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권력투쟁

▲ 고륜형 기자

“죽음의 숲은 금기의 지역으로, 이곳으로 도망쳐 '죽음의 숲의 사제'가 된 노예는 노예의 신분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지난날의 노예였던 '죽음의 숲의 사제'가 존재했다. 따라서 나중에 온 노예는 그 사제를 죽이고, 스스로 사제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프레이저, 황금가지)

죽음의 숲의 사제가 되려는 노예는 이전 사제와는 달라야 했다. 이미 있던 사제를 죽이고 새로운 죽음의 숲의 사제가 돼야 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새로움은 필수였다. 차별화가 필요했고 기존과 달라야 했다. 권력투쟁은 새로움과의 싸움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존과 달라야 했다.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탄탄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후보에 올랐지만 그 이상이 필요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차별화가 필요했다. ‘적폐 청산’은 그가 기존 10년 보수 정권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프레임이었다.

헤겔은 <계몽의 변증법>에서 새로움에 대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체제를 타파하고 새로움을 찾는 것은 이성적이고 진보적인 인간으로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투쟁의 정치사로의 확장은 진정한 정치발전의 시작이라고 라이프니츠는 말했다.

▲ 권력투쟁은 새로움과의 싸움이다. ⓒ KBS

새로움은 인류를 발전시킨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인류는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총, 균, 쇠를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다른 집단을 정복하기 위해 총, 균, 쇠를 이용하기도 했다. 전쟁이 발발했고 계속되는 살상과 전쟁에 위기감을 느낀 인류는 사법체계와 국가조직을 발달시켰다. 총을 막기 위해 경찰과 행정조직을 만들었고,  균을 막기 위해 병원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쇠를 막기 위해서는 협상의 기술이 발전했다. 인류는 더 이상 예고되지 않은 전쟁과 살상 위협으로부터 불안에 떨지 않게 됐다. 면역체계의 발달로 평균 수명 역시 길어졌다. 진보는 인류의 평등을 추구했다.

21세기 현재 인류는 자본이라는 새로운 권력과 싸우고 있다. 안정적인 국가 조직과 사법 체계, 면역 시스템을 갖춘 지금,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은 자본이다. 자본 권력은 인류의 평등한 발전을 저해하고 한 국가 내에서도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저임금을 비롯한 노동 문제가 인권 문제로 이어졌고 부의 재분배는 난제중의 난제로 떠올랐다.

금기의 지역인 죽음의 숲으로 들어온 노예는 기존의 사제를 죽여야 한다. 자본 권력 앞에 불평등을 해소해야만 하는 과제를 노예는 떠안고 있다. 문재인은 적폐 청산이라는 말이 그저 빈 구호로만 그치지 않게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기존 사제를 죽이고 새로운 죽음의 숲의 사제가 될 수 있다.


편집 :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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