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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신분사회'의 부동산 대책
[상상사전] '집'
2017년 06월 22일 (목) 23:56:12 조은비 기자 finestrain@naver.com
   
▲ 조은비 기자

“아이가 친구들한테 ‘휴거’라고 놀림을 당하고 오는 날이면 이사를 가자고 떼를 써서 미치겠습니다.” 텔레비전 토크쇼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젊은 부부가 출연해 고민을 털어놓는다. 찾아보니 휴거는 ‘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이란다. 휴먼시아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06년 출범한 공공임대아파트 상표다. 휴거는 나라에서 싸게 공급하는 공공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무시하고 따돌릴 때 사용하는 아이들 말이다.

 ‘휴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아이들 심리에는 주공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보다 자신이 우월한 인간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적 비교우위를 선택한다는 점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적 현상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자신이 노력하여 얻어낸 가치, 이를테면 남을 도와주는 행동이나 열심히 노력하여 얻어낸 좋은 성적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그 대신 태어날 때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어 바꿀 수 없거나 자신의 노력으로는 결코 획득할 수 없는 가치를 자랑하고, 신분을 구분짓는 기준으로 삼는다.

휴거뿐만이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기 초 친구를 사귈 때면 “너 몇 동에 사니”라며 운을 뗀다고 한다. 같은 아파트 안에서도 동에 따라 평수가 다른 것을 염두에 두고 부모의 경제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절차를 밟는 것이다. 자기 집 경제 수준에 맞는 아이하고만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한 물밑 작업이 아이들 교실에서 거리낌 없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지위재로서 집이 관계 설정의 척도가 된다.

순수할 거라고만 넘겨짚은 아이들의 세계에서조차 집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아이들마저 부모의 경제력을 상징하는 집을 결정적인 우월감으로 표출하는 현상은 지위재로서 집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으로 작용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어떤 집에 사느냐가 아이의 급우 관계를 결정하고, 좋은 집에 살지 못하는 아이는 상처받고 위축된다. 아이를 좋은 집에 살게 하지 못하는 부모는 ‘자격 없는 못난 부모’가 되고 마는 이상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집이라는 지위재가 갖는 사회적 부가가치는 절대적이다. 어른들은 억대 빚을 지는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좋은 동네, 좋은 집에 살기 위해 애쓴다. 아이들을 위해서다. 언론은 부동산만이 한국 경제를 떠받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인 양 투기를 부추긴다. 한국 가계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전체 자산의 약 80%로, 30~40%대인 미국과 일본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무리한 욕망의 결과로 중산층은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우스푸어가 양산됐고 삶의 질은 하락했다. 소비 위축으로 내수 경기는 장기침체 중이다. 가계부채는 1,400조로 불어나 부메랑이 됐다.

한국 경제는 가계부채라는 뇌관을 뒤로한 채 부동산 투기라는 위험천만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보수 정권 9년이 가고 이른바 진보 정권이 들어섰다 해서 기대가 컸는데 이번에 나온 부동산 대책을 보면 실망스럽다. 근원 처방이 아니라 대증요법들을 모아놓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LH는 2011년 휴먼시아 상표를 없애 버린다. 당시 이지송 LH 사장은 “휴먼시아가 못 사는 아파트로 낙인 찍혔다”며 폐기 이유를 밝혔다. ⓒ 대한주택공사

우습게도, LH는 2011년 휴먼시아 상표를 없애 버린다. 당시 이지송 LH 사장은 “휴먼시아가 못 사는 아파트로 낙인 찍혔다”며 폐기 이유를 밝혔다. 휴먼시아라는 이름을 지운다고 해서 ‘휴거’가 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임대주택 거주자에 대한 더 큰 조롱의 빌미를 제공했을 뿐이다. 이 일화는 국가 차원의 저렴한 공공주택 공급이나 일시적 대출 기준 강화 같은 ‘언 발에 오줌 누기’로는 부동산 지위재를 둘러싼 악순환 고리가 끊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부를 향유하는 방식’, 곧 지위재의 효용에 대한 고민과 합리적인 변화의 이행과정이 필요하다.

희망적인 건 지위재가 반드시 고정불변한 것만은 아니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지위재로 여겨지는 재화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달랐다. 17세기 네덜란드는 무역자본주의 발달로 경제적 전성기를 맞았다.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부(富)가 갑자기 불어난 한국의 시대 상황과 유사하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우리처럼 부를 소비하지 않았다. 네덜란드 부르주아들이 부를 누리는 방식은 ‘디테일’에 방점이 있었다.

예컨대 복식에서는 고급스런 원단, 구현하기 어려운 색상, 정교한 레이스 패턴으로 만들어진 옷을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부를 드러냈다. 같은 디자인의 옷을 하층민부터 상류층까지 입었지만, 소재와 패턴의 차별성으로 지위를 나타냈다. 한눈에 쉽게 눈치채기 어렵지만, 복식에 관한 지식이 많은 사람끼리는 인식할 수 있었다. 집만큼 한 번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꾸준히 소비해야 하는 재화들에 지위재의 가치를 뒀다. 네덜란드 부르주아의 소비패턴은 경제 선순환에도 기여했다.

우리 사회의 지위재가 차와 집으로 굳어진 원인의 상당 부분은 한국 전쟁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특유의 과시 문화까지 비판 없이 수용한 데서 비롯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휴거 없는 세상'을 약속했었다. '집-지위재-욕망의 대상-무리한 대출-양극화 심화-휴거’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첫걸음은 정부의 명확한 정책 방향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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