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다문화'

▲ 박경배 기자

평균 300일. 사람이 평생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음식을 먹고 배출을 원활히 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문제는 서구화한 식습관과 환경호르몬 노출이다. 이에 따라 유익한 균들이 죽고 장내 조화도 무너진다. 이에 맞서 현대 의학이 해법을 제시했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환자의 장내에 이식하는 대변이식술이 그것이다.

대변이식술의 주 목적은 장에 유익한 세균을 환자의 장에 이식하는 것이다. 세균의 다양성을 확보함으로써 장내 면역생태계를 활성화한다고 볼 수 있다. 생태계에서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한 의학계의 새로운 발상을 보면서 우리 사회 다문화정책의 방향을 생각해본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다문화 가정이 반짝 조명을 받았지만 우리 사회는 진정으로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있을까?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다문화정책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시행중인 프로그램은 동화가 54.4%로 반을 차지하고, 한국문화체험(16.1%)과 상호문화이해증진(14.4%)이 그 뒤를 잇는다. 이러한 동화주의 정책은 사회 총체적으로 문제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우려는 해외 실패 사례를 통해서도 명확해진다.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프랑스도 예전에는 우리처럼 이주민의 현지 통합을 다문화정책 기조로 삼았다. 통합주의라 불린 프랑스의 정책은 문화적·인종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프랑스 사회에 통합시킨다는 생각에 기반했지만 결론은 실패였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 사회 저변에 깔려있던 문제들이 2005년 인종폭동의 모습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반면에 다양성을 인정한 국가들의 성공담은 우리 정책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 문화간 차이를 인정하고 유지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국 다문화 정책의 새로운 별칭은 '샐러드 볼'(Salad Bowl)이다. ⓒ flickr

‘샐러드 볼’(Salad Bowl). 미국 다문화 정책의 새로운 별칭이다. 미국은 원래 '도가니'(Melting Pot) 사회를 지향했으나 동화주의 색채를 지우기 위해 요즘은 '샐러드 볼'을 목표로 내세운다. 캐나다의 '모자이크 사회'(Mosaic Society)와 비슷한 개념인데 캐나다는 1971년 세계 최초로 다문화주의를 국시로 내걸었다. '샐러드 볼’ 역시 문화간 차이를 인정하고 유지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하면 샐러드 그릇 안에 들어있는 양상추나 토마토, 오이처럼 각기 다른 고유의 맛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들과 달리 다문화의 맛을 우리 식으로 바꾸려 하는 걸까? 다문화를 하등한 것으로 보는 인식이 문제다. 우리가 동정 어린 시선으로 다문화정책을 편다면 우리 사회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큰 문제에 부닥칠지 모른다.

문화생태계도 유기체다. 다문화의 본질을 인정하고 인공적인 변화를 가하지 않아야 한다. 개별 문화는 생태계 안에서 경쟁하고 교류하며 우리 문화를 더 다채롭고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 작은 인식 변화 하나로 다양성을 확보한 우리 문화생태계가 생존할 수 있다. 대변이식술처럼 극단적인 치료법이 아니더라도.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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