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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동이 이고 168계단 올라봤니
[단비인터뷰] 손민수 부산여행특공대 대표
2017년 08월 18일 (금) 18:01:00 이창우 기자 irondumy@icloud.com

"부산은 부산사람들도 모르는 매력이 많이 숨어있는 곳이죠. 저희와 같이 여행을 떠나는 분들은 여정이 끝났을 때 부산을 누구보다 잘 아는 특공대가 됩니다."

각 지역의 대표 관광지들을 몇십 분 만에 훑고는 사진 몇 장 찍어오는 게 고작인 여행상품이 넘치는 요즘, '각별한 체험'을 내세운 부산여행특공대의 손민수(40) 공동대표가 자신 있게 하는 말이다. 그는 부산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역사성과 지역성을 갖췄다는 확신을 하고 4년 전부터 부산특화 여행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5월 22일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는 부산여행특공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9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산복도로에 승부를 걸다

손 대표는 부산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장소로 '산복도로'를 꼽는다. 산복도로는 뫼 산(山)자와 배 복(腹)자를 합친 말로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온 전국의 피난민들이 앞산으로 뒷산으로 올라가 판자촌을 지어 살면서 형성됐다. 전쟁이 끝난 뒤엔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나온 산업화시대 이주민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 부산에 특화한 여행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손민수 대표. ⓒ 이창우

부산은 바닷가에 있지만 70%가 산지다. 산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들이 생겼다. 산복도로는 이 마을들을 연결하는 혈관인 셈이다. 부산항과 영도를 마주 보는 부산진구, 동구, 중구, 서구 일대의 천마산로, 망양로, 엄광로, 대티로 등이 특히 대표적인 산복도로다. 마을 환경은 낙후됐지만 여기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광은 유명 호텔 스카이라운지 부럽지 않다.

일본여행 전문가였던 그가 부산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도 바로 산복도로의 매력에 빠져들어서다. 손 대표는 대학 졸업 후 관광회사에 취업한 뒤, 관광해설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껴 10년간 일본 전역을 누비며 활동했다. 그가 결혼 후 전셋집을 구하다 우연히 산복도로 언저리인 동구 수정동에 이사 온 다음 날, 불쑥 찾아온 어머니가 한마디를 던졌다.

"니가 왜 다시 여기에 왔노?"

그날 어머니는 그동안 자식에게 말하지 못했던 산복도로에서의 아픈 기억을 털어놓았다. 부산시가 1970년대 도심재개발정책의 일환으로 일부 판자촌을 철거하고 주민들의 강제 이주를 단행하자, 결혼 전 어머니네 가족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철거반들이 날마다 돌아다니고 주민들은 하나둘 떠나 유령마을이 되어가는 와중이었다. 서럽게 떠났던 산복도로에서 아들이 신혼살림을 차린 걸 보자 어머니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이후 손 대표는 다니던 중소 여행기획사를 그만두고, 수정동 산복도로에서 자란 토박이 친구 정봉규(40) 이사와 함께 산복도로 여행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한(恨)이 깃든 산복도로 이야기를 듣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공부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곳이 산복도로더라고요. 힘든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버텨왔던 부산 사람들의 혼이 깃든 곳인데, 아픈 역사라고 해서 외면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본에 가서 일본을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 고장의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부산을 제대로 공부하고 알리자

"누구보다 부산과 관련된 서적을 많이 찾아 읽고, 향토사학자들을 찾아가 배우기도 했어요. 누구도 이야기해 줄 수 없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개발해내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쌓인 자료들이 사무실에 한가득합니다."

   
▲ 부산여행특공대 사무실 책장을 메우고 있는 부산 관련 자료들. ⓒ 이창우

오랜 공부와 현장답사 끝에 손 대표가 찾은 가장 부산다운 부산의 모습은 역시 산복도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항구와 바다의 풍경이었다.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달동네, '한강의 기적'을 이끈 제1의 수출항인 부산항,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류지가 있었던 중구 동광동 일대,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해전이 벌어졌던 영도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전경은 부산에 살았거나 사는 사람들의 인생이 켜켜이 쌓인 지층과도 같다. 손 대표는 "그 지층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기억들을 하나씩 캐내는 일이야말로 부산여행의 핵심"이라며 "그곳이야말로 우리 스토리텔링 여행의 출발지"라고 강조했다.

   
▲ 천마산로에서 바라본 부산항 전경. 손 대표가 이야기하는 ‘부산사람도 모르는 진짜 부산의 모습’이다. ⓒ 부산여행특공대 홈페이지

손 대표의 말처럼 산복도로 근처에는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날 것'의 역사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아미동 비석 마을에는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일본인들의 납골묘 위에 가난한 이들이 집을 짓고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동네 판자촌 주민들이 물을 배급받기 위해 오르내려야 했던 168계단 등은 어려운 시절을 거쳐 온 이들의 한숨이 서린 공간이다. 피란수도 부산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표정을 생생히 담은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가 고(故) 최민식 작가의 갤러리,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시작하는 '깃발'의 시인 유치환을 기리는 기억공간도 지방자치단체들이 만들어 의미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일본인 묘의 상석 위에 그대로 집을 지은 아미동 비석 마을의 한 주택. ⓒ 부산여행특공대 홈페이지

손 대표는 이런 장소와 이야기들을 엮어 기본코스인 '산복도로 스토리투어' 외에 4개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보물섬 영도 이야기, 불멸의 이순신, 피란수도 부산, 이바구 버스투어 등이다. 각 프로그램은 모두 2시간 30분에서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간단한 일정이지만 한나절이 기본인 관광버스 여행보다 압축적이고 깊다고 손 대표는 자부했다. 그러면서도 모두 2만 원 이하의 경비로 저렴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1만4000여 명이 참여했다. 부산여행특공대 홈페이지에는 '지인과 재방문하고 싶다'는 등의 여행 후기가 이어진다.

'맨땅에 헤딩하듯' 막힌 길을 터 나가다

손 대표가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주차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버스회사들이 산복도로에 올라오려 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줄자를 가지고 좁은 산복도로 길을 재가면서 버스 기사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산복도로에서도 버스 관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가 증명하고 나니 너도나도 관광버스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속해서 이어진 투어는 손 대표의 부산여행특공대뿐이다.

"2014년 7월부터 한 달 반 동안 부산역 광장에서 마치 나이트클럽 종업원처럼 호객했어요. 1인당 2만5000원으로 산복도로 투어를 돌았죠. 버스비를 다 정산하고 나니 남는 게 전혀 없더라고요. 하지만 그때 포기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한 달 보름 동안 800여 명이라는 수요를 확인했거든요. 아, 생각보다 우리의 여행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많구나. 이왕 하는 거 한 번 더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산복도로 168계단에서 물동이 체험을 하는 어린이들. ⓒ 부산여행특공대 홈페이지

산복도로 사업을 하면서 뭉클한 순간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168계단에서 물동이 체험을 하다 생긴 일이다. 옛 산복도로 판자촌에서는 공동수도에서 물을 받아 써야 하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고지대에 살던 주민들은 물동이를 이고 168개의 계단을 매일 오르내려야 했다. 손 대표는 여행객들에게 이런 배경을 설명해주고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한다.

"한 번은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엄마랑 같이 왔었어요. (물이 들어 있는) 페트병을 몇 개 빼고 아이가 들 수 있을 만큼만 들렸죠. 아이가 물동이를 이고 내려갔다가 올라오더니 바로 엄마에게 안기는 거예요. ‘엄마, 나 이 시대에 태어나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 그 얘기를 듣고 다른 손님들이 모녀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는데 제가 다 감동이 되더라고요."

손 대표가 안내하는 여행객 중 4분의 1은 외국인이다. 여행을 마치고 그들은 대부분 '환상적(fantastic)'이라며 극찬한다. 일본인은 '아나바(穴場)를 찾게 됐다'고 만족스러워한다. 아나바는 일어로 '숨은 명소'다. 고향을 떠났다가 30년 만에 부산을 방문한 한 80대 노인은 손 대표에게 "내가 가진 기억을 공유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 천마산로에 있는 전망대 ‘역사의 디오라마’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호주 관광객들의 모습. ⓒ 부산여행특공대 홈페이지

여행자와 현지 주민이 상생하는 공정여행

입소문이 퍼진 뒤로는 동구청, 중구청, 영도구청 등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지자체나 부산관광공사와 계절마다 연계사업을 진행한다. 그만큼 바빠졌지만, 아직 수익성은 낮다. 워낙 저렴하기도 하지만 대표상품인 ‘산복도로 스토리투어’의 경우 단 한 명의 여행객만 있더라도 출발한다는 초창기 목표를 고집스럽게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대표는 ‘착한 여행’을 계속 살려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여행을 가서 현지인에게 적정비용을 지급하면서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을 '공정여행'이라고 하죠. 공정여행이라고 하면 다들 해외여행을 떠올리지만 저는 국내에서도 이런 여행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마을이든 지역이든 사람이 모여야 살아나는 공간이거든요. 여행자는 여행을 통해 지역의 역사와 삶을 배우고, 주민들은 그들을 통해 활기를 얻는 거죠."

손 대표는 이런 여행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현지 주민들과의 유대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부산의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감천문화마을이 사람들로 붐비지만,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과연 행복할지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그에게 부산여행특공대를 왜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사회적 기업을 하게 되면 서류가 너무 많아져요. 여행은 순간순간 느끼는 게 있을 때 빠르게 아이디어를 내고 테스트를 해 봐야 하는데 그 굴레에 묶여 버리면 운신의 폭이 줄어듭니다. 법적으로 서류상으로는 아니지만 지금 저희는 사회적 기업으로 충실히 역할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편집 : 조은비 기자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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