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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두려워하는' 공영방송
[제언의 편지] 나혜인 기자
2017년 07월 15일 (토) 11:58:41 나혜인 기자 nahyein8@gmail.com
   
▲ 나혜인 기자

문재인 대통령님께.

저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는 나혜인이라고 합니다. 장차 강자에 맞서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앞장서는 제대로 된 언론인이 되기 위해 충북 제천 산골에서 밤낮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취재보도 실무능력도 가르치지만, 무엇보다 인문사회학적 소양과 날카로운 역사의식, 윤리의식, 비판의식을 강조합니다. 그래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진짜’ 언론인이 길러진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건 대통령님이 후보 시절 공약하신 ‘언론의 자유와 독립 회복’이 하루빨리 실현되길 바라서입니다. 언론은 국가 공권력에 맞서 국민 주권을 수호하는 방패입니다. 차라리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던 토머스 제퍼슨의 외침처럼, 언론의 가치는 국가의 존재 가치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지난겨울 광장의 촛불은 국가권력이 병들어도, 제 역할을 하는 언론이 있다면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언론이 권력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비호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는 건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합법적 폭력인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줄 방패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됩니다.

   
▲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KBS 보도 개입은 지난 10년간, 국가권력이 공영방송을 어떻게 장악해 왔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 JTBC 뉴스 갈무리

지난 10년간 공영방송은 국가 권력에 종속돼 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를 막도록 외압을 행사한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난 정부 때 한 여당 국회의원은 ‘교육부 EBS 통제론’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정권을 잡은 세력이 공영방송과 국영방송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는 권력이 항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론이 존재해야 한다는 권력만능의 구태입니다. 그 핵심이 정부에 종속돼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입니다. 현재의 지배구조 아래서는 권력이 마음대로 공영방송사 사장을 바꿀 수 있고, 권력자가 임명한 경영진은 인사권을 휘두르며 양심적인 언론인을 해직하거나 무관부서로 쫓아내고 보도 논조를 권력의 입맛에 맞추어 왔습니다. ‘언론계의 적폐’이자 시민사회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전락한 공영방송 KBS와 MBC의 오늘이 그 상징입니다.

1986년 독일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의 강화’를 공영방송의 책무라 판시했습니다. 공영방송은 운영 주체가 국가나 자본, 특정 이익집단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이해를 광범위하게 포괄할 수 있도록 구성돼야 합니다. 논쟁적 사안은 특정 프레임을 설정하기보다 사회 각지의 다양한 의견을 객관적으로 전달해 사회 구성원들의 건전한 토론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영국 BBC는 2003년 유전자 재조합(GM) 식품에 대한 범시민적 논쟁을 촉발한 바 있습니다. 2만 명이 넘는 시민들 사이에서 끝장 토론을 벌였고, 그 결과 영국 사회에 GM 식품의 위험성을 알리고 사회적 수용도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 공영방송은 지난 국정교과서·사드 배치 문제·탄핵 정국에서 정권의 입장을 홍보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이슈의 본질이 가려지고 언론의 건강한 아젠다 설정기능이 사라지자 국정농단이 시작되었고 적폐는 쌓여만 갔습니다. 분노한 민심은 촛불을 들었고, 대통령님께 언론개혁 과제를 투표로 요구했던 것입니다.

   
▲ 권력자가 두려워하는 방송을 만들다 쫓겨난 사람들의 원상회복은 언론개혁의 첫걸음이다. ⓒ 뉴스타파 홈페이지 갈무리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민주적으로 바꾸고, 제작자에게 보도·제작·편성의 독립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언론탄압의 진상을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억울하게 해직·정직 등 징계로 탄압받은 언론인의 명예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미래, 통합을 외치면서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는 소홀했습니다. 그때그때 청산했어야 할 폐습들이 쌓여 적폐가 됐습니다. 대통령님이 외친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잘못을 제대로 단죄할 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 잡겠다”고 했습니다. ‘정명론’이라 후대에 전해진 이 말은 사실 이름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이름은 그에 부합하는 실제가 있어야만 성립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공익을 위해 운영되지 않는 공영방송은 공영방송이 아닙니다. 공익은 권력자의 이익이 아니라 시민의 이익입니다. 권력자가 두려워하는 공영방송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공영방송을 권력이 장악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기회에 권력이 공영방송에서 손을 떼는 모범을 보여주십시오. 비판이 건강한 정부를 만든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방송독립은 대통령님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언론개혁으로 가능합니다. 언론개혁 없이 세상의 민주화는 불가능합니다. 대통령이 꿈꾸시는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공영방송 민주화를 통해 이루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017. 7. 15
나혜인 기자 드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어느덧 두 달이 되었다. 촛불 염원은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이었다. 5.18행사장에서 흘린 눈물과 유가족을 포옹하던 일, 의전없이 버스를 타거나 기능직과 식사하고 기자들에게 먼저 질문을 요구하던 초반의 감동은 연이은 인사 실패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여소야대라는 정치상황도 개혁드라이브에 걸림돌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취임 두 달,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단비뉴스 젊은 저널리스트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제언의 편지를 연재한다. (편집자)

편집 : 김소영 기자

 

[나혜인 기자]
단비뉴스 영상부, 환경부, 국제부, tv뉴스부 나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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