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제천에는 왜 북적대는 시장이 없을까

제천은 시장의 도시다. 인구 13만의 도시가 7개 전통시장을 품고 있다. 같은 충북의 청주시가 인구 83만에 전통시장 15곳이 있는 것과 대비된다. 제천 전통시장 중 규모가 제일 작은 박달재시장은 상설시장이 아닌데도 전성기에는 800평 규모로 장이 섰다.

그러나 제천의 시장도 도시의 부침에 따라 영고성쇠를 함께한다. 제천에서 가장 오래된 중앙시장은 노천장이 열릴 때부터 강원도 원주나 영월에서도 장꾼들이 몰려왔다. 1989년 노천장 자리에 아케이드를 세우고 828개 점포를 품었던 중앙시장은 현재 350개 점포만이 남았다.

‘도시의 섬’이 되어버린 전통시장

“마수걸이 시원찮은 날이 많지. 뭐 요즘 사람들이 시장에서 사나, 다 인터넷에서 사지. 여기 물건은 오늘 손님 손도 못 탔어.”

▲ 한산한 제천 중앙시장 모습. 구경하는 손님도 불과 몇 사람 뿐이지만 상인들은 애타는 마음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한다. Ⓒ 고하늘

지난 6월 5일 늦은 오후 제천 중앙시장은 그야말로 ‘도시의 섬’이었다. 시끌벅적한 도로와 달리 아케이드는 상인과 가판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감시간을 알리는 ‘떨이’나 가격을 흥정하는 팽팽한 줄다리기는 볼 수 없었다. 건물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목 좋은 주단가게. 고령의 사장이 먼지떨이로 애꿎은 가판대 물건을 털고 있었다. 30년 넘게 장사를 하지만 “점점 시장 경기가 안 좋아진다”며 텅 빈 아케이드 안 길을 가리켰다.

중앙시장 2층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시장문화센터와 청년 상인들이 꾸리는 ‘청년몰’ 등 갖출 것은 다 갖췄지만 절반은 입주자가 없다. 수입잡화점을 운영하는 유경숙(61) 씨는 “갈수록 너무 침체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청년몰이 들어서고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했던 유 씨는 아직 “간간이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있지만 시장 활성화를 크게 체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갈수록 사람들 마음속에 제천 중앙시장이 “없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 중앙시장 2층은 점포 절반 가량이 비어 있다. 장사를 하면서도 가게를 내놓은 상점도 많다. Ⓒ 고하늘

시장 현대화가 발길 끊은 손님 불러올까

온라인 상점의 급성장과 대형 마트 입점이 전통시장 상권을 위협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제천시는 지역경제와 서민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로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큰 틀은 시장 현대화 정비와 청년몰 조성 사업. 쾌적한 시장 거리를 조성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현대화 시설 사업과, 청년 상인들의 창업을 돕고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청년몰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두 사업은 손님의 발길을 최대한 전통시장으로 돌리려 한다는 점에서 맥이 닿는다. 그러나 시장 상인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대책은 다름 아닌 ‘먹거리’다.

“먹거리가 최고 중요하지”

“전에는 서민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었어요. 다 좋아했어요. 서울 사람들이 와도 엄청 좋아했거든요.”

22년 동안 제천 중앙시장에서 수입잡화점을 운영한 유 씨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사람이 없어 한적한 시장은 초여름에도 스산했다. 제천 중앙시장은 먹거리를 파는 먹자골목이 시장 뒤편에 따로 있다.

▲ 중앙시장 먹자골목. 그러나 먹자골도 쇠퇴하고 빈 점포로 남은 곳이 많다. 중앙시장 먹자골목에 있던 식당들 상당수는 이권 다툼을 벌이다가 인근 상권으로 이동했다. Ⓒ 고하늘

중앙시장 먹자골목은 한때 각종 먹거리로 유명해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19년 전 정비사업의 하나로 난립한 좌판을 일제히 정리하면서 시장을 찾는 소비자가 줄어 침체의 늪에 빠졌다. 그나마 2015년 ‘청년상인창업지원사업’에 이어 2016년 ‘청년몰조성사업’으로 청년장사꾼들이 시장에 들어와 먹거리 장사를 하고 있다. 유 씨는 “중앙시장은 나이 든 이들이 많이 찾는데 청년들이 파는 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뿐”이라며 “나이 든 사람들도 좋아할 먹거리를 팔면 좋겠다”고 했다.

전주 남부시장은 야시장과 청년몰로 명성

청년몰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전통시장에 젊은 활기를 불어넣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꾀하는 상생의 장이다. 전주 남부시장과 광주 송정역시장을 성공사례로 꼽는다. 100년이 넘는 남부시장도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침체를 겪었다. 그러나 야시장을 운영하고 창고로 사용하던 2층 공간에 청년장사꾼들이 들어와 청년몰을 열면서 어려움을 극복했다. 남부시장은 하루에만 1만명이 찾는 명소로 떠올랐다. 남부시장은 한옥마을과 가깝다는 지리적 요건도 있지만 피순대, 콩나물국밥 등 시장 내 먹거리와 30여 개 청년몰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과 음료, 술 등의 먹거리가 소비자를 끌어오는 요소로 작용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1916년 문을 연 스페인 3대 시장 중 하나인 마드리드의 산 미겔 시장도 ‘먹거리’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러나 100년 전통의 시장도 현대화한 대형 마트가 들어오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마드리드 시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2009년 리모델링을 하면서 ‘미식전문식당’ 개념을 도입했다. 산 미겔 시장은 손님이 다양한 음식을 쉽게 맛볼 수 있도록 ‘한입 음식’을 판다. 상점에서 파는 음식을 우리 돈 1,000원 남짓인 1유로에 즐길 수 있는 상품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양으로 다양한 먹거리를 고루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손님의 구미를 당긴다. ‘한입 음식’을 통해 손님을 유입하고, 매출을 올릴 수 있어 상인들도 긍정적이다. 덕분에 산 미겔 시장은 마드리드 지역 경제의 중심지이면서 대표적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 손님들로 북적이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 미겔 시장. 상점마다 다양하고 값싼 먹거리를 내걸어 시장 활성화를 꾀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한입 음식'은 손님의 발길을 이끈다. Ⓒ flickr

전통시장의 매력, 스스로 가꾸고 발산해야  

“상인들도 청년이다 보니 찾는 사람도 대부분 젊어요. 많으면 40대 정도죠. 시장을 찾는 고객층의 연령이 높기 때문에 기존 상인들의 수요층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중앙시장이 변하려면 새로운 고객, 젊은 고객을 유입해야 해요. 청년몰 청년상인들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먹거리를 판매해 젊은 사람들을 끌어올 수 있어야죠.”

정해운 제천중앙시장 청년몰조성사업단장은 젊은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먹거리 등의 요소를 강조했다. 정 단장은 “기존 상인들이 변화하는 시장 흐름에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청년몰과 더불어 전통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새로운 먹거리와 볼거리를 마련해 젊은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것이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여자 친구와 시장을 찾은 조대연(30) 씨는 “전통시장에 푸드트럭이나 퓨전음식 같은 다양한 먹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전통시장을 찾는 이유 중 먹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전통시장 상인과 청년 상인이 함께 살 수 있는 열쇠는 먹거리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상인이 시장에서 먹거리 장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를 시장으로 끄는 요소가 시장 활성화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통시장을 모처럼 찾았다는 대학원생 고규녕(27) 씨는 “어릴 때 엄마와 장을 보러 가서 먹은 국밥을 잊지 못해 지금도 시장을 찾는다”고 했다. 전통시장에 가면 울퉁불퉁한 길이 불편하고, 시끌벅적한 인파 속에 이리저리 부딪히느라 진이 빠진다. 그러나 싱싱한 식재료, 상인들의 정겨운 목소리,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먹거리는 전통시장만의 매력이다. 매력은 남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꾸어 발산하는 것이 아닐까?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대산농촌재단과 함께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이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 :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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