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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삼족솥’ 숲이 울창해지려면
[역사인문산책] 촛불
2017년 01월 26일 (목) 14:40:45 유선희 기자 tjsgml881101@naver.com
   
▲ 유선희 기자

‘삼(森)’이라는 회의문자는 ‘나무 목(木)’이라는 상형문자 세 개로 만들었다. ‘수풀, 숲’이란 뜻이지만, ‘촘촘하고 빽빽하다’는 의미가 덧붙는다. 여기서 나무 하나를 빼면 ‘림(林)’이 된다. 같은 ‘수풀, 숲’이지만, 더 이상 ‘빽빽하다’는 의미는 없다. 오히려 도심이 아닌 한적한 곳이라는 의미가 크다. ‘국민, 주권, 영토’로 이루어진 국가는 나무로 빽빽하게 들어선 숲과 같다. 3요소 중 하나라도 흔들리면 국가는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어렵다. 민간인이 공적 권력을 쥐고 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국가의 기본요소인 ‘국민’은 물론 국민의 ’주권‘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을 전면으로 위반했다. 광장의 촛불은 무너진 삼각관계에 대한 울분이다.

현 촛불국면은 ‘대한제국판 만민공동회’다. 주권회복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점이 닮은꼴이다. 500년 이씨 왕조 역사 최초로 민중이 중심이 된 1898년 만민공동회는 러시아의 이권침탈에 강하게 반발하며 싹을 틔웠다. 만민공동회는 대한제국 정부가 러시아와 맺은 부당한 협정을 모두 백지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의 군사와 재정고문이 물러나고, 부산절영도(영도) 군사기지화 요구가 백지화됐다. 덕수궁 앞(현 시청광장)을 진하게 물들였던 대한제국 만민공동회 민중의 요구는 118년 만에 같은 자리에서 되살아났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분노로 광장은 매주 촛불로 타올랐다. 민중의 힘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가결안을 이끌어냈다. 촛불은 무너진 국민 주권을 되찾는 미더운 디딤돌로 자리 잡았다.

   
▲ 2016년 11월 12일 열린 제3차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는 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가 모였다. ⓒ JTBC뉴스 화면 갈무리

‘국가 숲’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무너진 국민 주권을 바로 세우는 게 우선이다. 권력을 탐하는 이들을 견제하고 단죄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2000년대 지방자치 영역에서 주민 참여 장치가 제도적으로 뿌리내렸다. 조례 입법 과정에 참여하는 ‘주민발의’와 정책 결정사항을 ‘주민투표’로 부칠 수 있는 제도가 각각 2000년, 2006년 도입됐다. 선출되기만 하면 임기가 보장되는 폐해를 막기 위해 2007년 ‘주민소환제’도 만들어졌다. 언제든 단체장을 주민 손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 주민에게만 적용되는 이 권한들을 국가의 국민에게까지 확대하는 게 촛불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길이다.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에서 보듯 국민발의, 국민투표, 국민소환 제도는 이미 서구 민주주의 국가가 고대 아테네 직접 민주주의에서 본 따 활용하는 제도다. 특히 국민발의, 국민투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유신독재를 실시하기 전 우리 헌법에도 있던 제도다.

강은교는 <숲>이라는 시에서 읊는다.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두 다리로 설 수 없는 세 발 달린 솥을 떠올려 준다. 국민-주권-영토라는 세발이 조화를 이루는 ‘숲’은 어느 한 구성요소라도 쉽게 뽑히지 않도록 각종 제도를 촘촘히 심어줄 때 가능해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정치권은 시간이 없다면서 조기 대선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들은 정작 용도 폐기된 헌법개정, 국민 주권 확보, 재벌 개혁, 사법 기득권 타파 같은 울창한 ‘숲’을 만들기 위한 제도마련에는 뒷짐 지는 모양새다. 또 하나의 제왕적 대통령 만들자는 게 소대한 강추위에도 촛불을 이어가는 민중의 염원은 아닐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장 기각을 보며 보수파의 반동으로 깨진 삼족솥, 대한제국 만민공동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고륜형 기자

[유선희 기자]
단비뉴스 전 취재부장, 환경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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