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헌법은 국가의 기본질서다

▲ 박찬이 기자

최순실 게이트가 막 터지고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율이 4%일 즈음이었다. 야당은 촛불시민의 요구를 당 차원에서 어떻게 끌고 나갈지를 논의했다. 국민들의 요구는 하야였다. 그때 문재인 전 대표가 원로 학자들과의 자리를 마련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국민 감정으로는 (박근혜 대통령) 하야가 맞지만, 우리 정치 진행 과정에서는 성급하다"며 "혁명적 사태를 반혁명적으로 해결하는 게 순리"라고 문재인 전 대표에게 조언했다.

시간을 들여 충분히 법적인 절차를 진행한 다음에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검찰 조사나 특검, 국정조사 등을 진행해 진실을 먼저 밝히라는 것이다. 진실과 결단은 형식적으로나마 국민이 아닌 대의기구가 정해야한다는 관점이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탄핵에 비해 하야나 퇴진은 불충분하고, 반역적인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현직 대통령 탄핵은 인용되었다.

▲ 탄핵 주문을 발표하는 이정미 헌법재판관. ⓒ MBN 갈무리

이런 역사적 경험은 국민에게 우선 법치주의에 대한 교육이 될 것이다. 탄핵제도는 정치의 범위를 넘는 행위를 제어했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박근혜가 최순실을 위해 대통령 의 권한을 쓴 일은 공권력 남용뿐 아니라, 국민을 배반하는 행위였다. 탄핵을 통해 국가 최고 권력자가 자신에게 주권을 양도한 국민을 배반할 때 다시 권력을 뺏어왔다. 이는 질서의 회복이다. 질서 회복과 동시에 이성적으로 그 탄핵 사유를 낱낱이 파헤쳐보는 기회를 가졌다. 국민주권 원리에 기반한 탄핵제도가 거둔 역사적 성과다. 혁명 사태를 반혁명적으로 해결하는 역사가 세워졌다. 혁명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서 국가의 기초, 사회‧경제 제도와 조직을  급격하게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다. 반혁명은 이성적이고 법적인 절차에 따라 제도와 조직을 고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의 결론은 결국 같았다.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릴 때, 혁명적 요구 또한 인용됐다. 한국 역사에서 혁명적 사태는  종종 있었다.  해방정국, 4.19혁명, 87항쟁 등 정권의 무능과 부도덕으로 정치적 공백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혼란을 수습한 주체는 87년 빼고는 독재군사정권이었다. 군사정권은 총칼이라는 비이성적인 공포감을 이용했다. 폭력으로 혁명적 요구를 눌려버렸다. 이번엔 역사 최초로, 혁명적 요구가 그대로 수용된 것이다.

그런데 국민주권이라는 촛불의 요구를 날것 그대로 관철시키지 못한 점은 아쉽다. 헌법재판소는 국민 위에 있지 않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질서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데 기본질서를 변경하거나 세울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즉 헌법 또한 국민이 만든 것이다. 헌법 제정과 개정을 수행하는 주체는 헌법 제정 권력자인 국민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이런 위상을 가진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국민주권 원리가 정치적 결단으로 이어지지 않고, 헌법 재판소에서 인용되는 문구로만 기능하게 된 현실은 아쉬운 대목이다.


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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