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권력

▲ 김평화 기자

단과대 학생회 선거가 논란 속에 몇 달 미뤄지면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새내기 맞이 행사를 앞둔 겨울방학이었기에 새내기맞이기획단(새맞단)도 함께 만들었다. 단과대 내 알력이 있다 보니 제3의 인물이 ‘새맞단장’을 맡았다. 바로 나였다. 식사 메뉴 고르는 자리에서도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책임자 자리라니. 눈앞이 캄캄했지만 이왕 맡은 자리, 오기를 냈다. 두 달여가 지나자 일을 회피하는 동료에겐 단독으로 의견 발표를 시켜 아이디어를 가져오게 하는 등 전형적인 권력자로 변해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몸소 느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예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최근 스폰서 논란을 낳은 김형준 부장검사 사건 역시 ‘부장검사’라는 무소불위 권력이 개인을 집어삼킨 경우다. 한 일간지는 김 부장검사와 그의 친구인 스폰서 O씨를 모두 아는 고교 동창의 진술을 다뤘다. 그 동창은 김 부장검사가 학창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랐으며 학급에서도 조용히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의 주장은 김 부장판사가 스폰서인 김씨에게 속은 것이며 원래 그런 일을 할 친구가 아니라는 의미를 담는다. 조용히 공부만 하던 모범생을 대담한 권력자로 변신시켜 다양한 비위 활동을 일삼게 한 권력이 새삼 무섭게 느껴진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최근 여러 활동에서 주목받는다. 주로 보수 진영에서 추진하는 토목사업을 박 시장이 자처해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와 동시에 서울 지역 고가도로 단계적 철거, 노들섬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9월 초 미국, 캐나다 등 북미 도시를 살피고 오더니 서울 도심의 지하 공간 개발을 들고 나왔다. 지하 공간이 발달한 뉴욕 ‘로우라인’과 몬트리올 ‘언더그라운드 시티’에 영감을 받은 탓이다. 몬트리올에서 태양의 서커스 본사를 찾아 한국판 태양의 서커스를 만들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 모습. 1982년 퀘벡에서 20여 명이 모여 서커스단을 꾸린 것을 시작으로 정부 지원과 함께 전 세계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등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서커스업계가 레드오션이 되면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 구글 이미지

일각에서는 박 시장의 행보와 구상이 대규모 전시행정이라고 꼬집는다. 대선 행보를 위한 발판이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진다. 뒷굽 닳은 신발과 배낭으로 상징되던 그의 모습이 이제 낯설어졌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그가 처음 시장직을 맡았던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은 하나다. 초기엔 서울시장이었다면 이제는 차기 대선 후보를 갈망하는 서울시장인 점. 자리가 달라지는 과정에 박 시장의 모습 역시 변하게 된 것일까?

미국 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권력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의 인격을 보려면 그가 권력을 쥐었을 때를 보아야 한다.” 링컨은 자리보다 사람의 본성에 방점을 찍었다. 링컨의 말대로라면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 인격이 권력을 다듬는 사회를 그려 본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우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