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

"원전이 자기 집 앞에 세워지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더 이상 소수의 권력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됩니다."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양이원영(45) 처장은 요즘 가장 활발하게 ‘탈핵(탈원전)’ 주장을 펼치는 운동가 중 하나다. 탈원전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지난달 24일 신고리원전 5·6호기 공사 백지화 여부를 논의할 공론화위원회가 발족한 가운데, 양 처장은 각종 토론회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탈핵의 불가피성’을 설파하고 있다. 그는 탈원전 정책이 민주주의 실현 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 등 경제적 효용도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 대통령 공약이었는데도, 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시민사회의 뜻을 묻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지난 20년간 탈핵 운동에 앞장서 온 그를 5월 18일 서울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만나고, 지난 4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학생운동 거쳐 환경운동가의 길로 

▲ 서울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 중인 양이원영 처장. ⓒ 박수지

양 처장은 서강대학교 91학번으로 민주화 과도기 세대다. 1991년은 정권이 군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기 직전이고, 학원자주화 투쟁에 가담한 강경대(당시 19·명지대) 군이 경찰의 집단 구타로 숨진 해다. 생물학을 전공하며 학자를 꿈꾸던 양 처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원래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 나라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집회나 시위에는 부정적이었는데, 경찰이라는 공권력에 의해 사람이 죽었다는 걸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한 선배의 소개로 환경운동연합 대학생회에서 진행하는 5박6일 현장캠프에 참여했다. 녹지를 파고든 골프장과 공해병을 일으킨 온산공단, 방사능 위험이 제기된 원전 등을 방문한 그는 ‘자본이 환경을 파괴하는 현장’에서 받은 충격이 커 환경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시대는 학자가 아니라 활동가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환경운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그가 특히 원전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1994년 대만 방문이 계기가 됐다. 대학교 4학년이던 그는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10여 개국 활동가들이 매년 개최하는 ‘반핵 아시아 포럼’에 참가했다. 당시 대만의 타이페이 도심에서 수만 명의 시위대가 제4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양 처장은 1995년 인천 굴업도 지역주민들의 핵폐기장 반대 운동 지원활동에 나섰고, 1997년 환경운동연합 간사로 사회 진출을 하며 본격적으로 ‘탈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환경운동이 예쁘장하고 편안한 운동으로 취급당하는 게 싫었어요. 환경운동 중에서도 자본의 모순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원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탈핵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방사성 물질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나    

양 처장은 무엇보다 원전이 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부르고 있는 현실에 주목했다. 원전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원전에서 새어나오는 방사능 물질에 피폭되고 있었다. 2015년 경주 월성원전 인근 나아리 주민 61명의 소변을 조사한 결과 모두에게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삼중수소 방사선은 암과 유전적 질병, 발육이상 등의 원인이 된다. 앞서 2011년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 원자력영향·역학연구소에서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한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방사능 물질 누출로 해녀 등 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피폭량이 기준치에 미치지 않는다‘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주장해 왔다. 양 처장은 “기준치라는 기계적 사고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할 문제”라며 “아무리 기준치 이하라고 하더라도 누가 방사성 물질이 있는 공기에서 숨을 쉬고 그 물을 마시고 싶어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원전 주변 주민들에게 그걸 그냥 마시고 살라고 했고, 송전탑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전자파를 그냥 참고 살라고 하는 ‘파쇼적’ 태도를 보였다고 그는 비판했다.

동국대학교 의대 김익중 교수는 저서 <한국탈핵>에서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방사선 피폭량은 비례적으로 암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며 “국제의학계에서는 암 발생으로부터 안전한 피폭량 기준치(역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고 한 것은 의학적 근거가 없는 얘기라는 설명이다.

▲ 경상북도 경주시 월성 주민들은 원전 폐쇄와 주민 이주를 요구하며 월성원전 홍보관 앞에서 3년째 농성중이다. ⓒ 박수지

탈핵, 대통령보다 시민사회의 의지가 중요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탈원전 구상을 밝히며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신규 원전 전면 중단’ ‘수명이 다한 원전 즉각 폐쇄’ 등을 약속했다. 당선 후에는 ‘탈석탄’ ‘탈원전’으로 에너지구조를 전환하고 ‘원전 제로’ 공약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양 처장은 이런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제가 20년 간 찾고 주장해 온 모든 내용이 수렴된 것은 아니지만 큰 틀은 모두 받아들여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만 건설 중인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 등 3개 원전에 대해 아직 정부 방침이 없다는 점, 2030년까지 달성할 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약하게 잡은 점 등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양 처장은 “전력수요를 줄이기 위한 전기요금 정책과 에너지효율화 지원 정책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 처장은 “문재인 1번가(대선 당시 개설한 정책홍보 사이트)에서 가장 ‘좋아요’를 많이 받은 게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정책’이었다”며 “국민의 여론도 탈핵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핵 운동 침체기를 겪었던 대만의 사례를 볼 때 걱정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대만은 1980년대 제4핵발전소 건설이 결정된 후 1990년대에 반핵운동이 이어졌고, 1994년 타이베이 시 등에서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원전 반대로 가닥이 잡혔다. 2000년 10월 당 헌장에 반핵을 규정한 민진당이 처음으로 정권을 잡으며 총통 천수이비엔(陳水扁)은 제4핵발전소 건설 중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원전추진세력이 다수인 국회가 격렬히 반대했고 보수 언론들도 원전 폐쇄에 반대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결국 보수성향의 대입법회의(헌법재판소)가 건설 중지 결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며 2001년 원전 건설이 재개됐고 대만 반핵 운동은 10년 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반핵운동 열기가 되살아났고, 2014년 4월 마잉주 당시 총통이 제4핵발전소 건설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또 2016년 1월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당선되면서 2025년까지 ‘핵 없는 대만’을 약속했다.

양 처장은 “대통령의 의지가 있으면 탈핵이 될 수 있겠지만, 사회의 지지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당시 대만과 비슷한 상황이라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신고리5,6호기 건설 잠정 중단 조치 후 에너지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교수 200여 명이 ‘일방통행식 원자력정책 수립과정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비판 성명을 발표했고 일부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 1일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노조와 핵공학 관련 교수 등이 법적 절차를 문제 삼아 서울중앙지법에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공론화위원회 활동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 양이원영 처장은 대통령의 의지 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시민의 지지가 있어야 탈핵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박수지

양 처장은 “반핵운동은 ‘전기를 쓰지 말자’가 아니라 ‘원전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으면 그걸 쓰자’는 것”이라며 “편리하거나 풍족한 걸 거부하자는 운동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1인당 전기 소비가 독일이나 일본의 1.5배인 우리나라는 에너지 낭비를 줄일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전체 전력소비량은 9628시간당킬로와트(kWh)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8번째로 많고, OECD 평균인 7407kWh를 크게 웃돌았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7500kWh, 독일은 6300kWh, 영국은 5600kWh였다. 양 처장은 “신재생에너지를 쓰고, 건물을 잘 지어서 지열로 따뜻하게 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시원한 집에서 살면 전기를 아낄 수 있다”며 “시민들이 그런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원가보다 싸게 책정해서 전기낭비구조를 만들고, 그런 낭비를 뒷받침하기 위해 원전을 더 짓는 악순환을 깨야 한다는 얘기다.

원전 후보지 된 전국의 해변에서 ‘반대’ 목청 

양 처장은 1997년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운동과 2003년 전북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 등 다양한 반핵활동을 하면서 안 가본 국내 해변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해변이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후보지였기 때문에 전남 장흥, 벌교, 진도, 완도부터 전북 부안, 충남 서천, 경북 포항, 강원도 고성, 삼척까지 안 가본 곳이 없죠.”

▲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원전 1호기의 가동 중단과 원자력안전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양이원영 처장(가운데). ⓒ 환경운동연합

그는 이런 현장 활동 뿐 아니라 자료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도 열심히 했다. 2003년 환경운동연합이 속한 녹색전력연구회에서 원전을 줄일 수 있는 전력정책에 대해 연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과 독일 라이프치히 경영대학원에서 각각 석사 공부를 하며 원자력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학업을 마치고 복귀한 2008년에는 경주 방폐장 부지 조사 보고서를 분석해 해당 부지가 적합한 조건이 아니었음을 밝혀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인 2012년에는 탈핵울산공동시민행동, 경주핵안전연대, 반핵부산시민대책위와 함께 실시한 ‘월성·고리원전 사고 모의실험’을 통해 원전 사고 때 최대 72만 명이 숨질 수 있다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2015년에는 월성 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 민간 검증을 통해 월성 1호기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지난 4월에는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 이성호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와 함께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로 전력사용량의 90%까지 공급할 수 있다는 내용의 ‘100% 재생에너지 전환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비중은 2030년 41%, 2050년 90%까지 확대될 수 있으며 원전은 2042년, 석탄발전은 2046년에 모두 가동 중단될 것으로 전망됐다.

전문가답게, 언론답게 행동해 주길

양 처장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강력 반발하고 나선 원자력 전문가들에게 “전문가면 전문가답게 행동하라”고 일갈했다. 또 최근 보도사례를 들며 언론의 ‘왜곡’도 꼬집었다. 지난달 31일 서울경제와 중앙일보는 ‘2022년 미국의 원전 발전단가가 다른 에너지원보다 비싸질 것’이라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발언과 청와대 자료가 틀렸다고 보도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부실한 근거 위에서 짜여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원전의 ‘균등화 회피비용’이라는 개념을 잘못 해석한 것이었고, 산업통상자원부가 해명하자 서울경제는 지난 3일 정정보도를 냈다.

▲ 서울경제는 지난달 31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면서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을 보도했고, 3일 정정보도를 냈다. ⓒ 서울경제 기사

양 처장은 “에너지 분야 중 일부에 해당하는 원자력공학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 에너지 경제, 전력수급 등의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자기 분야 전문성만 살리면 되는데 마치 자기들이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하는 건 전문가다운 자세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원자력 산업 쪽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그 산업을 대변하는 전문가로 활동하는 그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에 대해서도 “사실 확인을 안 하고 자기 입장에 맞는 내용을 선택해서 기사를 쓰는 것은 언론의 기본자세가 아니다”며 “제대로 된 정보와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해야 할 언론이 어쩌다 본분을 잊고 원자력계를 홍보하는 홍보지가 되어버렸는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양 처장은 “한국수력원자력 등에서 막대한 연구자금 등을 받으며 활동하는 원자력 전문가들에 비해 환경연합 같은 시민단체는 재정적으로 궁핍해 제약이 있다”며 “뜻 있는 시민들이 후원해 준다면 더 힘을 내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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