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사드

▲ 박장군 기자

베르사유궁전은 루이 14세의 숙원사업. 재임 기간 중 50년 가까운 세월을 궁전 증축에 쏟아부었다. 베르사유궁전을 왕정 안보의 보루로 여긴 탓이다. 파리 외곽 시골 마을, 베르사유에 있던 사냥용 별장이 초호화 건축물로 다시 태어났다. 웅장한 외관과 사치스런 금빛 실내장식은 귀족과 평민이 넘볼 수 없는 절대왕정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부역에 동원된 민중의 아픔은 살피지 못했다. 왕정을 지키기 위한 화려함의 이면에 17세기 프랑스 민중의 가혹한 희생이 뒤따랐다. 매년 3만여 명이 강제 동원됐고, 사고로 죽은 이들의 시체는 조용히 암매장됐다. 매국노로 몰릴까 두려워 국민은 반기를 드는 대신 눈을 감아버렸다.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이던 근세 국책사업의 이면은 안보문제를 둘러싼 현대 한국 정부의 태도와 오버랩된다.

▲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를 위해 지어진 베르사유 궁전의 엄청난 규모와 웅대한 건축 양식, 내부의 그림과 조각에 사용된 고전 속의 영웅 이미지들, 그리고 광대한 정원은 부유함과 군주제의 절대 권력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 pixabay

정부는 안보 일방통행으로 국민을 몰아붙인다. 사드 배치 결정이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같은 안보정책이 국민 의사와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이뤄진다. 지역 주민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인 흔적이 없다. 함께 논의할 필요 없이 대통령 혼자 끌고 가겠다고 윽박지른다.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을 불온논리로 둔갑시킨다. 이마저도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 자리가 아닌 참모들만 모인 밀실에서 새 나온다. 성주 군민들이 북한 무수단 미사일 모형을 찢고 태우는 장면은 정부의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종북, 불순세력, 사회불안조성자라는 낙인 앞에 끝까지 버틸 이들이 몇이나 될까.

민주적이지 못한 정책 결정 과정이 지탄받는 대신 주민의 정당한 주장은 지역이기주의로 몰려 치도곤당한다. 기막힌 기만전략의 성과다. 출발점은 대통령의 입이다. 사드 제3후보지를 추천하면 검토하겠다는 발언은 성주 주민들에게 주도권을 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안을 받아들인 즉시 논의 맥락은 사드 찬반에서 어느 곳에 배치할 것인지로 넘어가 버린다. “님비는 없다”며 사드 철회를 요구하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다. 제3후보지에 인접한 김천 시민은 사드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한번 정했으면 그대로 가야 한다는 논리에 갇힌다. 폭탄 돌리기로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는 기만전략이 먹혀든 결과다. 정당성, 타당성, 군사적 효율성 문제는 논의 테이블에서 자취를 감췄다.

북한 5차 핵실험으로 다시 한 번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한반도. ‘전쟁할 수 있는 나라’의 준비를 마친 일본과 G2 미·중의 대립 격화는 불안감을 더한다. 사드 배치 논란 같은 상황이 언제 반복될지 모른다. ‘국가 안위와 국민 안전이 달린 문제’라 더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국면에서 루이 14세의 참회가 떠오른다. 죽음이 임박해서 그는 “나처럼 전쟁과 건축에 몰두하지 말고 국민을 편하게 하는 데 힘써라”는 말을 남겼다. 국민은 뒷전인 채 독재자 루이 14세가 국민 희생으로 쌓아 올린 베르사유궁전. 국민은 빠진 채 절대 권력이 오만과 독선으로 밀어붙이는 사드 행진곡. 대한민국 국민은 언제쯤 그 행진에 함께 발을 맞출 수 있을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민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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