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이창곤 '한겨레' 선임기자
주제 ② 언론과 사회정책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실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언론이 사용하는 현실 진단 방법은 두 가지다. 기자가 현장을 찾아 세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하는 스케치와 연구결과를 객관적 수치로 보여주는 통계다. 구체적인 사실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다. 19세기 영국의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이었다. 빈곤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모닝크로니클>의 헨리 메이휴는 런던 거리로 나섰다. 거지와 거리의 악사, 시장 상인, 창녀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그러자 소외받는 그들 역시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선박사업으로 부를 일군 사업가 찰스 부스는 사재를 털어 빈곤의 실태를 조사했다. 빈곤의 책임은 개인의 게으름과 나태에 있다고 생각한 그의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빈곤의 패러다임을 바꾼 찰스 부스
그러나 런던시민 중 약 30%가 빈곤층에 속한다는 충격적 결과가 나왔다. 개인의 도덕적 타락을 빈곤의 원인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높은 수치였다. 결국 부스는 빈곤의 책임이 저임금과 부정기적인 일자리 등 사회정책의 실패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사회조사를 통한 구체적인 수치는 중세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개인주의적 빈곤관을 바꿔놓았으며 빈곤은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게 되었다.
현재 영국의 보건의료제도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가 제정되는 데는 베버리지 보고서의 영향이 컸다. ‘사회보험과 사업에 관한 각 부처 연락위원회’ 위원장 W. H. 베버리지가 제출한 이 보고서는 사회보장의 궁극적 목표가 궁핍 해소라고 밝혔다. 궁핍의 원인은 실업•질병•노령•사망 등에 의한 소득의 중단이며 기본적 수요 충족을 위한 사회보장보험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뒤 많은 사회보장법이 제도화했다. 최저생활수준이 권리로 보장되었고 생존권도 처음으로 사회보장에 적용되었다. 임금노동자에 한정된 적용자의 범위를 전 국민으로 확대한 것도 획기적이었다. 2차세계대전 후 확립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영국 사회보장체계는 세계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보장제도 확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어떤 언론인이 될 것인가
“저널리즘은 역사의 최전선에 있으며, 기자는 기사로 이를 최초로 기록하며 그 첫인상을 결정한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최초로 코멘트하는 사람이 기자다.”
폴리 토인비가 2004년 이창곤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밝힌 언론관이다. 그녀는 영국 <가디언>의 칼럼니스트로 잘 알려졌으며 사회정책 전문가다.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의 손녀이기도 하다. 토인비는 기자가 깊은 학문적 이해를 가졌을 때 훨씬 심도 있는 기사를 쓸 수 있고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할 수 있을 만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본이다. 옥스퍼드를 중퇴했지만 영국의 사회복지학회(SPA, Social Policy Association)에서 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학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은 민주주의의 부수적 존재가 아니라, 민주주의 보증인’이라 평했다. 기자지망생들이 단순히 취업만을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기자의 임무와 역할을 명확히 알고 도전해야 하는 이유다.
막스 베버는 언론인에 대해 ‘아웃사이더 계층에 속하며, 항상 윤리적으로 열등한 대표자들을 기준으로 사회적 평가가 내려지는 계층’이라 표현했다. 실제로 기자는 그들이 하는 일에 견주어 저평가받는다. 그러나 베버의 진단은 달랐다. ‘존경할 만한 저널리스트’의 일은 뛰어난 학자의 재능이나 최소한 같은 수준의 재능을 요하며, 그들의 책임감은 학자의 책임감을 능가하고, 분별력도 대다수 사람들보다 크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돼먹지 못하거나 무가치한 저널리스트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놀라운 일은 이 모든 어려움에도 이 계층에 훌륭하고 아주 순수한 사람들이, 국외자들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존경할 만한 저널리스트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리영희 선생이 첫손가락에 꼽힐 만하다. 오늘날 많은 기자들이 학위를 추구하는 것과 달리 그에게는 석사 학위도 없다. 뛰어난 학자의 재능은 반드시 학위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에도 박사 학위자들이 많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70~80%는 박사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한국에서 기자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노후 대비책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리영희 선생은 전문학자로서 몰두하고 깊게 들어가느냐, 아니면 더 많은 대중에게 우선 다급한 상황에서 필요한 영향을 줄 것이냐, 했을 때 후자를 선택했다.
복지정책을 둘러싼 언론의 프레임 전쟁
한국 언론이 사회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사건 중심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돌발적 사건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반면 정책은 국민의 생활과 자유를 실질적으로 규정한다. 어떤 정책이 제대로 입안되거나 집행되지 않으면 많은 이들이 큰 고통을 받거나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언론은 점차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사회정책 관련 보도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복지뉴스는 2010년 이래 복지국가 담론이 등장하면서 폭주했다. 2010년 이래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 언론은 복지 관련 시리즈를 봇물처럼 쏟아냈고, 이런 분위기가 학계와 시민단체 등으로 퍼졌다. 정치권도 이에 따라 복지담론을 선점하기 위해 무성한 말잔치를 벌였다. ‘정의로운 복지국가’, ‘역동적 복지’,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 ‘한국형 고용복지’ 이야기가 이때 등장했다.
복지뉴스나 그를 포함한 정책뉴스는 가치적 성격이 강하다. 프레임의 전장 또는 해석투쟁의 장으로 통한다. 정부 부처의 보도자료가 정책뉴스의 진원지라 할 수 있지만, 보도자료 역시 사실은 정부의 프레임이다. 언론은 이 프레임을 그대로 옮겨 싣기도 하고 다시 프레이밍하기도 한다.
대처 총리의 죽음을 판이하게 다룬 언론
영국 신자유주의의 기수인 마거릿 대처 총리가 사망했을 때, <조선일보>는 그를 영국병을 고치고 공산주의를 무너뜨렸으며 윈스턴 처칠 이후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힌다고 했지만, <한겨레>는 그가 광범위한 사영화정책으로 4차례나 노동법을 바꿔가며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물리친 반노조적 인물이었으며 극심한 빈부격차를 영국에서 세계로 확산시켰다는 부정적 면모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영국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데일리메일>은 영국을 구한 철의 여인이라고 애도한 반면, <데일리미러>는 양극화를 낳은 장본인이라 평가했다. 특히 <가디언>의 접근은 주목할 만했다. ‘데이터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가디언>은 수치와 그래프를 제시했다. 중위소득의 60% 이하인 빈곤계층은 1979년 13.4%에서 1980년대 중반 22.2%로 크게 상승했고, 넷 중 한 명이던 노조가입률도 여덟 중 한 명꼴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통계로 대처 시절 영국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드러냈다.
기자는 이처럼 어떤 프레임을 가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자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또 평소에 폭넓은 배경지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빠른 판단과 깊이 있는 기사를 써내기가 쉽지 않다. 사건기사는 즉각 반응해야 하고, 정치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 열 권 이상 책과 보고서를 읽어야 할 때도 있다. 기자는 각각의 이슈를 충분히 장악하고 있어야 하며 점점 더 많은 지적 능력을 요구받는다.
뉴스의 시대에 언론은 왜 위기를 맞았나
결국 이러한 기자의 노력을 통해 언론이 자임하고자 하는 것은 공론장의 중심자 역할이다. 즉 여론이 건강하고 건전하게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며 공론장의 구조도 변동하고 있다. 이는 언론 환경의 변화를 뜻한다. 뉴스의 형태, 매출 하락 등 경영상의 어려움, 완성도의 문제, 모바일 이용자의 소비성향 등 대응해야 할 문제는 전방위적이다.
그 중에서도 위기의 핵심 징후는 언론이 본질적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진짜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대를 맞아 모두가 위기를 말하지만 뉴스는 늘어났고 뉴스 소비도 폭증하고 있다. 가히 뉴스의 시대다. 언론은 이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이창곤 심보선 홍세화 고찬수 이주헌 윤성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
편집 : 민수아 기자
단비뉴스 전략부, 시사현안부 김범진입니다.
가장 현실적일 때 가장 이상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