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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상상력의 장벽을 헐어라
[제정임의 문답쇼, 힘] ⑦ 이원재, 배명훈의 미래세계 진단
2016년 05월 07일 (토) 00:14:16 김명진 황금빛 기자 himj89@naver.com

인공지능로봇이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체하고 운전사 없는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지배할 미래 세계. 정치·경제·사회적 격변을 몰고 올 정보기술의 진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5일 저녁 9시 방영된 SBSCNBC의 <2016 서울디지털포럼(SDF)특집>에서 이원재(45)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훌륭한 인적자원을 가졌으면서도 최고결정권자가 권한을 독점하는 구조 때문에 기술혁신 경쟁에서 ‘조직의 실패’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SF(과학소설)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배명훈(37) 작가도 “대기업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말단사원의 상상은 제약되고 한 사람(총수)만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구조가 문제”라며 “상상력의 장벽을 헐어야 한국 기업이 변화를 주도하는 위치에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날 방송의 주요 내용.

   
▲ 5일 제정임 교수가 진행한 SBSCNBC의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에서 이원재 교수와 배명훈 작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알파고 등장으로 새롭게 부각된 ‘인간과 기계의 관계’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기술의 발전과 함께 너무나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보는 미래 세계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2016 서울디지털포럼이 선택한 국내외 연사 중 두 분이시죠.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 배명훈 SF작가 모셨습니다. 서울디지털포럼에는 그동안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에릭 슈미트 알파벳회장 같은 세계적 인물들이 연사로 초청이 됐었죠. 열 세 번째를 맞는 올해도 인공지능전문가 세반스찬 스런, 세계적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등 화제의 인물들이 연사로 참여합니다. 그리고 두 분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는데요, 두 분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궁금합니다.

   

이원재(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스티븐 핑커 교수님과 제 어깨가 나란하지는 않고요, (웃음) 제 어깨는 아마 발목 정도에 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술과 사회는 지난 몇 년간 서울디지털포럼의 중심 주제 중 하나였는데, ‘기술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이 사람을 불행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하는가’ 하는 두 가지 입장으로 접근을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사회가 지금 세계적인 흐름 속에 어디에 있는가’라고 생각해요. 제가 몇 년 전 여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여름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기술과 사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벨기에 변호사, 영국 컴퓨터공학자 등이 저에게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가 어떻게 되고 있느냐’를 물어봐서 깜짝 놀랐어요. 이전에는 선진국이 우리의 미래였지만 어느덧 많은 분야에서 우리가 같은 시간대를 살게 된 거죠.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이 세계에서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분들에게 하나의 모범과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책임감 내지는 자신감이 더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 배 작가님은 어떤 이야기를 하시나요.

   

배명훈(SF 작가): 네 저는 ‘SF, 관계의 가능성을 상상하다’라는 타이틀로 SF와 기술의 변화, 그 변화로 인해 만들어지는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보통 SF를 통해서 여러분이 접할 수 있는 사회 변화가 한국인의 삶의 변화냐, 미국인의 삶의 변화냐 생각해보시면 약간 거리가 있을 거예요. 한국 SF작가를 보기가 굉장히 힘드신데, 한국에서 SF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지 알려드리면서 포럼의 전체적인 주제인 관계의 측면에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입니다. 

제: 이번 SDF의 주제가 ‘관계의 진화: 함께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이 주제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그리고 우리가 지금 왜 이 주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는지 이 교수님이 연사로서 설명을 해주세요.

이: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관심이 많았죠. 얼마 전에 알파고 이벤트를 겪으면서 기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SNS가 기술이 매개해주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면 알파고는 기술이 매개자의 위치가 아니라 객체에서 주체로 등장하는 순간이었어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만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고 그 사이에 기술이 껴서 또 다른 주체로 저희와 관계를 맺는.

제: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 이런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거죠.

   
▲ 이원재 교수는 기술이 객체가 아닌 주체로 등장하면서 ‘관계의 가능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이: 네, 그런 것들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어떤 집단적인 자각과 깨달음이 한국사회에 생긴 거죠. 관계라면 인간적인 것, 인간사회의 것으로 생각을 했다가 관계를 생각하는 지평이 넓어져 가는 것이죠.

제: 기술과 사회와의 관계는 이 교수님이 연구하시는 분야인데, 구체적으로 지금 어떤 연구를 지금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 사회 연결망이라고 하고 소셜 네트워크라고 하는데, 그게 제 전공입니다. 제가 좀 전에도 설명을 드렸듯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만을 보려는 시각이 있고 사람들 사이에 객체, 물건들을 집어넣어서 이것도 관계의 한 부분으로 보자는 이론이 있었어요. 그걸 ANT(행위자 연결망 이론)라고 하는데, 이것이 한때 주목을 받다가 죽은 이론이 됐었어요. 왜 그랬냐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의자라든지 컴퓨터라든지 국가 등을 집어넣었을 때 과연 그것들이 의도를 가질 수 있는지 회의적이었거든요. 사람과 평등한 위치에서 네트워크를 구성한다고 하면 사람 같은 정도의 의도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객체는 의도성이 없으므로 일관성 있는 이론을 만들기가 어렵다, 분석도 어렵다는 비판이 있어서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죽은 이론이 됐죠. 그런데 알파고가 지성이 있고 의도성이 있어서 하나의 주체로서 행동하고 생각하는 게 가능하다면 ANT는 이제 복권을 하게 되는 겁니다. 

제: 묻어놨던 이론이 복권을 하게 되는 거군요.

인간은 알고리듬의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이: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에브게니 모로조프 등 비판적인 얘기를 한 평론가들이 있어요. 알고리듬(연산법칙)을 가지고 규제를 하는 시대가 될 텐데, 이게 인간의 본성과 안 맞을 수 있다는 얘기예요. 대표적인 예가 자율주행차 같은 겁니다. 자율주행차를 사람들이 타고가게 되는데 (차가) 교통법규를 어기느냐, 지키느냐 등은 애초에 계산된 알고리듬에 의해서 다 규제가 가능하다는 거예요. 이에 따른 결과가 교통경찰, 면허증 같은 제도적 장치가 없어지는 거고 그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이 오랜 기간 해왔던 정치적인 활동이 없어지는 거예요.

제: 그러니까 규제를 알고리듬으로, 컴퓨터 연산법칙으로 다 해버리기 때문에.

이: 해버리면 그게 ‘End of Politics(정치의 종말)’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최근 5년 안에 행동주의 경제학자들이 연속으로 노벨상을 받았어요. 행동주의 경제학의 핵심 중 하나가 ‘왜 사람은 확률적인 판단을 안 하려고 하는가’ 예요. 제가 예를 한 번 들어보죠. 제가 자율주행차 를 타고 있어요. 그런데 이 자율주행차는 외부의 영향으로 사고가 날 수 있어요. 두 가지 대안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자율주행차의 통제권을 뺏어서 뒤에 태운 승객 둘 중 하나를 확실히 살리는 거죠. 

제: 어느 방향으로 부딪히느냐에 따라서.

이: 그런데 자율주행차가, 알파고가 저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나한테 자율주행을 맡기면 50%의 확률로 두 사람을 살릴 거라고. 사실 50%의 확률로 두 사람을 살린다는 것과 내가 확실히 한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결과의 측면에서 같은 거거든요. 하지만 사람한테 이 질문을 던져보면 약 70% 이상의 사람들이 ‘내가 운전해서 한 사람을 살리겠다’고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 확률적인 결정에 의해서 나의 생명까지도 결정이 되는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확률을 따를 것인가(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자의 알고리즘에 순응할 것인가) 이거는 아직 대답되어지지 않은 문제죠. 

외교학의 거시적 시각으로 ‘세계의 변화’ 그리는 SF작가  

제: 배 작가님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SF작가’, ‘믿고 보는 작가’라는 얘길 들으시죠. 연작소설 <타워>를 통해서 해외번역물이 지배적이었던 과학소설 시장에 국내 창작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이 있었고, 단편 <안녕, 인공존재>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도 수상하셨어요. 그런데 이력을 보니까 외교학으로 학사, 석사를 하셨어요. 공부하고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어떻게 SF작가가 되신 건지요.

배: 외교학과에서 국제정치학이라는 것을 공부하게 되는데 국제정치학을 배우면 SF작가가 되기 좋아요, 사실은.

제: 왜 그렇죠?

   
▲ 배명훈 작가가 외교학도에서 SF작가가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배: 실용적인 것을 얻기보다는 다른 데서 얻기 힘든 교양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데, 국제정치학의 교양은 왕의 시점에서 보는 법, 지금은 정책결정자 기준의 눈을 갖게 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문학에서는 인물이 중요하다고 캐릭터가 핵심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국제정치학에서는 개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고 다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시선이 멀어지는 거죠. 사람을 클로즈업하는 게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는데 그 상태에서 글을 썼더니 SF쪽에서 먼저 발탁이 됐죠. 왜냐하면 SF는 인물 외에 세계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거든요. 기술에 의한 변화, 어떤 식으로든 어떤 세계가 변한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요.

사물인터넷, 3D프린터, 가상현실이 바꿔놓을 인간의 삶 

제: 기술의 진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이 얘기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교수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여러 기술 혁신 중에서 앞으로 우리의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바꿔 놓을 것들 몇 가지만 꼽아주세요.

이: IoT(사물인터넷, 인공지능, 3D프린터, SNS 이런 것들이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기술)라는 커다란 우산 아래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하나의 기기 안에 들어 있어서 우리가 만져볼 수도 있고 느껴볼 수도 있는데, 이제는 기술이 공간이나 환경 같은 곳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제: 어디에나 기술이 있는 거죠.

   
▲ 이 교수는 기술이 공간이나 환경 같은 곳에 스며들기 시작한 시대에는 기계가 주는 정보에 휩쓸리지 않고 인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이: 네, 그래서 우리가 통신을 한다든지, 아니면 냉장고가 나한테 맞는 음식을 준비해 준다든지 하는 이런 것들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 계속 나한테 뭔가를 알려주는 것이죠. ‘내 인생을 나 스스로 결정하고 있는가’ 라고 계속 되묻게 되고, 그 질문이 되물어지는 순간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할 거라는 것이죠. 

제: 총체적으로는 정보기술로 뭉뚱그릴 수 있는 걸로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중에서도 사물인터넷이 온 생활 속에 스며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까. 3D 프린터가 보편화하면 우리의 일자리는 어떻게 될까 등 두어 가지만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주세요.

이: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애플 와치(시계)라든지 삼성 왓치라든지, 핏빗(fitbit)같은 상품들을 차고 있죠. 이것이 데이터로 어느 한 군데로 모이고 있거든요.

제: 수십억 명의 데이터가 한 군데로 모인다면.

이: 그 데이터를 이용해서 많은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되는데, 이유는 데이터 해석을 통해서 인간의 행동과 결정방향에 대해 좀 더 정확하고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IoT가 주는 의미고, VR(가상현실)은 조금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보다 고전적인 인간의 상호작용, 예를 들어 만나서 악수하고 차 마시고 이런 것들을 재현해줄 수 있는 것이죠. 예전에는 영상이나 그림을 시뮬레이션 했지만 이제는 인터액션(상호작용) 자체를 이 안에서 시뮬레이션하게 되는. 

제: 홀로그램으로 사람이 등장해서 나랑 대면해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 그래서 여러 가지 리얼리티가 동시에 존재할 때 사람들은 또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냐 그 결과에 대해서 저희가 또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 3D프린터도 사람들의 삶이나 일자리를 많이 바꿔놓겠죠?

이: 제가 완벽하게 3D프린터의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장소에 모여서 대량으로 했던 일들을 각자 집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거든요. 3D 프린터로 한 사람을 위한 제품을 생산하는 게 가능하게 된 것이죠. 그것도 대규모로. 개별화된 방향으로의 생산이 좀 더 일반화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있는 것이죠.

SF가 예측했던 현실과 예측 못 한 현실은 

제: 저도 어렸을 때 SF 만화를 굉장히 즐겨봤어요. 그런데 당시로선 신기한 상상일 뿐이었던 화상전화 같은 것들이 지금 우리 현실에 구현됐죠. 배 작가님은 특별히 많이 보셨을 테니까 만화나 영화, 소설 속에 등장했던 신기한 기술 중 실제로 구현된 것, 그 중 특히 의미 있는 것 몇 가지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 배 작가가 SF 속에서의 상상이 실현된 대표적인 예로 ‘정지위성’을 들고 있다. ⓒ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배: 예를 들면 정지위성 같은 것들이 있죠. 인공위성이 본격적으로 많아지기 전에 아서 클라크라는 SF작가이면서 미래학자인 분이 예측을 하신 거예요. 인공위성을 어차피 지구 주위를 돌아야 되는데 그걸 지구의 자전속도와 똑같이 돌게 하면 고정된 위치에 놓을 수 있고, 그러면 그걸 통해서 통신 중계를 할 수 있지 않냐. 그게 현실화돼서 잘 사용되고 있죠. 세세하게 따지면 실현되고 있는 것도 있고 안 되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큰 흐름에서 일단 SF 작가들이 틀렸던 부분이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미래 상상 그리기를 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죠.  

제: 제 주변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배: 어린이들만 그렸던 게 아니라 옛날 과학소설이나 SF영화 같은 걸 보면 그 장면이 꼭 나와요.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에도 우주 정거장에 공중전화 부스 같은 게 있어서 거기 가서 화상통화를 하고 카드로 1달러 50센트를 결제하는 장면이 나와요. <제5원소>에서도 브루스 윌리스가 날아다니는 택시를 운전하는데 그 택시에서 내려서 벽에 붙어 있는 화상전화로 전화를 하는 장면이 나와요.

제: 그때는 모바일 통신이라는 거는 상상을 못 했고 자동차가 날아다닐 거라고 본 거죠. 근데 지금은 거꾸로잖아요.

배: 지금도 자동차는 땅에 붙어 다니는데 통신 기술은 엄청나게 발달했죠. 그 지점에서 결정적으로 굉장히 많이 틀렸다고 생각해요. 제가 최근에 쓴 <첫숨>이라는 소설에 스페이스 콜로니, 우주도시가 등장하는데 옛날 SF에서는 늦어도 2010년대까지는 그런 게 가능하다고 봤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아직도 굉장히 먼 미래잖아요. 날아다니는 자동차 문제만이 아니라 우주여행까지도 포함해서 멀리 빨리 가는 기술이 훨씬 일찍 발달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그 시절 사람들이 바랐던 뭔가가 아닐까 싶어요. 더 멀리 뻗어가는 거에 대한.

페이스북이 가상현실(VR)에 투자하는 이유는 

제: 인간의 욕망이 반영된 것이라는 거죠? 이 교수님, <로보캅>이나 <토탈리콜> <인셉션>같은 영화를 보면 사람의 뇌에다가 어떤 프로그램 된 기억을 주입시키는 기억조작기술이 단골소재로 쓰이잖아요. 이게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가능한 건지, 혹은 당장은 안 되더라도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것으로 상상할 수 있는 건지, 일단 그게 궁금합니다.

   
▲ 새로운 기술이 확산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가트너의 하이프 곡선. ⓒ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이: 새로운 기술, 예측하지 못한 기술이 나왔을 때 평가하는 유용한 생각의 방식이 있어요. 가트너 하이프’라는 건데 가트너라는 컨설팅 그룹이 보여준 곡선입니다. 모든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정착되는 과정은 한 번 크게 유행을 했다가 한 번 푹 꺼지는 시기를 겪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올라간다는 거죠. 몇 년 지나고 나서 이게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거나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는 것 같지 않네 라고 잊어버리려고 하는데 사실은 그게 한 꺼풀 꺾인 뒤 진정한 발전을 한다는 것이죠. 인공지능에 대한 아이디어가 1950년대에 나왔고 이것이 80년대 내지는 10년 전에 한 번씩 브레이크쓰루(기술적돌파)를 겪었다는 거죠. 지금 말씀하신 뇌의 기억조작은 인간의 오감을 통과하지 않고 직접 무언가를 느끼게 만드는 기술인데요. 러시아의 이름 없는 학자가 생명윤리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 규제가 없는 시골 어디에서 사람 뇌에 전극을 꽂아본다고 합니다. 개별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어떤 식의 결과를 가져올지는 저희가 좀 더 기다려봐야 합니다. 

제: 이 교수님, 페이스북이 최근에 오큘러스라는 가상현실 회사를 거액을 주고 인수했어요.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 회사인데 왜 가상현실 회사에 관심을 가졌을까 궁금합니다.

이: 가상현실을 통해서 페이스북도 하고 채팅도 하게 만들고 싶은 거죠. 훨씬 더 리얼리티에 가득 찬 온라인상의 SNS를 만들고 싶다는 거고요. 이거는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한테 그걸 하라고 하면 분명히 할 거예요. 우리가 의사소통을 할 때 70% 이상은 넌버벌 익스프레션, 그러니까 말이 아닌 몸짓 등으로 한다는 거죠.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의사소통하는 걸 더 선호할 수 있다는 얘기죠.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전했을 때 오프라인 대면으로만 가능했던 부분까지 대체할 것이냐 하는 질문에 항상 열려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체되는 순간 우리는 굉장히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이 많아요. 그래서 미래 방향을 어떤 한쪽으로 고정시켜 놓기 보다는 두 가지가 다 가능할 수 있다는 대비를 해야 하죠. 저희 세대만 해도 학생들의 미래 희망이 대통령 아니면 과학자였어요. 아이들의 머릿속에 대통령과 과학자의 무게가 같았던 것이에요. 하지만 지금도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권력을 과학에 등치시킬 정도로 아이들이 과학에 대한 꿈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 마음이 있는지 회의적이에요. 우리 사회가 초등학생들에게 낙관적인 마음을 주지 못하거든요. 사교육과 입시의 현실을 자꾸 주입하기 때문에 낙관적으로 상상하고 개척하고자 하는 그런 시대가 지나간 것 같아요. 배명훈 작가님 같은 분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제가 어릴 때 김정운 박사님이 감수하신 <로봇 찌빠>를 통해 과학에 대한 낙관을 가진 것처럼 지금 아이들도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시면 더 좋겠다는 것입니다. 

   
▲ 이 교수는 과도한 사교육과 입시경쟁으로 과학에 대한 꿈을 잃고 있는 아이들을 걱정했다. ⓒ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배: 굉장히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사실 한국 사람들은 어떤 글로벌한 중요 이벤트가 한국에서 벌어지는 거에 대해서 어색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SF에서는 서울 상공에 유에프오(UFO:미확인비행물체)를 띄울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되죠. 그런 작품을 쓰거나 찍었을 때 그걸 대중들이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인데요.

제: (독자의) 수용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배: 자연스럽지 않다고 받아들이거든요. 그래서 UFO가 뜨면 어느 나라의 정보기관이 추적을 할 텐데 그건 어느 나라의 기관일거냐, 미국의 기관일 거고. 화성 탐사 기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쓴다, 그러면 한국 사람의 이름을 쓸 수 있을 것이냐.

제: ‘어색해’, 뭐 이럴 수 있다는 거죠.

   
▲ 배 작가는 상상력의 제약 때문에 한국인이 SF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우리 스스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배: 그 생각을 하기가 힘든 어떤 장벽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넘기 위해서 SF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지만요. 

제: 이 교수님께서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한 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이 분야에서 한 발짝 앞서가는 기업들은 대체로 미국 기업들인 것 같아요. 구글, 애플, 아마존, 테슬라를 비롯해서요. 이제는 바이두 같은 중국 기업들도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고 하죠? 우리 기업들은 어떤가요?

   
▲ 이원재 교수는 기업 내의 우수한 개인들이 성과를 내도록 하려면 책임과 함께 ‘실패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권한은 안 주고 책임만 묻는 기업 문화

이: 이름만 대면 아는 우리나라 IT 대기업들이 얼마나 우수하냐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이런 것들이 유수의 전문지에 보도되는 순간 기술상무나 실무담당자들이 자사의 해당 제품에 바로 적용해서 등장합니다. 흐름을 따라잡는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우리가 한국 기업은 왜 페이스북만 못할까, 중국만도 못할까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절대 기업 내에 있는 개인의 능력 탓이 아니란 뜻입니다. 왜 똑똑한 분들이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조직의 실패로 나아가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분들, 실리콘밸리에서도 높은 성과를 얻은 우수한 분들을 데리고 온 대기업들이 권한 없이 책임만을 줍니다. 모든 큰 조직은 딱 한 사람만 권한을 가집니다. 특히 실패의 권한에 관한한 딱 한 사람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결정이 되나요? 우수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총수의 생물학적 혈통 승계자로 결정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까지도 생물학적인 우연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상태에 와 있는 겁니다. 우리사회 전체의 시스템, 관계 방식, 조직 방식에 대해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제: 조직이 바뀌기 전에는 우리 기업이 기술혁신을 주도하기 힘들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배 작가님도 <타워> 같은 작품을 통해서 비정규직 문제라든지 사회 비판적인 얘기들을 많이 하셨어요. 우리 기업이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으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배: 이 교수님 말씀에 바로 공감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상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조직의 상사가 ‘젊은 사람들이 상상해서 아이디어를 내라’고 말하지만, 그거 반영 안 되잖아요. 조직 상상력의 최대치는 정책결정자 선에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상상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상이 평등하지 않고, 정책 결정자만 상상할 수 있는, 상상을 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 배명훈 작가는 불평등한 상상의 기회가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한국인이 변화를 주도할 수 없는 이유를 다시 말하자면, 우리에겐 공간의 층위가 있습니다. 상상을 제한하는 다양한 사회적 제약이 공간의 층위를 만들고 있어요. 한국인들은 특히 공간의 층위를 큰 장벽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SF를 쓰고 있죠. 그게 “우리도 중심에 설 수 있다”라는, 생각의 장벽을 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SF 작가들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만약 작년에 똑같은 상황을 소설로 썼다면 비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한국인이 왜 인간의 대표로 인공지능과 대국을 해?” 하지만 진짜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했던 일입니다. 한국인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무조건 못 할 거라고 판단하는 장벽이 있습니다. 저는 그게 답답하다는 생각입니다.

제: 우리가 선두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데는 ‘관념적인 억압’이 작용한다는 말씀이군요. 상상력에 대한 장벽, 유리천장 같은 것들을 깨야한다는 얘기고요. 경직된 조직에서 상상해봤자 채택이 안 되고, 높은 자리에 있는 최고결정권자는 쓸모없는 상상을 해도 관철되는 게 현실이라는 거죠. 우리나라 기업이 앞서 나가려면 조직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 미국 서부 명문대학에서 시작된 온라인 무료 강좌인 무크(MOOC)의 효과는 논쟁적이다. ⓒshutterstock

교육개혁은 유연하고 실용적인 직무 훈련 중심으로 가야  

제: 기술 진보와 함께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 또 다른 분야가 바로 교육입니다. 최근 확산되는 온라인 무료 강좌인 무크(MOOC·대규모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무료 공개 수업)가 교육 혁명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저는 그런 전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무크라고 불리는 시스템은 미국 서부의 명문대학에서 시작돼 다른 명문 대학들이 따라갔는데, 그 효과에 대해서는 굉장히 논쟁적입니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학교의 졸업장을 얻는 것이지, 내가 지식을 얻었다가 아니거든요. 중요한 건 이직하는 40~50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는 교육입니다. 재취업을 위한 교육이라는 것은 20년 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추구했던 방향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대안과 실험이라고 해서 옛날 것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 대학교 수업 위주의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기능이 필요할 때 바로 배울 수 있는 평생 직무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40~50대에 이직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 다음의 선택지가 지금처럼 무조건 ‘치킨집’이 아니라 소설을 쓸 수도, 저처럼 사회를 조사할 수도 있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또 이런 직무 교육을 인정해주는 제도와 관행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직업 교육을 받은 것이 사회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제: 명문대학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온라인 무료강좌 보다, 당장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주는 실질적 직무교육 강좌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방송통신대학이나 사이버대학 같은 곳에서 성인을 위한 실용적 강좌를 개설하고, 이 강좌를 이수했을 때 학위증이나 수료증이 사회에서 높이 평가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거네요. 배 작가님께서 보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 배명훈 작가는 미래에 어떤 직업이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유연한 교육제도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배: 제가 아는 한 게임 개발자는 자신이 어렸을 때 게임개발자라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았었고 당연히 그에 대한 교육도 없었다고 말하더군요. 20년 뒤를 예측해서 미리 교육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몇 십 년 전에는 어떤 코스로 가면 어떤 삶을 살 수 있다는 디자인, 진로 설계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일자리 다양화에 대한 사회적 대비가 필요합니다.

제: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직무 교육에 대해 사회가 인정해 주는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사이버에서 몇 달 배웠어? 그건 인정 못 해’라는 생각이 만연하면 소용 없겠죠. ‘실제로 뭔가를 배웠구나, 자격을 갖췄구나, 능력이 되는 구나’라고 사회가 받아주는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술의 진보는 가족파괴 아닌 가정의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

제: 기술의 진보로 가족 관계도 크게 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특히 기계노동이 인간의 근육노동을 더 이상 필요 없게 만들면서 남자가 필요 없는 ‘모계 사회’가 도래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배 작가님이 상상하는 미래 가족의 모습은 어떤가요.

배: 모계 사회가 된다는 건 엄살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주류가 아닌 쪽에서 목소리를 내고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면 ‘다 빼앗긴다’고 얘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성이 사회를 지배하는 요인은 근육이 아니라 권력, 지배력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겪고 있는 가정의 변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TV나 전화기가 집집마다 하나만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이를 장악하기 위한 가정 내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아이들 입장에도 네트워킹을 하려면 전화가 필요한데, 전화기는 보통 집의 한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도시로 따지면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놓인 것이죠. 하지만 최근엔 가족 한명 당 전화기 한 대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제: 감시가 없는 거죠.

배: 거실에 모두가 모여 있는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가족이 와해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시 분배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건전해졌다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 배명훈 작가는 네트워크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미래 가정의 모습을 긍정했다. ⓒ <2016서울티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제: 이것도 하나의 가정 민주화다, 아내나 남편 아이들까지도 발언권과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공평하게 갖는 민주적인 가정 쪽으로 갈 거라고 긍정적으로 보시네요.

배: 저는 지금 과정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제: 이제 기술의 변화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시간입니다. 기술의 진보와 함께 다가올 우리의 미래가 풍요함, 편리함 같은 모습일 수도 있지만, 경제적 양극화·인간 소외 같은 부분이 더 짙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기술의 진보가 낳을 미래와 관련해서 두 분이 가장 우려하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과 대응조차 기계가 대신한다면

이: 기술을 통해 풍요로워지고 경제수준이 높아지면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은 굉장히 단순한 논리 때문에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1등 부자는 한국의 1등 부자보다 몇십배 부자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거지는 한국의 거지와 같습니다. 1등 부자와 거지 사이의 거리, 즉 빈부격차가 선진국일수록 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각종 평등의 문제, 억압이라든지 정의롭지 못한 문제에 대해 대응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알파고 이후에 걱정이 되는 것은 ‘미래에는 이에 대한 대응 노력조차 알파고가 대신 생각해주면 어떻게 될까’하는 것입니다. 기계에 맡기면 훨씬 안정적이고 비용도 덜 드니까, 누군가 기계에 맡기자고 결정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생각할 기회나 여력이 애초부터 봉쇄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야말로 기술이 가져올 무서운 도전입니다.

제: 이 교수님께선 판단과 결정의 역할마저 기술, 즉 인공지능에 넘어가는 상황이 가장 우려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배 작가님은 어떤 생각이십니까?

배: 저는 배분 문제를 가장 걱정합니다. “미래는 이미 도래해 있다. 다만 충분히 배분되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윌리엄 깁슨의 말을 좋아합니다. 사회 전체로 보면 미래 혜택을 빨리 배분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것을 늦게 배분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른바 시간격차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SF에서 자주 언급되는 걱정은 정부·미군·대기업 등이 대중들이 모르게 자기들만 발전하지 않을까라는 의심입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일부 사람들에게만 발전 혜택이 가고 나머지는 그냥 머물러 있는 상황이 우려스럽습니다.

제: 갈수록 분배의 격차가 커지면서, 말하자면 사회가 1등 국민과 2등 국민으로 영원히 나눠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시는 군요.

이: SNS가 붐을 이루었을 때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 간의 소통이 늘어나게 되면, 지식이나 감정에 대한 접근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 기술을 하는 사람들이 한걸음 더 자유로워졌을 때, 우리가 얼마나 더 좋은 미래를 살 수 있는지는 시민의 연대, 작가와 사회과학자, 기술자간의 대화, 그리고 그런 대화들이 언론과 포럼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실천이 이뤄짐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생각입니다.

제: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대화를 해서 우리가 갈 방향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소통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런 소통 자체는 지금 매순간 바뀌고 있는 정보 기술이 도와줄 수 있겠죠. 그런 것들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합의를 이루고 그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하면 미래 사회의 인간소외 문제 등을 막을 수 있다고 보시는 거네요. 배 작가님은 정보기술 격차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배: SF에서 언급되는 악의 주체는 아까 말씀드린 정부(군대), 대기업과 더불어 매드 사이언티스트(Mad scientist)라고 불리는 세계를 정복하려는 과학자입니다. 세 부류 모두에게 우려하는 부분은 ‘뒤에서 나쁜 기술을 몰래 만들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변화를 주도하는 과학자들과의 대화와 소통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과학자들은 변화를 주도하고 있어서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더 몸을 낮추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 이 교수님은 늘 과학자들과 대화를 많이 하시죠. 다양한 집단 간에 학제를 넘나드는 토론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하셨는데, 특히 우리나라 과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가 있으십니까?

과학자에게는 ‘맥락화 능력’이 필요하다

이: 과학자들을 만나보면 풍부한 지식과 식견을 갖춘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정치적 견해는 대부분 한 방향으로 일치합니다. 왜 그럴까라고 생각해봤더니 이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사실을 근거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험적인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이론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에게는 A라는 사람의 죽음과 B라는 사람의 죽음이 같습니다. 그런데 사회학자의 시각에서는 A라는 사람의 죽음과 B라는 사람의 죽음이 같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맥락화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시뮬레이션 통계로 완성되는 알고리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구로 예를 들면 당구에선 단순히 직전의 공 움직임만 살피면 됩니다. 알파고도 같은 경우입니다. 전체적인 흐름이나 맥락과 관계없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맥락 없이 판단하는 기계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했을 때 항상 옳은 결정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사람들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판단하기를 원합니다. 객관적 사실과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는 미래를 결정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기술이 주는 우리 사회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고, 어떠한 정치적 세력을 나름의 기준에 의해 평가하는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학자와 공학자들에게는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는 게 조금 불편하고 힘든 사고방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인간사회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 이원재 교수는 개별 사실들을 역사적으로 맥락화할 수 능력이 인간 사회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중요한 자질이라고 말했다. ⓒ <2016서울디지털포럼특집> 화면 갈무리

제: 과학자들이 역사적인 맥락을 함께 고려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네요. 두 분과 오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릴 적 만화영화에서 봤던 아톰이나 태권브이 같은 로봇의 등에 타고 저 멀리 높은 곳을 한 바퀴 돌고 온 듯한 짜릿함이 느껴졌습니다. 흥미진진한 말씀 해 주신 두 분, 감사합니다.


경제방송 SBSCNBC가 지난 3월 24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을 신설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부터 50분간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내용을 전재한다. (편집자)  

* 전체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799666

편집 : 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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