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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 오명 벗겨주는 풍수의 심리학
[지역‧농업이슈] 모자람을 채우는 한국의 비보풍수
2017년 07월 10일 (월) 20:51:48 강민혜 박경배 기자 miskie85@naver.com

경상북도 안동 내앞(川前)마을 초입의 반변천이 굽이쳐 흐르는 곳. 임하댐의 보조댐이 있는 곳에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섬 안에는 노송들이 늘어서 있다. 이름하여 개호송(開湖松). 내앞마을 의성김씨 후손들이 문중 이름을 걸고 보존해온 숲이다. 조선 성종 때 입향조(入鄕祖)인 김만근이 소나무 종자를 심어 조성했다. 임진왜란 직후 홍수로 숲이 유실된 적은 있지만, 세금을 내기 위해 나무를 베어 팔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을 때도 문중 결의를 통해 지켜왔다.

 

   
▲ 내앞마을 개호송숲. 원래는 반변천 가에 조성된 숲이지만 댐 건설로 물이 불어나면서 일부가 물에 잠겨 섬으로 변했다. ⓒ 문화재청

‘이 소나무가 없으면 내앞마을도 없음이 분명하다(無此松卽無川前必矣). 내앞마을은 우리 종사(宗祀)가 있는 곳이다. 종족의 기반이 흥하고 피폐함은 이 소나무에 달렸으니, 조상을 존중하는 뜻이 크다면 어찌 이 소나무를 보호하는 것에 마음을 다하지 않겠는가.’

1697년 의성김씨 후손 99명이 서명한 마을 결의문 <개호송금완의(開湖松禁完議)>의 일부다. 글에서 숲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강하게 느껴진다. 1737년에는 문중 사람의 옥바라지 비용을 마련하려고 나무를 베어 판 것을 반성하는 <동중추완의(洞中追完議)>도 남겼다.

‘후에는 마을 사람 가운데 비록 경향(京鄕)의 옥사를 만나는 집이 있을지라도 이 소나무에 대해서는 다시는 감히 마음을 내지 말고 선조들이 정한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도대체 왜 의성김씨 후손들은 한낱 소나무 숲의 보호를 위해 그토록 각별히 노력해왔을까?

열린 수구를 막아주는 내앞마을 개호송숲

“무릇 수구가 엉성하고 널따랗기만 한 곳에는 비록 좋은 밭 만 이랑과 집 천 칸이 있어도 다음 세대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저절로 흩어져 없어진다. 그러므로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눈여겨본 후 구해야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구절이다. 삶의 터전을 구할 때는 가장 먼저 수구가 닫혀있는지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수구는 물의 통로이자 바람의 통로다. 풍수에서는 수구가 좁아야 명당으로 통한다. 자연환경이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을 전제로 좋은 땅을 찾는 이론인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다.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이다. 수구가 넓게 터져있으면 겨울의 차가운 북서 계절풍을 막을 수 없고, 물이 다 빠져나가 농업용수 공급이 어려워진다.

   
▲ 의성김씨 집성촌인 안동 내앞마을. 의성김씨는 독립운동 유공자를 85명이나 배출한 집안이다. ⓒ 강민혜

내앞마을은 이중환이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봉화 닭실마을과 더불어 영남의 4대 길지로 꼽은 곳이다. 4곳 모두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인 데다, 명당이어서 풍수에서는 이런 곳을 집터로 삼으면 재물이 모이고 자손이 번성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애초 내앞마을은 명당이 되기에는 한 가지 흠이 있었다. 마을 서쪽의 지나치게 넓은 수구였다. 개호송은 바로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된 인공 숲이다. 굳센 기상의 소나무들이 열린 수구를 막고, 마을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가려주는 구실을 했다. 자연이 만든 땅에 사람의 힘을 보태 명당을 만든 것이다. 의성김씨 후손들이 수백 년간 정성을 다해 개호송숲을 지켜온 이유다. 이처럼 땅의 모자람을 채워 명당으로 만드는 방법을 비보풍수(裨補風水)라 한다.

   
▲ 보물 제450호인 안동 의성김씨 종택.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 강민혜

전통적 풍수의 명당 개념을 무너트린 비보풍수

비보풍수는 한국 풍수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풍수의 기원으로 알려진 중국에는 비보풍수 사례가 많지 않다. 우리나라 풍수는 신라 말기의 승려이자 한국 풍수의 시조인 도선국사가 주장한 비보설의 영향을 받았다. 도선의 전기를 기록한 <고려국사도선전>에는 비보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이 만약 병이 들면 곧 혈맥을 찾아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병이 낫는다. 산천의 병도 그러하다. … 흠이 있는 땅을 보살피고 치료하며 보완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그 흠결이 있는 곳에 사찰을 세워 비보하는 방법이다.’

도선은 선승, 곧 선불교의 승려였다. 선불교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열린 교리를 내세운 불교의 종파다. 이는 도선이 주장한 비보설, 곧 ‘비보를 통해 어디든 명당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나라의 풍수는 도입과정에서 도선에 의해 선불교 사상과 결합하였다. 비보풍수가 한국 풍수의 특징으로 불리게 된 사상적 배경이다.

   
▲ 신라 말의 승려인 도선국사(827∼898)의 초상화.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기도 한 도선은 태조 이후 고려 왕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 강민혜

역사적 배경도 있다. 고려 시대, 태조 왕건은 국가의 쇠망을 막으려고 국토 곳곳에 비보소, 곧 땅의 기가 쇠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절을 세웠고, 무신정권 때는 산천비보도감을 두고 국토의 지형을 살펴 비보를 시행하는 일을 맡겼다. 비보풍수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국가 운영 원리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조선 시대에는 어땠을까? 왕실이나 양반뿐 아니라 서민들까지 비보풍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풍수지리를 연구해온 최원석 경상대 인문학부 교수는 “조선 중기 이후 불교가 쇠퇴하고 마을이 형성되면서 살기 좋은 마을 입지를 가꾸는 과정에서 비보가 필요하게 되었다”며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비보풍수가 성행하게 된 실천적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평원이 많은 중국과 달리 대부분 분지로 이루어진 한국의 지형적 배경도 비보풍수에 영향을 미쳤다. 분지는 땅의 한쪽 입구가 열려 있고 좌우의 산이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 대부분이다. 최 교수는 “그런 지형이 바로 비보가 필요한 지형”이라며 “이러한 지형적, 사상적, 역사적, 실천적 배경을 토대로 한국의 풍수에 비보라는 특징이 생겨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보는 풍수의 발전적 사조입니다. 전통적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은 굉장히 제한적인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그런 땅은 사실 1%도 되지 않습니다. 비보풍수는 땅에 의지한 자연적 상태에서의 명당, 그 논리에서 탈출했기 때문에 의미가 큽니다. 자연 의존적인 측면을 벗어난 것이죠. 부족한 땅을 얼마든지 좋은 땅으로 만들어서 활용하게 합니다. 자연의 힘에 사람의 힘을 합쳐서 지속가능한 명당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비보풍수는 과학이다

풍수는 흔히 미신으로 치부된다. 이는 풍수가 비과학적인 사상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하지만 한국의 비보풍수는 과학적 기능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내앞마을 개호송과 같은 마을숲이다. 마을숲은 비보풍수 중에서도 나무를 심어 흉살을 막는 ‘동수 비보’에 해당하는데, 마을로 불어오는 바람을 숲을 조성해 막거나 송림을 가꾸어 홍수방지와 방풍에 이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 경상남도 남해군 방조어부림. 숲의 그늘 때문에 물속이 어두워지면 깊은 심해인 줄 착각한 물고기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 문화재청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는 천연기념물 방조어부림이 있다. 1640년경, 전주이씨 후손들이 조성한 마을숲이다. 거센 바닷바람을 막는 방풍림, 거친 파도나 해일을 막는 방조림, 물 위로 그늘을 드리워 물고기를 불러들이는 어부림 등의 역할을 해서 방조어부림이라 불린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의 임수>에는 이 마을숲의 재해방지 효과가 기록되어 있다.

‘남해 물건리 숲이 40년 전 남벌된 다음 폭풍이 불 때 마을의 피해가 컸다. 이 숲의 방풍효과는 물건리와 비슷한 주변 지형을 갖추고 있으나 보호림이 없는 인접 마을 대진포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 1933년 8월27일 폭풍으로 논농사와 목화 농사 피해가 물건리에서 각각 20%와 40%, 대진포에서는 각각 50%와 100%가 발생했다.’

이 밖에도 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이 강둑을 따라 심은 2만여 그루 나무숲인 함양 상림은 이 지역의 수해를 예방했다. 조선 시대 서애 류성룡의 형인 류운용이 안동 하회마을에 심은 1만여 그루 소나무 만송정은 둑을 보호하며 낙동강의 범람을 막았다. 비보풍수 목적의 마을숲을 단순한 미신의 산물이라 볼 수 없는 이유다.

   
▲ 경북 안동 하회마을의 만송정 숲. 지금은 1만여 그루가 아니라 수백 그루만 남아있다. ⓒ 문화재청

풍경이 환자를 치유한다

그렇다면 비보풍수의 과학적 기능은 재해방지에 국한된 걸까? 독일 출신 미국 환경심리학자 로저 울리히(Roger Ulrich)는 1984년 <사이언스>에 숲의 치유 효과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쓸개 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기록을 관찰했다. 그가 연구한 46명 환자 중 일부는 창을 통해 작은 숲이 보이는 방에 있었고 나머지는 벽돌담을 마주했다. 그는 각 환자의 바이털 사인, 투약량, 진통제의 종류, 입원 기간 등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여러 지표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작은 숲이 내다보이는 침대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이 벽돌담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입원해있던 환자들보다 24시간가량 먼저 퇴원했다. 창밖으로 자연풍광이 내다보이는 곳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은 진통제도 덜 복용했다.

서던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비더먼 교수는 “보는 것이 낫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치나 노을, 숲 같은 경치를 볼 때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세포들이 활성화한다. 안도감을 느끼는 환경이 병을 낫게 해주는 이로운 신경전달물질들의 분비를 도와 결과적으로 환자의 치유를 돕는다.

환경심리학자들은 이를 두고 생물 애호(Biophilia)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있는 다른 유기체에 끌리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자들의 연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데 환자들은 나무와 꽃이 잘 보이는 공간에서 더 빨리 치유된다. 치매 환자들이 숲길을 산책하고 정원에서 차를 마실 때 인지기능의 퇴화가 늦춰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나무가 가까이 있고 꽃이 근처에 있어야 만족감을 만들어내는 세로토닌이 더 많이 분비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줄어들어서다.

   
▲ 경북 영주시에는 백두대간의 풍부한 산림자원을 이용하여 국민건강을 증진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조성된 산림치유원이 있다. ⓒ 국립산림치유원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꿈꾸었던 지관들

‘주위의 자연환경을 어떻게 조성해야 거주민들이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까? 어떤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까?’ 예전에는 대중을 위한 이런 고민을 치열하게 한 이들이 바로 지관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사는 환경을 개선하고 바꾸어 나가려 했다.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환경을 개선하고 바꾸는 것. 그것이 지관의 일, 그리고 비보풍수의 본질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례와 경험에도 풍수는 예나 지금이나 미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묘지 풍수 폐해가 극에 달했던 조선 시대에는 음택풍수에 대한 비판이 풍수 전체로 옮겨붙었다. 실사구시를 강조한 다산 정약용은 “살아계신 부모님이 자식 잘되라고 그 자식과 마주 앉아 두 손 잡고 훈계해도 어긋나기가 쉬운데, 하물며 죽은 사람이 어찌 살아있는 아들에게 복을 줄 수 있겠는가”라고 풍수를 비판했다.

그렇지만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풍수지리를 바라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대 심리학과 임학계의 연구결과들은 비보풍수가 더 이상 애니미즘 사상에 의한 유물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실용학문임을 증명한다.

인간은 환경을 개선하며 살아간다. 유리창이 깨지면 유리를 갈아 끼우고 비가 새는 집에서는 지붕을 고친다. 이러한 실질적 개선 외에도 심리적 위안을 목적으로 한 다양한 유형의 환경개선이 이루어져 왔다. 창밖 풍경이 거슬릴 때는 커튼을 치거나 담을 쌓거나 나무를 심어 시각적으로 차단한다.

   
▲ 경기도 여주 신륵사 다층 전탑도 국가와 왕업의 중흥을 위해 세워진 비보다. ⓒ 박경배

조선 초기 문장가 김수온이 “여주는 낙토(樂土)인데 신륵사는 이 형승(形勝)의 복판에 있다”며 높이 평가한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도 약점이 있었다. 남한강의 물줄기가 계속 치고 때리는 장소에 터를 잡은 신륵사는 홍수가 나면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신륵사 석탑들은 보기 드문 곳에 세워졌다. 대개 탑들은 중요한 예배 대상 중 하나이기에 경내 중심부, 곧 금당의 본존불 앞에 세우기 마련인데 신륵사 다층 전탑은 절의 동남쪽, 그것도 강기슭 바위 위에 서 있다. 그리고 탑이 수해를 막아줄 거라 믿으며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기가 센 터에서는 절이나 탑을 세워 강한 땅의 기운을 누르는 것처럼 기운이 허결한 지역에는 상징적인 의미의 산을 조성하여 기운을 북돋우기도 하고, 음기가 강한 ‘여근곡’ 아래에는 남근석을 세워 균형을 맞췄다.

다른 예로 관악산은 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화기를 진압하기 위해 물의 신수(神獸)인 해태상을 세웠다. 충주 계명산은 처음에는 오동산 또는 삼항산이라고 불렸는데 지네를 퇴치하기 위해 지네의 천적인 닭을 방사하며 계족산이라 이름을 변경하기도 했다. 흉한 모습의 산이 마주 보이는 마을에서는 마을 앞에 미륵불을 세웠다. 마을 사람들은 그 미륵불이 마을을 수호해줄 것으로 믿고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사람은 상호작용의 산물

‘어떤 장소는 사람에게 보다 좋은 또는 보다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인류문화는 특정한 장소 안에서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 장소가 인간에게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은 바람과 태양 빛에 달렸으며 물과 토양도 중요하다. 이 네 가지는 신체뿐 아니라 인간의 선악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다. 서양의 풍수지리가로 불리기도 하는 그 또한 환경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은 환경과 DNA, 그리고 그것들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매일 그날의 날씨와 소음, 분위기, 주변인들 그리고 거주 공간과 같은 물리적 환경들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산을 비롯해 우리를 둘러싼 주위 환경들이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상징성을 가지고 정신적 위안을 주는 비보들이 합리를 추구하는 과학 문명에 밀려 단순히 미신으로만 치부돼도 되는지 의문이다.

한국의 비보풍수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전통 지리적 지혜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몫이다.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대산농촌재단과 함께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이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 : 조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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