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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기생충 그만두려고 조기은퇴했죠”
[지역∙농업이슈] 윤석원 로뎀농원 대표
주제 ① 나는 왜 농부가 되었나
2017년 09월 16일 (토) 22:24:16 강민혜 박상연 윤연정 유선희 기자 unicorn131@hanmail.net

28년간 강단에 서던 교수가 ‘새내기’ 농부가 됐다. 윤석원(64) 전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가 미니사과를 키우는 로뎀농원 대표가 된 것이다. 그는 중앙대와 미시시피주립대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한 학자였지만 정년을 3년이나 앞둔 지난해 2월 명예퇴직을 자청했다. 빨리 농사를 짓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지역농업문제세미나]에 특강을 하러 온 그는 프린트 기계가 고장 났다며 손수 정리해온 A4용지를 들어 보이며 농부처럼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종이에는 그가 ‘왜 농부가 되려 했는지’ 고뇌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 윤석원 로뎀농원 대표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농부로 전직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임형준

‘농업경제학의 길’을 뒤돌아보다

“농업경제학자로 평생 ‘학자의 길’을 걸어왔어요. 그런데 은퇴할 때가 가까워오니 학자로서 내가 우리나라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뭘 기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 대표는 은퇴를 앞두고 학자로서 회의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연구가 농촌 문제 해결에 도움 되지 않았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농업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한계도 지적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농업경제학은 ‘100% 경제학’이라고 짚었다. 주류경제이론을 가져다 농업농촌농민 문제에 적용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농업경제학을 이끄는 학자 대부분이 미국에서 공부한 점도 문제다. 학자들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경제학은 한국 농촌의 현실을 오롯이 담기 어렵다.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현대 주류경제학은 인간 대신 ‘경제인(호모 이코노미쿠스)’을 가정한다. ‘경제인’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형이다. 경제학이 학문으로서 ‘보편타당성’을 좇는 과정에서 ‘경제인’이라는 객관적 기준을 내세운 것이다. 윤 대표는 “인간은 이성과 감성, 이기성과 이타성이 공존하는 존재”라며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전체적인 면을 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경제 행위는 수학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인’의 경제 행위는 수학으로 풀립니다. 경제인 1, 경제인 2, 아무리 수천 명이 와도 ‘경제인’은 똑같은 인간 형태인 거죠.”

농업·농촌·농민 없는 농업경제학

경제학을 농업 현실에 적용하기 힘들다고 느낀 윤 대표는 대안 이론을 찾았다. ‘행동경제학(Behavior Economy)’이 그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심리학이나 사회학, 생리학 등 포괄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우리나라에는 일본 작가 도모노 노리오의 저서 <행동경제학>을 통해 2007년에야 소개됐다. 행동경제학은 1970년대부터 등장했다. 행동경제학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은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 프린스턴 등 유명 대학 경제학과에서는 이미 행동경제학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농민’ 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까? 땅, 쌀, 까만 얼굴, 고령…. 이런 모습이 연상 되죠. 농민과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농업경제학은 농사를 짓는 농민의 경제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에는 ‘행동경제학’을 개설한 대학이 없다. 윤 대표는 “학문으로 인정받은 행동경제학이 우리나라에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며 한국 경제학계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그는 “주류 경제학의 통계학, 계량경제학, 수리학 등은 농업농촌농민의 현실 문제와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그를 ‘농부의 길’로 안내한 건 농업 현실에 맞지 않는 한국 농업경제학의 학문적 한계였다.

“은퇴했으면, 농촌에서 살아야지”

“농업은 존재해야 합니다. 농촌과 사람이 좀 살아야 합니다. 농민들을 저렇게 놔둬서는 안 됩니다’ 이런 얘기를 평생 했습니다. 그러면 은퇴한 다음에는 내가 소중하다고 얘기한 농촌에 가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일생 동안 농업이 소중하다고 했으면, 은퇴한 뒤에는 농촌에 가서 살아야 도리에 맞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윤 대표는 평생 농업 문제를 연구하고, 관련한 공직에 있었다면 농가의 현실을 더 잘 알기에 ‘가서 사는 것이 맞다’고 역설했다. 인구가 자꾸 줄어드는 농촌 인구 현실에서, 관련된 일을 한 사람들은 은퇴 후 농업 속으로 들어가 지방과 농민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평생을 그들에게 기대 삶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 농촌에 산다고 모두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다. ‘거주만 해줘도 좋다’는 것이 윤 대표의 생각이다. ⓒ 임형준

윤 대표는 농촌으로 주소를 이전했을 때 이야기도 했다. 그는 2016년 2월에 양양군으로 주소를 이전했다. 주민자치센터에 가니 5만원어치 재래시장 상품권과 함께 쓰레기봉투를 받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농촌으로 주소를 옮기면 지방자치단체에게 주는 정부 교부금이 늘어나게 된다. 또한 자동차세 등의 지방세도 증가한다. 한 가정이 주소를 지방으로 옮기고 살아주기만 해도 농촌 지역 재정에 큰 도움이 된다.

“현실이 어려우니 나라도 내려가서 농사 짓자”

고령화와 청년 인구 이탈 말고도 한국 농민들의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1995년부터 시작된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이다. 자유무역협정 이전의 제네바관세협정이나 GATT 체제에서는 농산물만큼은 자유무역에서 제외됐다. 농산품을 일괄적으로 상품화해 무역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WTO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됐던 농업과 농산물 시장에도 개방을 강요했다.

윤 대표는 WTO 체제의 출범 명분을 ‘기아 문제 해결’로 보았다. 자유무역협정 이전에는 그동안 각국 내에서만 거래되던 농산물이 WTO 출범 이후 세계 곳곳에서 판매될 수 있게 됐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자연스러운 경제 논리에 따라 각국의 잉여 농산물들이 빈곤 국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1995년 WTO 출범 이후 현재까지 22년이나 지났음에도 기아 문제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체리, 오렌지, 망고 등 외국산 농산물의 시장 습격으로 국산 농산물들은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결과도 낳았다. 결국 단일 품종의 단작화로 이익 극대화를 노리게 되어, 국내 농산물 시장이 급속도로 작아지게 됐다.

우리 농업은 농산물 개방이라는 급작스러운 국제 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 적응하는 시기도 갖지 못한 채 끌려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겪었다. WTO 국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윤 대표는 농업의 변화 현장을 곁에서 지켜보며 농업•농촌•농민의 현실이 매우 어렵다고 느꼈다. 교육자와 연구자로서 ‘농민들의 현실을 보다 직접 느끼고 보탬이 되고 싶다’는 게 윤 대표의 뜻이다.

노동이 부끄러운 사회가 만든 농부 소외

“대부분이 그래요. 농촌에서 어떻게 사느냐? 농민이 되어서 그 힘든 일을 어떻게 하느냐? 왜 농민이 되었느냐? 그러면 내가 이렇게 얘기하죠. 농업•농촌•농민에 빌붙어서 먹고 살고 싶지 않다. 기생충보다 백번 낫다. 당당하다. 노동하라.”

일찍이 마르크스는 노동으로부터 인간이 소외되는 현상을 지적했다. 현대인에게 ‘밥벌이’를 위해 땀 흘리며 노동하는 것은 더 이상 행복하고 보람찬 일이 아니다. 힘들고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노동일뿐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농부를 대하는 태도는 노동의 철학으로부터 멀어지는 우리 모습의 자화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은퇴 후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의 50%가 넘는 비중이 농사가 아닌, 여가와 건강, 자유로운 삶을 위해 도시를 떠나고 싶다고 응답했다. 윤 대표와 같은 지식인이 농부가 되어 노동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은 이유다.

윤 대표는 농부의 소외 문제를 성경에 나오는 유럽의 무두장이 일화에 빗대어 지적했다. 중세시대 귀족들은 가죽제품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귀족으로 인정받았다. 유럽에 가죽 제품이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가죽제품을 만드는 무두장이는 노예보다 신분이 낮았다. 기이한 점은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사람이 만든 가죽을 가지고 다녀야 귀족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죽제품이 중요한 재화였다면, 그 사람들을 사회가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 유대인 사회에서 불결한 직업으로 간주된 무두장이는 랍비가 ‘세상에 무두장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나 무두장이 그에게는 화(禍)로다’ 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 flikr

“세상에서 먹는 것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게 어디 있나요? 우리 다 먹고 살기 위해 이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신분 유지를 위해 필요한 가죽제품보다 살기 위해 필요한 먹거리가 훨씬 더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필요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사람이 농민입니다.  우리는 농부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어떤 대접을 받습니까?”

‘농부 없는 식탁’,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에게

결국 먹을 것을 생산하는 농민에게 우리가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는가의 문제이다. 우리 식탁을 지켜주는 농부의 노동이 없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서민들에게 올 것이 자명하다. 현재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OECD 2015년도 기준으로 23.8%밖에 안 된다. 쌀을 제외하면 3.7%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100% 수입쌀만 먹는다고 한다면?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수입해서 먹게 된다면? 물가 불안이 제일 큰 문제가 된다.

최근에 AI 문제로 달걀 파동이 있었다. 계란이 부족해 가격이 2배나 올랐다. 경제 당국에서는 소비자들의 수요에 공급을 과도하게 맞추려다 보니 수입산 달걀을 공급하게 되었다.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달걀을 수입했지만 결국 국내 계란산업 자체를 망가트리게 되었다고 윤 대표는 지적한다.

달걀 파동은 단순히 달걀 가격 인상이 전반적인 물가를 상승시켜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이러한 에그플레이션 현상(agflation)은 농작물 가격이 상승하면 그 영향력이 점점 확대돼 물가 전체가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처럼 곡물자급률이 낮은 나라일수록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만약 우리가 100% 수입해서 먹고 산다면 세계경제 추세와 국가 간 외교 문제 등에 따라 쌀, 축산물, 채소와 같은 먹거리 가격이 불안정해지고 변동기복이 심해질 것이다. 경제적 피해는 고스란히 돈 없는 서민층에 돌아간다.

“그 힘든 농사를 지어주는 농민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아야 해요. 농사지어서 1천원 버는 상황인데도 그들은 농사짓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경쟁력 없는 학문’으로 낙인 찍혀 퇴출된 농업경제학

“두산그룹이 중앙대학교를 인수하면서 산업경제학과를 일거에 없애버렸습니다. 20년 전에 삼성그룹이 성균관대학교를 인수하면서 제일 먼저 없애버린 학과가 농업경제학과였던 것처럼 말이죠. 이런 사례는 타 대학에서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윤 대표는 지난해 2월 중앙대학교 산업경제학과 교수직에서 명예 퇴임했다. 7년 전, 산업경제학과가 경제학과와 통합되면서 산업경제학과가 없어졌고, 윤 대표는 그때 은퇴 결심을 했다. 중앙대학교 산업경제학과는 1963년 정경대학 농촌개발학과로 출발해 1972년 농과대학 농업경영학과, 1974년 농업경제학과, 1982년 산업경제학과로 48년간 이어져왔다. 그러다 지난 2010년 중앙대가 산하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0개 학과•학부로 통폐합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사라졌다.

수도권 대학 중 농업경제학과가 존재하는 곳은 서울대와 고려대뿐이다. 그나마 서울대에서는 농경제사회학부로, 고려대에서는 식품자원경제학과로 이름이 바뀌어 간신히 명목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농업이 우리 국민으로부터 우대받지 못하는 산업으로 전락하면서 대학의 농업 관련 학과도 ‘경쟁력 없는 학문’으로 분류된다.

“저와 함께 (산업경제학과에) 계셨던 교수님들은 현재 중앙대 경제학부 소속으로 있습니다. 저는 학과를 옮기지 않고 학교를 떠난 쪽이고요.”

인생을 관조하는 소박하고 행복한 삶

윤 대표는 60대에 접어들면서 ‘인생 후반부의 여유로운 삶’을 꿈꿨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둔 뒤 고향 양양에서 550평(1818㎡) 농지를 경작하는 농부가 되었다. 땅에는 미니사과나무 200여 그루도 심었다. 좁은 면적에서 최대 수량을 재배하기 위해 2m~3m 간격으로 나무를 심는 밀식재배법을 따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농사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교수로 일할 때보다 훨씬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윤 대표는 “생전 해보지 않은 일이라 그런지 일을 하다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며 “돈을 주고 일손을 구해보려는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첫 농사 도전이었던 작년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마을 이장님께서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교수님이 의도치는 않았더라도 여기저기 소문 내고 농사하러 오신 분인데, 꼴 난 농사 지으면서 돈 주고 농민들 일손 사고 그러면 안 좋을 것 같다고요. 농민들이 볼 때는 제가 짓는 농사 정도는 별거 아니거든요.” 

   
▲ 로뎀농원 미니사과나무(알프스오토메) 밭에서 가지 유인 작업을 하고 있는 윤석원 대표. 가지유인은 균일한 고품질 과일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 윤석원 페이스북

윤 대표는 결국 모든 농사일을 직접 해내기로 결심했다. 일손은 윤 대표 자신, 그리고 함께 고향으로 와준 아내뿐이었다. 일을 하면서 너무 힘들면 마을 농민들에게 불평도 했다. “농촌 생활이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볼멘소리를 한 것이다.

“불평을 하니까 한 농민 분이 그러시더군요. ‘농사일은 자기가 시간을 내지 않으면 절대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라고요. 정말 명언입니다. 농사는 결국 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자기 시간을 내야 하니까요.”

윤 대표는 농촌에 와서 농민들의 인생철학과 삶의 방식을 배우고 있다. 농부가 되기 전 꿈꿨던 삶의 여유를 찾는 방법도 터득했다. 농사일이 힘들다고, 수익이 적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었다. 농민들은 적게 벌면 적게 쓴다. 물론 농촌에서는 먹거리 대부분을 농사지어 해결하기 때문에 생활비 자체가 적게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들이 인생을 관조하는 태도다. 도시에 살 때는 급한 삶에 익숙해서 스스로 인생을 관조하고 고민할 시간 여유가 없었다. 결국 농촌은 윤 대표에게 그가 바랐던 ‘인생 후반부의 여유로운 삶’을 선물한 셈이다.

“30년 가까이 한국 농업과 농촌 문제를 연구한 연구자로서, 농부가 된 지금이야 말로 제 인생 64년 중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대산농촌재단과 함께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이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 : 이창우 기자

[강민혜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장, 환경부, TV뉴스부, 시사현안부 강민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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