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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 경제성장의 기반
[글케치북] 기본소득
2016년 11월 24일 (목) 18:51:01 박찬이 기자 8808082@gmail.com
   
▲ 박찬이 기자

이명박 정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줬다.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성장분이 저소득층에게도 흘러간다는 적하효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7% 성장률을 장담했던 이명박 정부의 성장률은 3%대에 머물렀다. 적하효과도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저소득층의 소비 축소로 경제성장의 기반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우리 경제의 화두가 되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주려는 방안으로 흔히 일자리 창출이나 최저임금 인상이 논의된다. 이런 방식은 4차 산업혁명의 진전과 자본 측의 견제로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무조건 지급하는, 이른바 기본소득제 도입은 어떨까? 저소득층에게 기본소득과 고소득층에게 기본소득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저소득층에게는 진짜 ‘기본’ 소득이지만 고소득층에게는 여분의 소득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전 국민에게 같은 금액을 쥐여줘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여기서 포인트는 같은 금액을 고루 준다는데 있는 게 아니라, 무조건 준다는 데에 있다.

소득을 얻으려면 항상 조건이 있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남의 주머니에서 내 주머니로 돈을 옮겨오기 위해서는 노동이나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완전 고용은 실현된 적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실업자가 되어야 하므로 시장 경제에서는 반드시 노동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한 복지소득도 보험료를 냈거나, 아주 가난하거나, 일자리를 찾는 중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받을 자격이 생긴다.

   
▲ 기본소득은 직접 주는 돈이다. ⓒ pixabay

기본소득은 그런 조건을 끊는 것이다. 고용-소득 간 연결고리를 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노동의 재해석이다. 기존 노동은 이미 경제적인 대가가 주어지는 노동에만 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정치참여, 전업주부의 활동, 사회봉사, 예술 활동 등의 노동은 소득이 0이었다. 게다가 인터넷 사용자로서 우리는 인공지능이나 구글,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사회에 천문학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에 대한 소득도 0이었다. 이것을 모두 통틀어 사회 기여라고 한다면 전 국민에 소득을 부여하는 기본소득의 원리는 무조건-소득이라기보다 사회기여-소득이라 볼 수 있다.

기본소득을 입증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이드 스토얼 섀플리는 장갑게임을 제시했다. 왼쪽 장갑을 가진 경기자 한 명과 오른쪽 장갑을 가진 경기자 두 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오른쪽과 왼쪽이 짝이 맞을 때만 1의 가치를 가지고 짝이 안 맞으면 0의 가치를 가진다. 경기자들은 자유롭게 모여서 연합을 이룬다. 그리고 게임이 끝난 뒤 경기자들에게 분배되는 몫을 보수라 하자. 모든 순서가 발생할 확률이 동일하다는 가정 아래 순서에 따른 사람들의 기여분을 평가하면 경기자 2, 3은 각각 1/6을 가져가고, 경기자 1은 4/6를 가지게 된다. 이 기여분을 ‘섀플리 가치’라고 한다. 이를 현재 경제 시스템에 적용해보면 기여분이 0인 경우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0이 아닌 이 금액이 기본소득이라 볼 수 있다.

미국 알래스카 주는 50년 가까이 주민 배당을 하고 있다. 성남시 청년 배당, 박근혜 정부 기초연금 공약도 부분적 기본소득제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정부 조세 수입 중 공공복지지출비용을 기본소득으로 전환한다고 가정하고 이 금액을 시민 총 수로 나누면 한국이 2014년 지급 가능한 1인당 기본소득은 연간 2,100달러(약 232만원)다. 1년 치니까 12개월로 나누면 약 20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언제든지 결심만 한다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 월 20만원을 추가 세수 없이 배당할 수 있다.

롤즈의 사회계약론처럼 원초적 상태에서 무지의 장막 뒤에서 생각해보면 개인들은 노동자가 될지 자본가가 될지도 모르며, 고용될지 안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유일하게 공정한 방법은 섀플리처럼 가능한 모든 순서 아래에서 사람들의 기여를 평가하는 것이다. 즉 실업자는 항상 생기게 마련이므로 누군가 실업자가 되더라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저 생계비에 해당하는 기본소득은 보장되어야 전국민을 위한 경제시스템이라 할 수 있고,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가능하다. 이젠 경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기본소득이 유일한 대안이다.


편집 : 고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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