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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2038 의 '운수 좋은 날'
[글케치북] 인공지능, 지하철역, 안개, 금수저, 흙수저, 기억
2017년 04월 17일 (월) 19:34:23 이연주 기자 joann2001@hanmail.net
   
▲ 이연주 PD

#. 나는 IB-2038

안녕! 나는 IB-2038.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로봇이지. 청소로봇이라고 무시하지 마! 이래 봬도 2038년 산 신상로봇이라고. 최신 업데이트 된 인공지능을 장착하고 있지. 로봇이라고 고철 덩어리라고 생각 하진 마. 촌스럽게! 난 잘생긴 남자 인간의 외모를 소유하고 있다고. 아, 설명이 길어졌네, 출근할 시간이야. 오늘 목표 실적을 꼭 올려서, 승진을 할거야!

#. 길거리

우와~ 안개 봐. 앞이 보이질 않네. 이런 날 청소할 거리가 많은데! 난 거리를 다니다가 쓰레기를 발견하면 주워서 버리는 일을 하고 있어. 이게 다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지. 하늘에 빛나는 게 뭐냐고? 저건 날아다니는 자동차야.  자동차는 땅에서 운행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 대신 고속 지하철이 잘 되어있지. 사실 자동차는 가격이 너무 올라서 돈 많은 금수저들만 탈 수 있어. 하늘 자동차도 마찬가지지. 요즘 지하철은 돈 없는 흙수저가 타는 편이야. 그래서 지하철 역 근처에 쓰레기가 많아. 저기 봐!

#. 지하철 역 앞

어우 너무 큰 쓰레기다. 아우 냄새. 이런 건 바로바로 치워줘야 길거리가 깨끗해져. 어? 이건 재활용이 가능할 것 같은데? 재활용센터로 가져가야겠다. 재활용센터에서 멋진 물건으로 만들 수 있겠어. 재활용센터는 저기 동그란 건물 보이지? 구름 바로 아래에 있는! 저기야. 쓰레기를 저기 가져가면, 새로운 물건으로 만들어줘. 나 이거 가져가면 실장님한테 칭찬받을 것 같아. 이렇게 멀쩡한 쓰레기는 흔치 않거든.

   
▲ 로봇과 인간의 경계가 불분명한 세상이 언젠가 찾아 올 것이다. ⓒ 영화 <아이,로봇> 갈무리

#. 재활용 센터

여기가 재활용 처리를 하는 곳이야. 저쪽에 쓰레기를 넣고, 이 버튼을 누르면 깔끔한 재활용품으로 변해서 나와. 그런데 이 버튼은 실장님만 누를 수 있어. 나 같은 말단은 쓰레기를 주워 오는 게 일이지. 일단 이거 가지고 실장님한테 검사를 받아야 해.

#. 실장실

“IB-2038, 무슨 일이지?” 모든 것이 회색 톤으로 되어있는 방 안. 투명한 유리 책상에는 CCTV 화면으로 보이는 영상들이 떠있다. 영상 안에는 인간 모습을 한 로봇들이 줄 맞춰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커다란 의자에 앉아 영상들을 자세히 보고 있는 실장. “네! 제가 멀쩡한 쓰레기를 발견했습니다!” 메고 있던 자루를 내려 놓는 IB-2038.

“한 번 보여줘봐” 자루를 끄는 IB-2038. 자루 안에서 거지 꼴을 하고 있는 남자가 나와, 풀썩 쓰러진다. “팔, 다리, 눈 모두 정상으로 보입니다!” 경직된 자세로 남자 옆에 서 있는 IB-2038. 실장은 기절한 남자의 옆으로 와 구석구석을 점검한다. “음, 괜찮네, 재활용실로 데려가도록 해.” “네!” 기뻐하며 대답하는 IB-2038.

“아니. 자네 말고 IB-2039. 자네가 가게.” 옆에 있던 젊은 남자 로봇이 거지에게 다가선다. “제가 하고 싶습니다. IB-2039는 저보다 한참 아래가 아닙니까! 제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따지듯 말하는 IB-2038. “시끄럽네, 상사의 말에 대드는 건 처벌 이유 중 하나라는 걸 알텐데.” “저도 잘할 수 있습니다! 제발 저에게 한 번만 기회를 ... ” 실장의 다리에 매달려 호소하는 IB-2038.

실장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IB-2039에게 고갯짓을 하며 눈치를 준다. IB-2038의 등 뒤로 다가가 목덜미를 누르는 IB-2039. IB-2038는 말을 하다가 스르륵 눈을 감는다. IB-2038의 목덜미에서 붉은 빛의 메모리칩이 나온다. “이 칩은 어떻게 할까요?” 한 손에 칩을 들고 얘기하는 IB-2039.

“포맷해서 저 거지한테 이식하고 교육시켜. 기억은 확실히 지우고, 2038은 버리든지, 주워온데 다시 갖다놓든지.“ 

# 다시, 길거리

자, 이제 우린 헤어져야 할 시간이야. 2039가 2038에게 말했다. 거리에서 또 만나게 되면 인사하자, 안녕!


편집 : 황두현 기자

[이연주 기자]
단비뉴스 영상부, 전략부, 미디어부, 시사현안부 이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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