ 대신 평화로 가는 현실적인 길을 함께 찾아야 한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제안한 ‘쌍중단’, 즉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중단하면 남한과 미국이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방안 등 협상가능한 모든 안을 올려놓고 대화를 해야 한다.

노르웨이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안보에 의한 평화보다, 평화에 의한 안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군사적 수단으로 불안한 평화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평화 정착을 통해 전쟁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 진정한 안보라는 뜻이다. 마침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을 위한 대화를 제안했으니, 이 절호의 기회를 살려 지속적 협상의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주변국을 설득하는 것과 함께 국내 모든 정치세력의 거국적 협력을 이끌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보수야당 등이 북한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온 구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평화에 의한 안보’는 매우 힘겨운 목표가 될 수도 있다.


편집 : 유선희 기자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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