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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하지만 굉장한
[글케치북] 적폐
2017년 10월 13일 (금) 21:30:08 안윤석 PD eunomiadike3@gmail.com

공자에게

   
▲ 안윤석PD

공구여, 사람들은 이제 당신을 보고 공자라 하더군. 2017년으로 떨어진 난 요새 밤잠을 잘 못자오. 내 평생 피지배층 편에 서서 만든 사상을 여기선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오. 이게 다 당신 탓이오. 한(漢)나라 왕이 그때 당신 이론을 채택하지만 않았어도 세상은 이리 흉흉하고 각박하게 변하지 않았을 거요. 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겸애교리’를 주장했소. 인간은 모두 같은 존재이기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어떤 직업을 갖든 서로를 해(害)하게 해선 안됨을 천명했었단 말이오. 뭐라?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 어허, 아니되시겠소. 나 묵자요.

   
▲ 묵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겸애교리(兼愛交利)'를 주장했다. ⓒ EBS1 <절망을 이기는 철학, 제자백가> 갈무리

공자여, 당신이 바라던 것은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각자 맡은 바 직분을 지키며 서로 사랑하자는 것 아녔소? 분(分)과 별(別)이 있는 차등적인 사랑, 그런 뜻 아녔소? 그런데 보시오. 차등이 생기고 “~답게”라는 말이 생기니 후세 사람들은 이제 직분을 나눠버렸소. 차이는 차별을 만들었소. 신분이란 이름으로 말이오. 내 한마디 묻겠소이다. 사(士), 농(農), 공(工), 상(商)은 그 직분은 다르나,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 꼭 필요한 것 아니겠소? 이 모두를 사랑으로 감싸도 시원찮을 판에 당신을 그토록 따른다는 제자들은 이를 차별하고 신분화 했으며, 멸시에 갑질까지 해대오. 제자들 꿈에 나타나 혼을 좀 내시오! 내가 볼 때 이건 아니오. 직업의 귀천과 차별, 멸시, 대를 이은 가난의 대물림까지, 이건 당신이 말하는 사랑, ‘인(仁)’이 아니오! 적폐(積幣)요 적폐!

공자여, 당신이나 나나 결국 지향하는 바는 같은 ‘사랑’이라는 걸 왜 모르오? 그대의 이론이 맞을지도 모르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아두시오. 직업에 귀천은 없음을. 귀천 없이 사랑해야만 하는 ‘직업의 겸애’가 있다는 것을 말이오. 얼마 전 난 일본의 한 여인을 만났었소. 그녀의 직장은 책이 완성되기 전 원고를 최종적으로 들여다보는 ‘편집부’였소. 오타는 없는지, 표현은 이상하지 않은지, 책에 기술된 사실이 맞는지를 그녀는 확인했소. 이 직업은 눈에 띄지 않소. 사람들이 지하실에서 교열하는 그녀를 보며 하찮은 직업이라며 혀를 찼소.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었소.

세상에는 꿈을 이룬 사람도 많지만 내 꿈은 이게 아니었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소. 그녀의 꿈은 교열과는 먼 화려한 일이오. 하지만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를 보며,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나날들이 의미 있고 소중한 나날로 바뀔 수 있음을 난 알았소. 하찮은 직업이란 없소. 모두 필요한 일이오. 사람들이 하찮다고 편가르기를 해놓았을 뿐이오.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랑으로 대한다면 우리 모두가 의미 있는 나날을 보낼 것이라 자신하오.

공자여, 난 그녀를 영원히 응원할 생각이오. 그녀뿐만 아니라 꿈을 이뤘든, 이루지 못했든, 현재 일에 긍지를 갖고 세상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소소하지만 굉장한 모든 이들을 응원할 생각이오. 하늘로 다시 돌아갈 그때까지 난 ‘겸애’할 생각이오. 난 틀리지 않았소. 이번엔 날 믿어주시오. 과거의 우리는 반목(反目)했지만, 소소하게 살아가면서도 굉장한 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이번 한번만은 날 믿고 지켜봐주지 않겠소?

묵자가


편집 : 이창우 기자

[안윤석 기자]
단비뉴스 영상부장, 전략부, 시사현안부 안윤석입니다.
오늘도 또 다른 another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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