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재난’

▲ 민수아 기자

생각해보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위험한 순간들은 꽤 있었다. 2013년 여름, 공주 사대부고 학생 5명이 해병대캠프에서 사망한 사고현장에는 사촌 동생이 있었다. 올여름 일본 여행을 갔을 때는 연이은 태풍 3개에 비행기가 결항되면서 계획에 없던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한때 선거공약으로 원전 폐쇄가 거론된 곳이 부모님이 살고 있는 부산이고, 지난달 태풍 ‘차바’로 수해를 입은 지역 역시 너무나 익숙한 장소다. 직접 피해자가 된 적은 없지만, 간접 경험은 한 적은 꽤 있다. 큰 재해,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으로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 내가 겪은 경험들은 300이라는 숫자 속에 숨어있다.

재난은 영어로 ‘Disaster’다. ‘별, 천문’을 뜻하는 ‘astrum’이라는 말에 부정 의미의 접두사 ‘dis’가 붙은 말로 ‘불길한 별’, ‘불길한 징조’를 나타낸다. 과거 서양에서는 별과 우주의 순리가 어긋나서 큰 재앙이나 사고가 생기는 거라 믿었다. 이 운명론적 생각에는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논리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많다. 신을 화나게 했기 때문이라는 임의적 이유에는 무슨 말을 갖다 붙여도 말이 된다. 왕이 폭정을 일삼아서 천둥의 신 토르가 번개를 내던졌을 수도 있고, 관리의 수탈에 노한 신이 폭우를 쏟아부었을 수도 있다. 재난을 신의 저주로 보는 전근대의 귀인(attribution) 과정은 권력자의 자의적인 해석에 달려 있다.

이런 미신적 해석을 현대의 재난에 적용할 수는 없다.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재난의 기본 속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자연재해뿐 아니라 인재까지 포함하는 것이 현대의 재난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안전사고의 가능성이 커졌고 재난의 원인에 ‘경제논리’가 끼어들었다. 적어도 인간, 시스템, 문명이 개입된 부분까지는 재난을 막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것들이 재난을 확대한다. 완전한 안전보장은 어렵더라도 재난의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다. 천문학적 비용과 인력, 정보를 필요로 하는 방재 시스템은 개인의 능력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지만 국민안전처는 긴급 재난 문자조차 제대로 발송하지 못했다. ©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Catastrophe’는 그리스어 ‘katastrophe’에서 온 말로 ‘참사’, ‘재앙’을 뜻한다. 프랑스 수학자 르네 톰의 ‘카타스트로피 이론’은 작은 사건처럼 보이는 수많은 변수가 유기적∙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체계를 설명한다. 

“여름에 물조심하고 가을에 불조심해.” 몇 년 전 친구와 점집에 갔다가 역술가에게 들은 말이다. 점괘는 나름대로 확률과 보편성에 바탕을 둔 예측이다. 여름에 물놀이 많이 가고 건조한 가을에 불이 많이 나니 당연히 새겨듣고 삼가야 할 일이다. 방재당국이 점쟁이만도 못한 집단으로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황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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