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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에게 나무가
[글케치북] 혼밥, 혼술, 혼행, 혼영
2017년 06월 01일 (목) 08:55:35 안윤석 PD eunomiadike3@gmail.com
   
▲ 안윤석PD

내일이면 당신이 앉았던 내 밑동도 이제 썩어 문드러질 거요. 앞으로는 술병 들고 찾아오지 마시오. 내 위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당신을 보면 내가 더 슬프니 말이오. 다 늙어서 매일 찾아오는 당신을 보면서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았소. 잠깐은 행복했었지. 난 당신이 어렸을 적에 그늘이 되어주었고, 배고프다고 하면 내 열매를 내어주었소. 당신이 성인이 되고 살 집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난 당신에게 내 몸통과 가지까지 내어 주었소. 그 뿐이오? 당신은 자식을 장가보내고 나서 내 밑동을 원했소. 그래서 난 내 밑동까지 주었지. 내 모든 것을 주었소. 당신도 알다시피...

   
▲ 나무는 노인에게 그늘,열매,가지 그리고 몸통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 The Giving Tree 갈무리

노인이여, 내가 그대에게 모든 것을 줘서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오. 나라고 해서 열매를 빼앗기고, 가지와 몸통이 끊어질 때 안 아팠겠소? 날카로운 톱과, 손으로 꺾어지는 내 가지들을 느끼자니 너무나 아팠소. 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었소. 당신의 부탁? 당신의 이야기들? 보람은 잠깐이었소. 그리곤 당신이 미웠지. 난 주기만 했을 뿐 내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언제부턴가 당신은 내 밑동에 앉아서 술을 병째 들이키며 혼잣말을 하더이다. 엿들으려 한건 아니었지만 우연찮게 듣게 되었소. 미안하오. 당신의 혼잣말을 듣고 울컥했소. 이제 난 당신을 미워하지 않으려 하오. 왜냐하면 당신도 나와 같기 때문이오. 

당신은 당신 자식에게 나처럼 모든 것을 주었다지. 당신의 아들이 도시에서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했을 때 그대는 뼈빠지게 일한 돈을 쥐어주었고, 당신 아들이 살 집과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 했을 땐 당신은 내 몸통과 가지로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대의 집도 주었다고 했소. 하지만 그대 아들은 당신이 병이 들어 불편한 삶을 살아도, 집을 줘 가난해지고, 병마에 시달려도 찾아오지도 않는 불효로 그 은혜를 대신했지. 참 불쌍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하지만 난 다음 이야기가 더 비참하더이다.

당신은 아들을 상대로 부양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지. 결국 법원의 판결대로 당신 아들은 매월 60만원을 그대에게 줘야 한다지만, 한때 죽고 못살았던 부자 맞소? 이제 더 이상 아닌 것 같소. 남보다 못한 사이라니. 물론 당신은 스스로를 위안했지. 내 밑동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면서 말이오. 그러곤 당신은 크게 웃었지. 자기와 같은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오. 10명 중 3명은 당신처럼 소송까지 간다는 사실을 나도 그때 알았소. 불쌍한 노인 같으니라고...

난 당신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었소. 하지만 난 다시 태어난다면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진 않을 생각이오. 당신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소. 당신도 느꼈을 거요. 퍼주기는 스스로를 털 뽑힌 닭처럼 만든다는 것을... 아니 가까이에 있는 날 봐도 그렇잖소. 밑동만 남겨진 커다랐던 내 모습 말이오. 어쨌든 다음 생에 당신은 자식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투자하길 바라오. 물질이 아닌 정서적인 충만감만 주는 것은 어떻겠소? 욜로(You only live once)로 살아보는 건 또 어떻겠소? 나도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라 지혜롭게 주는 나무가 되어봤으면 좋겠소. 이젠 다신 오지 마시오. 술병을 놓고 당신 삶을 사시오. 


편집 : 황두현 기자

[안윤석 기자]
단비뉴스 영상부, 전략부, 환경부, TV뉴스부 안윤석입니다.
오늘도 또 다른 another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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