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고찬수 KBS 예능PD
주제 ① 인기 끈 예능 프로의 비결

예능PD는 억울해

티비를 튼다. ‘무한도전’ ‘복면가왕’ ‘1박 2일’ 등 예능 프로를 본다. 저녁 드라마를 본다. 새벽에도 이어지는 무수한 재방송들까지 섭렵하고서 리모컨을 쥐고 잠자리에 든다. 아! 오늘도 바보상자에 빠졌다. ‘TV는 바보상자다.’

4살 아이가 ‘뽀로로’를 보며 입을 벌리고 있거나, 고3 수험생이 ‘태양의 후예’에 빠져 있다면 부모들이 할 법한 말이다. 강연에 나선 고찬수 KBS 예능PD(현 MCN 사업팀장)는 ‘TV는 바보상자’란 말에 의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스티브 존스의 <바보상자의 역습>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부제는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나?’

<바보상자의 역습>은 게임, TV, 인터넷 등이 나름대로 두뇌 활동을 자극한다고 분석한다. ‘책’은 집중력∙상상력 등에 효과가 있고, ‘TV’나 ‘게임’은 관계분석∙상황분석 등에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고 피디는 “영리함의 기준이 시대의 문화적 가치에 따라 달라지므로 특정 매체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 고찬수 PD는 ‘TV가 바보상자’라는 통념을 깨는 얘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 강한

고 피디는 삼수 끝에 KBS 예능국에 들어갔다. ‘연예가중계’에서 조연출로 일을 시작해 ‘토요일 전원출발’ ‘친구야 보고싶다’ 등을 연출했다. 2014년 연출한 ‘사랑과 전쟁, 아이돌 특집’으로 장수원의 로봇 연기를 발굴한 피디로도 이름이 알려졌다. 고 피디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한다.

앞으로 TV 방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도 많다. 그런 고민은 <쇼피디의 미래방송이야기>와 <스마트TV혁명> 등 책으로 나왔다. 지상파 최초로 시작한 KBS MCN 예띠스튜디오도 그의 기획이다. 1인 미디어 시장인 MCN(Multi Channel Network)은 [유튜브] [아프리카TV] 등에서 인기를 얻은 몇몇 채널들을 묶어서 관리하는 체계다. 1인 창작자의 콘텐츠 유통∙판매와 저작권관리 등에 도움을 주고 수익을 창작자와 나누어 갖는다. 미디어 시장이 TV의 경계를 넘어 요동치기까지 우리나라 예능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예능의 역사를 쓴 프로그램들

“옛날에는 생방송으로 찍었어요. 카메라로 찍어서 보여주면 끝. 편집이란 게 없었죠. 요즘 아프리카 TV에서 라이브 하는 걸 생각하면 돼요.”

TBC에서 1964년 12월부터 방영된 ‘쇼쇼쇼’가 대표적이다. 방송 통폐합으로 TBC가 KBS에 인수된 뒤인 1983년 7월까지 방영됐다. 춤과 노래, 코미디를 결합한 방식이었다. 고 피디는 편집에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어려운 작업이라서 방송 초창기에는 생방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고 피디가 방송국에 들어간 90년대 초∙중반 예능 흐름은 스튜디오와 야외 촬영이 혼재된 형태였다. 스튜디오로 야외촬영이 들어온 셈이다. 여러 방식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는 뜻의 ‘버라이어티’라는 말이 이때부터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고 피디는 예능 역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MBC의 일요 버라이어티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꼽는다. ‘이휘재의 인생극장’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등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 ‘그래 결심했어’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사람들의 이목을 끈 ‘이휘재의 인생극장’. © MBC 홈페이지

그 전까지 예능은 주로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편집 기술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촬영은 스튜디오에서 한 것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같은 새로운 예능을 가능하게 한 건 이엔지(ENG: Electric News Gathering) 카메라다. 뉴스를 촬영할 때 쓰던 이엔지 카메라가 넘어오면서 예능은 한 단계 발전했다.

하지만 이 당시 예능은 일본 영향을 많이 받는 한계도 있었다. 고 피디도 일본 프로그램을 많이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시 PD들은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많아서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통째로 베끼는 것을 피하려고 번역 없이 보고 나서 느낌만 받아 아이디어를 얻는 PD들도 있었다.

심리를 아는 자, 예능을 접수한다

이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상응하는 시스템 기반이 갖춰지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일요일뿐 아니라 평일 저녁에도 편성되는 등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KBS ‘해피투게더-쟁반노래방’과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이 대표적이다.

고 피디는 흐름에 맞춰 ‘보고싶다 친구야’ 프로그램 제작을 맡았다. 아이디어는 진행을 맡았던 이경규가 제시했다. 기획 때 다양한 아이디어가 오갔지만 제대로 진척이 안 되다가 우연히 이경규가 “술 먹으면 친구 나오라고 하지 않나, 이런 걸 프로그램으로 하자”고 낸 의견이 채택됐다. 초반에는 프로그램을 회의적으로 보는 이가 많았다. 섭외 역시 마땅한 인물이 없어 고심 끝에 윤정수와 심현섭을 섭외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첫 촬영 때 벌어졌다. 유명한 프로그램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던 인기 스타들이 촬영 현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친구가 부르니 나온 스타들은 전혀 꾸미지 않은 모습이기에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다. 방송은 두 회 만에 ‘대박’을 터뜨렸다. ‘섭외하기 힘든 사람들이 자기 발로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는 칼럼이 나오기도 했다.

▲ 고 피디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강한

고 피디는 당시의 경험을 전하며 평소 심리학, 뇌과학 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볼 것을 권했다.

“연예인들이 친구를 부를 때 그중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을 부르는 경향이 있었던 거죠. 이처럼 사람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면 프로그램도 잘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예능에 공익 한 스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시들 때쯤에는 최초의 공익 예능 프로그램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공익•캠페인의 경우 재미 요소가 떨어지기에 기존 예능에서는 피했지만, 이를 성공시킨 사례가 김영희 PD 연출의 MBC ‘양심 냉장고’라고 고 피디는 말했다.

이경규가 진행을 맡은 ‘양심 냉장고’는 종전에 추구하던 재미 요소와 거리가 멀었다. 한밤중에 신호등 정지선에 카메라를 놓고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대신 이경규와 함께 인기 축구 해설가이던 신문선을 섭외해 스포츠 중계하듯 상황을 다뤄 재미를 보충했다.

재미 요소가 다양하지 않다 보니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다 몇 회가 지나자 상황이 뒤집혔다. 최초로 정지선을 지킨 차량의 운전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시 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은 정지선을 지킨 최초 운전자가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 고 피디는 “MBC ‘양심 냉장고’ 방영 이후 정지선을 지키는 시민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 MBC 홈페이지

이후 김영희 피디는 MBC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덧댄 ‘김영희표’ 공익 예능 프로그램을 연달아 선보였다. 독도 문제를 환기한 ‘칭찬합시다’, 책 읽기 캠페인 등을 벌인 ‘느낌표’ 등이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이에 영향을 받은 KBS는 정보 전달에 집중해 ‘비타민’ ‘위기탈출 넘버원’ ‘스펀지’ 등을 만들며 공익 예능 프로그램의 지평을 넓혔다.

“공익 예능 프로그램의 출발은 시대를 읽는 안목에서 시작됐습니다. 김영희 피디는 시대에 필요한 흐름, 즉 ‘공익’을 읽었기에 성공을 거둔 것이죠. 제작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시기마다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아는 것도 피디로서 중요한 자질이라 볼 수 있습니다.”

▲ 고 피디는 “공영방송이 캠페인에서 공익적 요소를 너무 부각하면 시청자의 반감을 살 수 있다”며 “공익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강한

무모한 도전이 만든 ‘국민 예능’

90년대 말 불어 닥친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은 막대했다. 방송사 역시 그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방송사는 버라이어티에 상당한 예산을 할당했으나 이 역시 삭감됐다.

예능 프로그램들은 예산을 맞추기 위해 야외로 나가던 관행에서 벗어나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버라이어티가 야외에서 진행될 경우 카메라 20대 정도를 써야 하지만 스튜디오 촬영은 보통 5대를 쓰기 때문이었다. 촬영 장소 역시 스튜디오 한 곳이어서 제작비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 변화를 더하는 프로그램이 탄생했는데, 김태호 PD 연출의 MBC ‘무한도전’이었다. ‘무한도전’은 스튜디오 진행에서 인기를 얻은 뒤 차츰 변화를 추구했다. ‘무한도전’은 한 가지 아이템이 고수되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매주 다른 아이템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모았다. 한편으로 봅슬레이 등 무모한 도전을 자처해 감동과 성취 또한 안겨줬다. 지구온난화 등 공익적 주제도 선보여 시청자들의 호감을 더했다. 이러한 노력은 ‘무한도전’을 국민 예능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후 ‘무한도전’의 여파로 다른 방송사들도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KBS는 ‘1박 2일’과 ‘남자의 자격’을 통해 드러나지 않되 공익과 감동을 더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특히 ‘남자의 자격’은 합창 도전을 통해 국민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다.

해외에 나가려면 마케팅 개념 알아야

‘무한도전’의 영향을 받았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선을 끈 사례도 있다. SBS ‘런닝맨’이다. 이는 추격전을 기본으로 다양한 게스트를 섭외해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특히 ‘런닝맨’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위상을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도 해외에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런닝맨’ 덕분에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도 중국 등과 수출 협상을 벌일 수 있게 됐다.

김영희 피디 역시 예능 프로그램으로 해외에서 인기를 끈 성공 케이스로 꼽힌다. 김영희 피디가 연출한 ‘나는 가수다’는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가 싶더니 중국판으로도 제작돼 인기를 실감케 했다. 중국으로 간 김영희 피디는 효도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중국 내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힌 상태다.

▲ SBS ‘런닝맨’의 중국 수출판 ‘달려라 형제’ 시즌4(왼쪽)와 MBC ‘나는 가수다’의 중국 버전 ‘아시가수’ 시즌4. © ‘달려라 형제’∙’아시가수’ 홈페이지

“김영희 피디를 보면 마케팅 개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국 문화를 잘 간파했기에 효도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겠죠? 앞으로 프로그램의 성공과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제작 능력과 함께 마케팅 능력도 피디에게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화장기 없는 ‘민낯’ 프로그램이 더 좋다

“현실과 다르면 이제 안 봐요.”

리얼리티에 푹 빠졌다. “영구 없다~”와 같은 콩트 프로그램들은 사라지는 추세다. 미리 대본을 짜고 사전 연습한 콩트는 큰 호응이 없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버라이어티가 인기다. 고 피디는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도 그런 선상에서 일어났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가수가 되는 사실적인 모습에 열광했다.

하지만 고 피디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춤하는 이유가 대중들이 다시 연예인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SBS ‘K팝스타’는 지난해 시즌 6로 문을 닫았다.

연예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은 뒤 지루해지면 이내 일반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다. 이후 식상해지면 다시 연예인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는 패턴이 반복된다.

“리얼리티 예능의 종점은 다큐예요.”

고 피디는 ‘아빠! 어디가?’ 첫 회를 보고 놀랐다. 웃길 수 있는 상황을 그대로 다큐처럼 내버려뒀기 때문이다. ‘1박2일’은 웃기려는 설정을 주는 반면, ‘아빠! 어디가?’는 웃기려는 설정 자체를 출연진들에게 주지 않았다. 아빠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고, 시청자들은 빨려 들어갔다. 연출이 가미되지 않은 ‘리얼’함에 재미를 느꼈다. ‘진짜 사나이’의 흥행 이유도 이 선상에 있다고 고 피디는 덧붙였다.

tvN과 JTBC, 기존 틀을 벗어난 새로운 포맷

tvN과 JTBC가 예능계 블루오션에 뛰어들고 있다. JTBC ‘히든싱어’와 tvN ‘삼시세끼’는 각각 음악 예능과 여행 예능의 지평을 넓혔다. ‘히든싱어’는 보는 음악에 익숙한 우리에게 듣는 음악의 재미를 느끼게 했다. ‘삼시세끼’는 여행 예능의 기존 틀에서 벗어난 사례다. 시골 지역에 가서 마음 편히 쉬다가 끼니때 모여서 밥을 만들어 먹는 모습이 주다.

JTBC ‘썰전’에서 진보와 보수 논객이 나와 정치이슈를 토론하는 것은 최근 지상파에서 시사토론 프로그램이 자취를 감춘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박근혜와 최순실 게이트를 다루면서 지상파 예능보다 높은 8.1%의 시청률을 보였다. 고 피디는 “종편과 케이블은 적자가 상당할 텐데,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제작비를 투입해 새로운 스타일의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있다”고 언급했다.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썰전’은 내밀한 정치 이야기까지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 JTBC ‘썰전’ 홈페이지

TV를 틀면 예능 프로그램이 넘친다. 메시지도 넘친다. TV가 바보상자가 되지 않으려면 사회와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 작년 ‘무한도전’ ‘런닝맨’ ‘개그콘서트’ ‘SNL코리아 시즌 8’ 등 여러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하는 자막을 등장시켰다. 예능에 내포된 메시지는 젊은 층도 사회 문제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도록 이끄는 것이다.

박명수는 라디오를 통해 “이런 시국일수록 예능인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소신 발언을 했다. 고 피디는 예능 프로그램의 힘을 강조하며 강의를 마무리 지었다.

“재미가 있어야 사람을 바꿀 수 있고, 사람을 바꿀 수 있어야 미래를 바꿉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이창곤 심보선 홍세화 고찬수 이주헌 윤성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황두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