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기획] ② 국회 공정무역 정책토론회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22분경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 지난해 12월에 이어 제2차 공정무역 정책토론회가 진행되던 도중 참석자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역사적인 순간을 TV를 통해 지켜봤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우원식 의원은 “공정무역을 이야기 하는 지금, 오늘 탄핵이 우리에게 준 과제와 그 책임이 정말 크다”며, “(과거) 질곡을 끊을 수 있는 심판의 날에 우리에게 비로소 기회가 만들어졌다”고 공정무역의 앞날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이번 정책토론회를 주관한 한국공정무역단체협의회 송경용 이사장 역시 “탄핵 인용으로 한국에 공정한 사회가 제대로 시작될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하며 토론회를 이어갔다. 정책토론회는 탄핵 인용 발표 이후 더 밝아진 분위기에서 앞으로의 국면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에 대한 토론을 열띤 대화로 이어갔다.

▲ 제 2차 공정무역 정책토론회 중 박 전 대통령 파면 선고 생중계를 지켜보는 의원 및 활동가들이다. ⓒ 윤연정

파면 선고가 된 지금,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회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에게 파면을 선고했지만, 이를 견인한 시민의 혁명은 완성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비정상을 끊임없이 야기했던 시스템에 대한 개혁은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국가와 국민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회·경제 구조에서부터 ‘지속가능성’과 ‘공정성’이 화두로 떠오른다. 20대 국회에서 ‘공정무역’을 주창하는 이유다.

공정무역은 왜 우리 시대 중요한 이슈인가?

공정무역은 지구 남반구의 소외된 생산자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보다 나은 무역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발전을 목표로 닻을 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범위가 점차 확대돼 소외된 북반구 생산자는 물론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농민들도 포함한다. 경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 사회 하부구조를 공정하게 만드는 맥락에서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진다.

10일 진행된 2차 정책 토론회에서는 지금까지 성취한 구의회 및 도의회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 성과를 되돌아봤다. 또, 공정무역도시 추진 선포식을 한 서울시, 인천시, 부천시, 성북구 중 성북구의 추진 사례와 새로 시작하는 경기도 사례도 다뤘다. 이어 해외사례를 통해 정부와 국회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공정무역을 뿌리내려 활성화 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가졌다. 활성화의 큰 줄기는 크게 3가지로 모인다. 국회 내 공정무역 전담팀 확산, 조례제정 공고화, 그리고 인식 확산을 위한 노력이다.

“공정무역은 결국 가치 판단의 문제다”

“정책 프레임은 운동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정책당국자들에게는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지 않도록, 제대로 된 운동장 만들기가 핵심입니다. 사람들이 찾는 운동장을 만들 수 있는 법령까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공정무역 활성화를 위해 4년 동안 꾸준히 달려온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성북구 사례를 통해 지금 대한민국이 가야 하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공정무역운동을 가장 활발히 하는 도시는 서울시고, 그중 가장 구체적인 성과를 내놓고 있는 지역은 성북구다. 46만 명가량의 주민들이 사는 성북구는 2012년부터 공정무역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행정조직 내 공정무역 전담팀을 신설하고 조례제정에 나섰다. 지역 내 커뮤니티 연대를 활발히 하고 서포터즈 운영 등 소그룹을 통한 지속성 확보방안을 마련해 왔다. 지난해 8월에는 주민들이 배울 수 있도록 ‘페어라운드’라는 공정무역센터를 세웠다.

▲ 김영배 구청장이 성북구 공정무역 진행 추이를 발표하고 있다. ⓒ 윤연정

김 구청장은 “행정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지방 정권이 가진 의무와 시민들의 권리라는 관계’에 대한 법리를 어떻게 마련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며, “성북구는 보장할 수 없는 것을 명문화하지 않고, 작동하지 않을 것을 조례로 만들지 않는 원칙을 지키려 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현재 법률, 규정, 자치 조례, 관행 등이 기존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작동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그대로 따르기는 쉽지 않다. 이에 성북구는 공정무역을 정책 프레임으로 다루면서 방향성을 찾았다.

김 구청장은 “작동하고 보장받는 것은 행정적인 것보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제대로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성북구는 ‘동행’이라는 키워드로 모든 작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성북구는 ‘동행계약서’로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서로 필요해서 맺는 계약서를 아예 제도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김 구청장은 “이 모든 게 다 시민들이 끌어낸 것”이라며, “결국 경제적 행위도 어떤 행위나 원리가 더 좋고 옳은 것인가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는 것과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최근 송파구에 283명의 경비원이 전원 해고 되는 사태를 비판했다.  무엇이 미덕인지에 대한 판단도 결국 공동체의 의사결정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철학을 들려줬다. 이는 공정무역이 직시하는 가치판단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자유무역이 옳은가, 공정무역이 옳은가, 자국 우선주의가 맞는가’에 대한 합의가 지금 이 시점에 중요한 대목인 이유다.

정부 성격은 예산세 보면 나온다,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

공정무역 인프라를 닦는 문제는 김영배 성북구청장에게도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매년 예산을 어떻게 분배하고 특히 공정무역에 얼마큼 투자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모든 시,군,구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예산 문제는 철학이자 가치다. 예산이 없어서 못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실행하는 속도와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해야 하는 일이면 예산과 상관없이 하게 되어 있다.”

김 구청장은 공정무역과 다른 사회적 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어디서 확보했을까? 토목과 예산을 줄여 매년 30억 원씩 마련했다. 토목과에서 필요한 사업들은 기존 사업을 제외하고 신규 사업은 거의 안 하는 쪽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예산을 운용한 덕분이다.

2016년 8월에 만들어진 ‘페어라운드’ 공정무역 센터도 결국 공공국가의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공정무역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볼 때 균형 있는 자산 운용과 활용이 과연 되는가의 문제가 가장 크다”며 “공정무역에 관한 인식 문제를 포함한 현실적인 재정적 문제들 모두 여전히 풀어야 하는 과제”라며 말을 맺었다.

▲ 성북구 동선동 1가, 한 골목으로 들어오면 2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2016년 8월 19일 '페어라운드'가 열렸다. ⓒ 윤연정
▲ 성북구 동선동 1가, 한 골목으로 들어오면 2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1층 오픈 스튜디오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공정무역 교육 및 참여 활동 강의들이 열린다. ⓒ 윤연정

경기도공정무역조례를 위한 특별한 ‘동거’

이어 김형삼 경기도의원은 “성북구청장의 제언에 깊이 공감한다”며 후발주자로 따라가는 경기도의 공정무역 진행 상황을 소개했다. 경기도 공정무역 진행 과정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공정무역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다 같이 참여한다는 점이다.

공정무역과 같은 개념이해가 필수적인 새로운 사업이 진행될 때 공무원들의 주기적인 업무 로테이션 문제 때문에 제대로 진척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불거졌다. 현재 경기도는 행정조직에 공정무역 담당 부서를 확대 설치하고 함께 논의하며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경기도의회 공정무역조례 준비 담당자 원미정 의원의 방식은 이 점에서 돋보인다. 보통 정책 설계를 할 때 집행부와 의회가 따로 일하는데, 조례를 만드는 의원과 현장 활동가를 비롯해 집행부 공무원까지 모여서 공정무역 경기 포럼을 만들었다. 함께 학습하며 토론한다.

경기도의회 공정무역 담당 상임위가 의원들 동의를 받아서 예산을 만들어 3월부터 연구비용 전체를 지원한다. 2017년 경기 공정무역 국제콘퍼런스 개최에 이어 내년에 경기도를 공정무역도(道)로 선언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시민 기반이 튼튼하게 마련돼야 더 멀리 갈 수 있는 게 공정무역이다. 행정 조직과 시민적 기반, 두 양축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 김현삼 경기도의원이 경기도 공정무역 진행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 한국공정무역협의회

경기도 의회 김현삼 의원은 “정의를 위한 공정무역의 중요한 가치를 더 배우고 널리 알려 의례적인 조례가 아닌 우리 사회를 바꾸는 모멘텀이 되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원미정 의원도 “배우는 과정에서 행정적인 일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가치를 전환하고 지향하는 부분도 중요하다”며, “더불어 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정부주도 공정무역? 풀뿌리 공정무역?

쿠피 협동조합의 김선화 연구원은 정부 정책과 의회의 역할과 관련한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프랑스는 공정무역법을 만들어서 사회연대경제법안에 공정무역을 넣었다. 공정한 제도를 중심으로 공정무역을 확산시키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영국은 풀뿌리 운동으로 공정무역을 실현한다. 민간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정부를 움직이는 모양새다. 전체 1,872개의 공정무역마을 중 619개가 영국에 있는 점은 이를 잘 말해준다. 독일 456개를 비롯해 전체 공정무역 마을의 90%가 유럽에 있다.

런던시의 17개 구는 2007년부터 공정무역 구역으로 인정받았다. 규정(City Corporation)정책은 공정무역 제품을 가능한 한 직접 구매하고, 요식 업체 및 기타 관련 계약자가 이 약속을 지키도록 공정무역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특히 주목해서 볼 것은 2016년에서 2019년까지 진행되는 런던시의 ‘책임조달 전략’이다. 노동자가 공정한 임금을 받기 위해 구매자가 조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 쿠피 협동조합의 김선화 연구원은 저번 토론회에 이어 해외사례를 소개하면서 정부와 의회의 역활이 중요하다고 발표했다. ⓒ 한국공정무역협의회

하지만, 영국은 공공조달에 공정무역을 포함하는 것에 대해 유럽연합의 다른 나라들보다 더 보수적으로 접근한다. 공공조달에서 공정무역 상품을 선호하는 것을 차별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를 비롯한 EU 공공조달 규칙은 영국과 달리 공평, 반차별, 투명성에 뿌리를 둔다. 프랑스는 2014년 공정무역 법인 사회적연대경제법 제 94조를 만들어 2005년에 정의 된 공정무역을 조항들을 더 많이 넣었다. 개도국의 공정무역 제품은 물론 유럽에 있는 가난한 나라나 자국 농민들과의 무역까지 포함했다.

EU는 소비자 조사를 끊임없이 하면서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 및 의식 개선 촉구 활동을 다양하게 벌인다. 생산국의 생산자 단체 및 협동조합의 역량 강화를 재정적으로 돕는다. 유럽의 우수 사례를 공유하고 EU 기업들 사이에도 책임소싱을 촉진시켜 공정무역에 참여하게 한다.

지속성장 위해 공정무역 조례 제정, 공공조달 필요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공정무역마을운동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조례 또는 법 제정이 시급하다. 서울특별시 및 성북구는 공정무역 조례가 제정된 있는 상황이고 강북구를 비롯한 서대문구 은평구 등은 사회적경제지원 조례에 공정무역을 사회적경제기업 분류의 한 항목으로 명시해놓은 상황이다.

해외에서 공정무역 마을 운동을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시의회의 조례 제정이나 결의안이다. 여야가 뒤바뀌거나 정책적 변화 가능성이 있으므로 먼저 조례를 통해 법적기반을 마련한다. 법률은 지원의 근거가 되고 지속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권원의 기준이다.

아울러 김선화 연구원은 서울시나 성북구에서 이행을 시작한 ‘공정무역 공공조달’을 강조한다. 사회적기업 생산제품 우선 구매제도 법을 활용하는 방법을 포함해, 서울시에서 2015년 678억 원, 2016년 700억가량의 사회적경제 공공구매 실적을 올렸다. 그만큼 공정무역이 공공조달 내 포함될 수 있는 방법은 있다는 증거다.

공공기관들의 매점, 카페 등에 일부분이라도 공정무역제품을 넣어놓으면 공급 구매 확산이 가능하다. 공정무역이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을 합의하고 지표를 개발한다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삶 곳곳에 공정무역 제품이 녹아들 수 있도록 공공조달에 대한 명료한 법 제정은 꼭 해결해야 할 과제다.

‘조례제정’과 ‘공공조달’ 외에도 공정무역 확대를 위한 10가지 제언에는 ▲공정무역 공공구매 ▲공공기관 판매 ▲국제개발협력을 통한 생산자 지원 ▲영양평가 ▲옹호 단체 구성 ▲마을운영위원회 구성 ▲공정무역 커뮤니티 확대 ▲교육과 캠페인 확산 등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확정된 조기 대선. 이를 실현해준 촛불민심은 무엇이 더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인지 묻는다. 공정무역운동이 표방하는 ‘공정한 사회’는 정파와 정치 노선을 막론하고 공통의 관심사다. 영국의 예가 이를 입증한다. 노동당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이 공정무역 도시 디자인을 준비하고, 보수당 시장이 이를 선포한 점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분열이 아닌 협치로 가능했던 진보다.

▲ 제2차 공정무역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윤연정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탁자에 앉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들이 만든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우리는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되는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흑인운동 지도자이자 목사인 마틴 루터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unior)의 말이다.

전 세계는 이미 유기적인 공동체다. 우리의 삶은 무역상품으로 채워진다. OECD 국가 중 무역의존도가 상위권인 우리는 더욱 그렇다. 평화 노벨상 후보에 올랐던 세계적인 록 그룹 U2 리더 보노는 쇼핑은 정치라는 말을 남겼다. 돈을 내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표를 행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제대로 된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 것은 매일 불공정한 투표를 하는 것과 같다. ‘공정무역’은 왜곡된 자본주의 논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무시할 수 없는 대안이다.

세계화가 착취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승자독식 원리에 따르면서 환경오염, 유전자 조작(GMO) 등 식품 안전, 빈부격차, 기아 등의 문제가 도를 더해간다.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겪으며 윤리적 소비행동에 대한 경각심이 급속히 높아지는 추세다. 단순히 가격이나 품질만을 고려한 선택이 아니라 환경, 건강, 인권 등의 윤리적 측면을 고려하는 책임 소비의 중요성이 커진다. 공정한 생산·공급 구조를 만들고,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공정무역’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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