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광장’

▲ 이현지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라는 사회적 재난이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다. 믿었던 체계들이 무너지고 파편만이 즐비하다. 폐허의 한가운데서 국민들은 ‘통탄’이든 ‘참담’이든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낀다. 그 고통은 국가가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에서 온다. 국책사업과 사회제도가 최씨 일가의 사익을 위해 운영되었다. 수십, 수백억 원이 말장난처럼 움직였고, 대학 학칙은 말 바꾸듯 변경됐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박근혜 정권의 민낯이 드러났고 그 충격은 기존 체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박근혜-최순실 재난’으로 정치·사회적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분노와 상실감이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 박진영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춤추는 지각변동 위에서 축제를 벌이는 거다. 이 사회적 참사에도 국민들은 그저 분노할 뿐 나아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진실과 정의는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환영의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희망도 갈 길도 잃은 기분이다.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난의 공포는 엘리트가 불러일으킨 환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재난이 일상이 되었을 때, 공동체의 연대로 사회적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연대에는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기쁨이 뒤따른다. 변화는 사회지도층이 끌고 온 관행을 뒤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박근혜-최순실 재난’이 일상이 된 지금, ‘폐허를 응시’하며 변화의 축제를 벌일 일만 남았다.

축제는 광장 민주주의로 실현된다. 2008년 시민들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촛불시위는 인터넷 광장에서 시작된 놀이이자 축제였다. 2014년 세월호 집회에 이르기까지 광장은 들끓었다. 하지만 광장 민주주의가 사회의 지형을 바꾸지는 못했다. 보수언론은 집회에 ‘불법시위’나 ‘교통혼잡’ 프레임을 씌우고, 시위 주체에 ‘반정부 좌파세력’, ‘시위 전문가’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민의 축제는 ‘한여름 밤의 꿈’이 되어 제도의 변화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손호철 교수는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대해 “대중은 광장으로 뛰어나와 엄청난 힘을 보여줬지만 새로운 주체로 탈바꿈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 광장 민주주의는 침통함과 기쁨이 뒤섞인 축제로 진화한다. © 서정은

그러나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다. 광장 민주주의가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은 교내에서 박 대통령이 사교(邪敎)집단에 국정운영을 맡긴 사태를 풍자한 '시굿선언' 퍼포먼스를 벌였다. 시국선언의 비장함을 버리고 ‘웃픈’ 유쾌함을 택해 화제가 되었다.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에 올라온 풍자글 ‘공주전’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순실이 빨리와', '순실 닭키우기' 등 모바일게임도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저항의 공간인 광장에서 침통함과 기쁨이 뒤섞인 축제가 계속되고 있다. 완전한 폐허 위에서도 연대의 축제는 사회를 재건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광장 민주주의에는 사회를 탈바꿈할 힘이 있다.

“이 시대의 잠재적 낙원의 문은 지옥 속에 있다.” 레베카 솔닛은 ‘지옥 속에 세워진 낙원’을 보았다. ‘헬조선’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처럼 황당무계하게 비참한 적은 없었다. 달리 생각하면 ‘헬조선’을 탈출해 공생의 사회로 나아갈 기회다. ‘낙원의 문’은 이번 재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개폐가 결정될 것이다. ‘낙원의 문’이 열릴 때까지 광장의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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