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월드] ‘북핵 위기’를 보는 해외 시각

지난 9월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후 유엔(UN)의 대북 제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력공격 암시 발언 등이 이어지면서 국제사회는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남북문제를 한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지만 메아리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서로 ‘미치광이’, ‘늙다리의 망발’ 등 ‘막말 폭탄’을 주고받는 동안 세계 언론은 사태의 향방을 주시하며 외교전문가들의 분석과 조언을 쏟아냈다.

‘가장 강력한 대북경제제재’ 실효성에 회의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지난달 12일자 칼럼을 통해 북한 경제제재의 효과를 회의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제재가 북한에 고통을 주고 있다는 징후는 있지만 북한 경제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한 경제혁신을 통해 지난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이 3.9% 증가했다는 수치도 제시했다. 북한이 헌법에까지 ‘핵 보유’를 명시한 마당에 지금 수준의 경제제재로 ‘핵 포기’를 이끌어내긴 어렵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의 <뉴욕타임스> 칼럼 ‘트럼프의 겁나는 대북 전략’. 그는 경제제재가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워싱턴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마크 피츠패트릭 소장도 지난 8월 12일 독일 주간지 <슈피겔>을 통해 “북한은 중국 외에도 다양한 회사를 통해 무역수익을 얻고 있다”며 “경제제재는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제재가 중국을 포함한 우회로 때문에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중국 옌볜대학 한반도연구소장 진 창이(Jin Qiangyi) 교수는 같은 기사에서 “마오쩌둥(중화인민공화국 초대주석)이 1950년대 말 핵개발을 추진할 당시에도 국제사회로부터 지금과 비슷한 경제제재를 받았으나 결국 핵무기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영국 왕립국방연구소(Royal United Services Institute) 에밀 달 제재정책전문연구원은 지난 9월 13일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본래 경제제재는 내부적 불만을 고조시켜 지도층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데, 이런 계산이 북한에 적용될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제재의 효과를 측정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즉흥적 협박, 북한 오판 부를 위험

외교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협박성’ 대북 발언이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8월 8일 “북한이 미국을 위협하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알자지라>는 8월 10일 보도를 통해 ‘전쟁 위험을 고조시켰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항복을 종용하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발언과 견줄 정도로 강도가 높았으며, 이는 전시에나 구사할 법한 수사라는 설명이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항복하지 않으면 지구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형태로 파괴의 비가 내리는 걸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실제로 일본에 핵폭탄을 떨어뜨렸다.

▲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을 과거 히로시마 원폭투하 직전 일본의 항복을 요구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 발언과 비교한 <알자지라>의 8월 10일자 보도. © <알자지라> 누리집 갈무리

과거 클린턴 대통령의 아시아정책 자문을 맡았던 필립 윤 플라우셰어스펀드(핵확산반대 지원단체) 이사는 지난 8월 11일 영국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이 오판으로 인한 군사충돌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 관료들의 정제된 발언과 달리, 트럼프의 즉흥적인 수사는 그의 신뢰도를 훼손시켰다”며 만약 트럼프가 이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발언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하거나, 더 강력한 협박으로 북한의 행동을 제어하고자 한다면 북측에 실제적 위협으로 인식돼 오판으로 인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군사공격 거론하면 북한은 핵에 더 집착” 

노골적인 무력 사용 협박은 안보 위기를 고조시켜 북한이 핵에 더 집착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정기 기고자이자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자인 사무엘 라마니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시사현안을 다루는 잡지 <디플로매트>에서 “1999년 미국의 코소보 공습 이후 북한은 핵무기를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라마니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이 코소보 지역 알바니아인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지상군 투입 대신 공습을 택한 것에 주목했다. 미국은 비용이 막대하고 전면전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는 지상군 투입을 꺼린다는 걸 간파했다는 것이다. 이후 북한은 제2의 세르비아, 리비아가 되지 않기 위해 미국의 공습에 대항할 미사일 방어체제를 마련하고,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는 게 라마니의 분석이다. 그러니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공격을 거론할수록 핵에 대한 북한의 집착은 심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 사무엘 라마니는 <디플로매트> 기고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1999년 코소보 전쟁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디플로매트> 누리집 갈무리

‘외교적 수단 우선’ 한목소리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북핵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려면 외교적 수단을 우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짐 월시 선임연구원은 지난 8월 23일 <알자지라> 기고를 통해 “핵동결 합의가 북핵 문제를 영구히 해결할 수는 없어도 핵무기 개발을 당장 중단시킬 수 있다. (중략) 대화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오판을 막아 군사적 갈등의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기적으로 핵무기는 모두 위험하기 때문에 미국의 핵무기도 줄여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란핵협상에 참여했던 전 영국 외무부 정치국장 사이먼 개스는 지난 9월 29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은 최악의 선택”이라며 수십만 명의 죽음 등 비극을 막기 위해 외교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이기고 북한이 지는’ 결과를 생각하면서 협상에 임한다면 북한과의 대화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치약은 이미 튜브 밖으로 나왔다”며 미국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영국의 전 외무부 정치국장 사이먼 개스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은 최악의 선택”이라며 미국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하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미국 군축 및 핵확산방지연구소(CACNP) 이사 리처드 클라스는 <알자지라>에 쓴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할 일은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공석으로 남아있는 외교관련 인사를 빨리 임명해 외교팀의 골격을 잡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취임 후 충분한 준비 없이 북핵 위기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외교전문가 진용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키신저 “북핵 해법은 미국과 중국의 대타협”

보다 구체적인 북핵 해법을 제시한 사람들도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8월 11일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북핵 해법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의 대타협이라고 말했다. 미·중의 동북아 전략이 충돌하는 한 북핵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한반도에 미군 주둔을 제한하는 것을 협상카드로 하는 ‘미·중 빅딜’을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한반도 통일 이후 미군의 영향력이 기존의 북·중 국경까지 미치게 될 것을 우려하는 중국 측의 이해를 감안하자는 것이다.

▲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외교협회(CFR) 회장 리처드 하스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비공식 외교정책 자문을 맡고 있다. © 미국 <씨비에스(CBS)> 방송 ‘페이스더네이션(Face the Nation)’ 영상 갈무리

이란핵협정(JCPOA) 모델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독일 비영리연구기관 막스플랑크협회(MPI)의 샤자드 사파이 연구원은 지난달 13일 <알자지라> 기고를 통해 이란핵협정은 이란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하는 대신 “유례없이 전방위적이고 치밀한 핵 사용 감시 체제를 구축했다”며 이 모델은 파키스탄이나 북한, 심지어는 이스라엘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이먼 개스 전 국장도 지난 9월 29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란핵협정을 승인하지 않으면 북핵협상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란햅혁정을 준수한다면 북한에게도 협상에 대한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이란핵협정을 승인하지 않고 의회에 수정안을 요구한 상태다.

뉴질랜드 와이카토 대학의 알렉산더 길레스피(국제법) 교수는 지난 9월 3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에서 실제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미군사훈련 때 북한 측 참관인을 둠으로써 북한이 전쟁의 위협을 느끼고 ‘오판’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 출신인 도널드 맨줄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지난달 12일 미국 의회전문지 <더힐> 기고문에서 ‘90일 휴지기’ 안을 제시했다. 유엔 안보리의 보증 아래 미국이 북한에 90일 간의 ‘휴지기’를 제안하고, 이 기간 동안 서로를 자극하는 모든 행동을 중단하며 6자회담 당사국 대표들이 대화 재개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IS, 히잡, 국제유가, 그렉시트, 브렉시트, 스위스 국민소득, 인종갈등, 미국대선, 일대일로, 지카 바이러스, 사드, 북핵... 외신을 타고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소재다. 이를 제대로 모르면 현대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 나아가 무역, 안보에서 생존을 보장받기 힘들다. 인류역사가 제국주의 시대로 변모한 이후, 자본과 권력은 국경을 넘어 세계로 뻗는다. 냉혹한 국제 정치, 경제 무대에서 자본(Capital)과 힘(Hegemony)의 논리를 제대로 꿰뚫어야 하는 이유다. 단비뉴스는 <단비월드>를 통해 국제사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표면적인 움직임과 그 이면의 실상을 파헤친다. 난마처럼 얽힌 우리 앞의 과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세계평화와 인류 행복을 증진하는 열쇠를 얻기 위해서다. (편집자)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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