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열망과 절망’

▲ 김민주 기자

아버지는 젊었을 때 마른 체형이었다. 한때 여자아이들이 줄을 섰을 정도라며 보여준 빛바랜 사진에 아버지는 ‘훤칠한 훈남’이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아버지 모습은 100kg을 넘나드는 풍만한 몸매다. 전환점은 아버지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들이 좀 더 튼튼하기를 바라, 팔뚝만 한 인삼을 다려 꿀에 찍어 먹게 했다. 몸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아지면서 식욕이 왕성해졌다. 술도 자주 마시면서 몸이 불기 시작했고 비만에 따른 병도 생겼다. 아들이 튼실했으면 하는 할머니의 ‘열망’은 예상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열망은 우리가 기대했던 바와 다르게 다시 절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민주정부를 향한 운동권의 열망도 그러했다. “많은 젊은이가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민주인사들을 따라 반독재 투쟁에 나섰고 정권교체도 이뤘지만 변한 건 없습니다. 허탈해요.” <경향신문>이 기록한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의 김대중 정부 1년 차에 관한 한 386세대의 생각이다. 외환위기 이후 IMF 프로그램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으로 서민은 다시 절망에 시달린다. 정치 민주화를 외쳤던 학생과 넥타이 부대 대신 노동자가 시위행렬을 이뤘다.

▲ 부유한 자만을 위한 것이 아닌 노동자도 존엄성이 지켜지는 경제정책이 필요하다. ⓒ pixabay

진짜 서민 대통령, 노무현이 나타나 또 한 번 민주정부가 들어서지만, 열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경로는 다르지 않았다. 2006년 11월 비정규직 3개 법안이 통과된다. 기간제 근로자 고용 기한을 2년으로 정한 것이 되려 기업이 악용할 수 있는 법이 됐다. 2005년 840만에 이르렀던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2016년 644만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셋 중 하나꼴이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 이어 ‘민주정부 3기’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전 민주정부들의 공과를 누구보다 잘 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 ‘업무지시 1호’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지시했고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참여정부의 대표적 실책으로 꼽히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되돌려놓겠다는 전략이다.

할머니는 자신의 ‘실책’으로 살찐 아버지에게 “술 줄이고 운동하라”며 30년째 당부한다. 한국의 경제 체형은 경제 강국으로 비만인데 내실은 건강하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성장 위주 대기업 특혜 정책과 비정규직이라는 비정상적 제도로 국민의 복지와 인권보다 수치상의 경제지표만을 키워왔다. 이제 돈 중심의 질병을 낳는 경제 제도는 없애고 사람 중심의 건강한 경제 체제로 체질개선을 해야 할 때다. 민주정부에 국민은 다시 한번 열망한다. 이번만은 절망으로 바뀌지 않았으면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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