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수몰민 커뮤니티 운영자 노윤태 대표

“여름철에는 하굣길에 강가에 매어놓은 소를 몰고 가야 했지요.” (황두리촌놈)
“자라바위라고도 합니다. 장마철에 무척 큰 자라가 올라와 있어 모두 잡으려고 했는데...” (솔무정박)
“우리는 오리바위라고 했어요. 하굣길에 저기서 수영하다가 죽을 뻔했어요.” (꽃바위)

잔잔한 물가에 나룻배가 쉬고 있는 정경을 담은 흑백사진. ‘강 한가운데 보이는 것은 황소바위’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그 아래 저마다의 기억을 담은 댓글들이 이어진다. 사진에 찍힌 곳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있던 황석나루. 남한강 북쪽 황석리에 살던 학생들은 강 건너 학교에 오가기 위해 이곳에서 나룻배를 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나루의 흔적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1985년 충주다목적댐이 건설되면서 인근 5개 면 61개 마을과 함께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 충북 제천의 황석리와 광의리를 잇던 황석나루 뱃터 ⓒ 다음카페 ‘청풍연가’

졸업앨범 사진 등 500여 점 둘러싸고 이야기꽃 

고향을 잃은 청풍면의 옛 주민들은 대신 2008년 인터넷 포털 <다음>에 개설된 카페 ‘청풍연가’에 모여, 가볼 수 없는 고향의 기억을 나눈다. 수몰 전 청풍면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 500여 점이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현재 47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청풍연가 카페를 처음 만들고 운영 중인 노윤태(58)씨를 지난 5월 31일 인천시 계양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처음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사진, 신문사나 시청에 연락해서 돈을 주고 구입한 자료를 올렸죠. 그러다 입소문을 타고 모여든 옛 주민들이 졸업 앨범이나 부모님이 소장하고 있던 사진들을 올리면서 자료가 차곡차곡 쌓였어요.”

고향 이름을 딴 광고회사 청풍의 대표이자 사단법인 인천옥외광고협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노씨는 “어릴 땐 가난했던 고향을 빨리 떠나고 싶었지만, 수몰되고 보니 갈 수 없는 고향이 그리워져 카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 광고회사 대표로 일하며 ‘청풍연가’ 카페를 운영하는 노윤태씨 ⓒ 곽호룡

그는 청풍면 광의리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다.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었던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그는 “장마철만 되면 홍수로 논과 밭이 잠기고 돼지가 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스무 살 때 그는 삼촌이 서울에서 운영하는 광고회사에 취직했고, 군에 있던 82년 무렵 부모님도 충북 청주로 이사했다. 

“그때는 이 못사는 동네를 빨리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부모님이 이사를 간다고 들었을 때 ‘아이고 잘 떠났다, 이제 우리 부모님 고생 안 해도 되겠다’ 그런 생각이 앞섰던 것 같아요. 철없이.”

충주댐이 완공되고 청풍면이 수몰된 것은 그 무렵이다. 충주댐은 홍수와 가뭄 피해를 막고 각종 용수 및 전력공급을 위해 80년에 착공, 85년 준공된 다목적댐이다. 당시 고향에 남아 있었다는 청풍연가 회원들은 댐이 완공되기 전인 84년 여름에 청풍면이 일시적으로 물에 잠겼던 사건을 기억한다. 그해 수도권과 강원도 충청도 일대에 많은 비가 내렸는데, 남한강에서 한강으로 유입되는 물을 막아 수도권 홍수 피해를 줄이려고 예고 없이 충주댐의 수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 바람에 한창 농사 중이던 청풍면의 논과 밭이 물에 잠겨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청풍면 사람들은 ‘수몰 예행연습 아니냐’며 분개했지만, ‘정부가 하는 일이니 따라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 84년 홍수 때 갑자기 댐의 수문을 닫아 물에 잠긴 청풍중고교(좌)와 청풍초등학교(우). ⓒ 다음카페 ‘청풍연가’

‘어명이요’하고 베어 낸 서낭당 느티나무

“마을 입구 서낭당 옆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었어요. 제 기억으로 여섯 아름 반이나 되는 큰 나무였죠. 수몰 전에 그 나무도 베어야 했대요. 그런데 아무도 못 베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후환이 두려워서. 결국 고사를 지내면서 ‘어명이요’ 하고 나무를 베었대요. 정부에서 시키는 일이니까 맞는 말이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듣고 마음이 짠했죠.”

▲ 수몰지역 황석리 북진나루에 있던 느티나무 ⓒ 다음카페 ‘청풍연가’

수몰 이후 생겨난 청풍호(충주호)는 ‘내륙의 바다’로 불리며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가 됐다. 청풍호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이 운영되고 있고, 인근 비봉산을 오르며 청풍호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노레일은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휴일에 이용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뱃길을 따라 총 58킬로미터(km) 등산코스인 자드락길도 만들어졌다. 비봉산 케이블카도 오는 9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노씨는 그런 발전의 혜택이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제천이 발전했다지만 땅을 사고 투자한 사람 3분의 2 이상이 외지에서 왔어요. 처음부터 고향에 터전을 가지고 살던 분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거의 없다고 해요... 개발을 하더라도 지역민들과 상생해야지요.”

수몰민 아픔 노래한 ‘슬픈 고향’ 등 작곡도 

노씨의 사무실에는 각종 음반들과 통기타, 음향장비가 놓여 있다. 한 쪽에는 방음장치가 된 음악작업실도 있다. 그는 2013년과 2014년 ‘노은’이라는 예명으로 '사랑해요', ‘슬픈 고향(청풍연가2)’ 등의 노래가 담긴 음반을 냈다. 

“머릿속에서만 아른거리는 고향 이야기를 적다 보니 노랫말이 됐어요. 수몰민의 아픔을, 겪어 보지 못한 그 누가 알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아픔을 이해하고 소화할 가수가 별로 없어서 직접 불러봤을 뿐, 가수로 활동하거나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는 학창시절에 노래 대회가 있으면 나가서 상을 타고 습작으로 노래도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도 가사를 쓰는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게 대부분이다. 고향 후배 조재권(47)씨는 노씨가 작사·작곡한 ‘청풍연가’로 2009년 제 12회 박달가요제에 나가 금상을 받고 가수가 됐다. 박달가요제는 ‘천둥산 박달재’가 있는 제천에서 신인가수 중심으로 개최되는 행사다. 이후 만든 ‘청풍연가2’는 '나 좀 봐요' 등으로 활동하는 트로트 가수 신혜가 지난 6월에 발표한 앨범 ‘어트랙션’에 실리기도 했다.

▲ 노윤태씨가 만든 ‘청풍연가2‘의 악보. 그가 만든 곡은 트로트 가수 신혜의 앨범에 실렸다. ⓒ 노윤태
▲ 수몰 전 청풍면 광의리의 전경. 가운데 보이는 것이 비봉산이다. 노씨의 동생이 여러 사진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 다음카페 ‘청풍연가’

노씨는 청풍연가를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로 ‘물에 잠긴 고향’이라는 아픔을 함께 간직한 고향 선후배를 만난 것을 꼽았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동창회·동향회 모임을 갖는다. 노씨는 먹고살기 바쁜 일상 속에서도 철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자료 수집을 하면서 기뻤어요. 고향 분들이 오셔서 이야기 나누면 어릴 때 살던 고향이 숨 쉬는 거 같아서. 먹고 살기도 바빴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 했어요. 제가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은 청풍면의 전경이 찍힌 사진이에요. 동생이 사진을 이어 붙여 만들었어요. 여기는 어느 동네고, 어디서 어떤 추억이 있었고... 이걸 보면 해 지는 줄 모르고 뛰어 놀던 기억이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해요.”


편집 : 곽호룡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