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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형질로 대동하야지도 그리다
[현장르포] 19일 4차 범국민대회 광화문 광장
2016년 11월 22일 (화) 19:10:26 서창완 기자 seotive@gmail.com

불은 본능에 가깝다. 15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발명한 뒤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인간은 따뜻해졌고, 요리를 했으며, 불을 두려워하는 맹수들을 물리쳤다. 인간은 자연계의 지배자로 올라섰다. 인간의 가슴은 타오르는 불빛을 보면 뜨거워진다. 촛불도 그렇다. 19일 광화문 광장의 촛불은 60만 시민의 가슴을 달궜다. 촛불이 광화문을 밝히는 사이 건너편 청와대의 불은 꺼졌다. 국정을 짓밟던 청와대의 맹수들이 불을 무서워한 탓일까? 불통은 죄 지은 자들이 자신을 가리고 싶을 때 쓰는 술수다. 모르쇠로 일관하면 후안무치(厚顔無恥)해진다. ‘잠이 보약’ 이라는 대통령은 19일도 불통의 ‘보약’을 즐겼을지 모른다..

100만 개의 촛불이 겨냥하는 것, 기득권

   
▲ 11월 19일 광화문 광장에는 60만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 서창완

11월 19일 전국이 촛불로 덮였다. 역사가 진보해왔다고 믿는 시민들에게 피의자 박근혜의 국정농단은 참을 수 없는 분노다. 본능적 저항, 국가가 무너졌다는 자괴감은 역설적으로 국민 대통합을 이뤄냈다. 생존을 위해 횃불을 들었던 인류의 조상은 150만년 만에 정의를 위해 촛불을 드는 후손으로 진화했다. 민주주의와 상식을 외쳤다. ‘박근혜 퇴진’.

오후 6시.

서울 시청역 4번 출구. 진화한 시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일주일전과 다를 바 없다. 계단을 막 오르자 이미 인파는 서울 시의회 옆 거리까지 들어찼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저마다 축제로 승화된 집회 현장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생존이 아닌 정의의 촛불에 이끌려 대열의 뒤에 자리 잡았다. 좌우로 흔들리는 불빛들은 아름다웠다. 무당의 빙의(憑依)에 의존하는 샤머니즘 정부의 심장을 겨누는 촛불에 잠시 숙연해지는 사이 뒤편도 촛불로 가득 찼다. 빛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진실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웃음이었다.

   
▲ 광장 어디에 앉아 있든 사람들은 촛불의 중심이 된다. ⓒ 서창완

획득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자연계의 법칙은 대한민국에서 예외다. 제국주의 독재에 빌붙었던 친일 형질은 반공독재를 거쳐 군사독재로, 다시 문민 독재로 이어졌다. 정상적 자연 생태계에서 지나치게 큰 몸집의 개체는 공룡처럼 도태된다. 하지만, 독재체제 아래서 이런 자연선택설은 힘을 잃는다. 지나치게 크고 강한 재벌만이 정경유착이란 방법으로 독버섯처럼 살아남는다. 친일과 독재, 정경유착으로 적자생존의 토양을 만들어 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촛불을 밝히는 것은 ‘박근혜 게이트’를 빚어낸 바로 그 기득권 구조를 향해서다.

오후 7시 50분.

'대동하야지도’가 그려졌다. 나라를 바꾸겠다는 지도다. 피의자 박근혜의 정치적 고향 대구 2만, 민주화 성지 광주 5만, 부산 10만, 대전 3만... 전국 100만 개의 촛불이 모였다는 말에 시민들은 함성을 외쳤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은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넘쳐흘렀다. 동시에 그 공간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애국의 주인은 시민이다

오후 8시. 

가수 전인권의 ‘애국가’가 광화문에 울려 퍼졌다. 아이러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으로 시작하는 애국의 노래는 국가를 유린한 자들이 즐겨 찾던 노래가 아닌가. 주로 편을 가르는 도구였던 ‘애국’은 정의의 촛불을 두려워하는 청와대 맹수들이 써먹던 궤변이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애국’의 칼로 내리쳤다. 그러면 수많은 ‘빨갱이’와 ‘종북’이 만들어졌다.

전인권의 애국가는 광장에 모인 촛불 시민에게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하고, 부당한 독재에 저항하며, 빼앗긴 나라를 찾겠다고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억울하게 빼앗겼던 ‘애국’을 되찾았다. 지금도 촛불을 종북좌파 세력의 책동이라고 회덧칠하는 비루한 자들에게 무엇이 애국인지 보여줬다.

오후 8시 14분.

행진이 시작됐다. 전인권의 “해엥진 해엥진 하는 거야”라는 노랫말이 신호였다. 앞에서부터 시민들은 파도를 타듯 일어났다. 8방향으로 청와대를 학익진으로 감싸는 대열 중의 하나에 끼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박근혜가 몸통이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청와대로 가 닿길 바라며 사람들은 구호를 외쳤다. 그러면서 내딛는 발길에 힘을 실었다.

   
▲ 다양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서 있는 모습. ⓒ 서창완

오후 8시 43분. 

“촛불이 비바람에 꺼진다고? 김진태 너나 꺼져라.”

오후 9시 18분.

“오십 일 넘게 파업을 하고 있는 철도 노동자분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힘내라고 함성 부탁드립니다.” 

오후 9시 19분.

“비가 와도 박근혜 퇴진, 비가 뿌리고 있지만 멈출 수가 없습니다.” 

종각역과 인사동 9길을 지나 광화문 앞에 도착했다.

오후 9시 38분. 

차벽. “왜 내 눈앞에 나타나. 왜 네가 자꾸 나타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노래가 청와대 400미터 앞에서 울려 퍼졌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둘러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곳곳에 보였다. ‘박근혜 즉각 퇴진’, ‘이게 나라냐’ 등의 스티커가 차벽에 붙고, 사람들은 다시 떼어냈다.

분노는 꺼뜨려도 애국의 불길은 꺼뜨릴 수 없다

   
▲ 하나의 분노가 한 개의 촛불이 되어 모이면 불길이 된다. ⓒ 서창완

비바람 몰아치면 생존을 위한 횃불은 꺼진다. 하지만, 정의를 향해 든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분노는 꺼진다. 하지만, 기억하자. 분노가 꺼졌다고 되찾은 애국이 꺼지지는 않는다. 내 몸 젖어도 행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불을 두려워하는 청와대. 그걸 감싸고도는 건 분노가 아니다. 애국이다. 정의와 양심, 상식이 통하는 민주주의를 되찾자는 애국. 유전되는 획득형질은 독재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일제시대, 1960년 4월, 1980년 5월, 1987년 6월을 거치며 획득한 애국형질이 2016년 11월 이어진다.


편집 : 황두현 기자

[서창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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