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사드’

▲ 강민혜 기자

영화<300>에서 스파르타 전사 3백명은 1백만 페르시아 대군에 맞선다. 누가 봐도 무모한 싸움이지만 역사에 남은 테르모필레 협곡 전투다. 시인 시모니데스는 훗날 전사들의 비문에 이렇게 적는다. ‘지나는 자여, 가서 스파르타인에게 전하라. 우리들 조국의 명을 받아 여기 잠들었노라.’ 진정한 애국심과 명예,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준 전사들은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전투는 참담한 패전의 역사다. 가장 큰 패인은 수적 열세다. 당시 스파르타 사회는 10% 자유시민이 80% 이상의 노예계급을 지배하는 구조였다. 자유시민은 농사에서 면제되고 군사훈련에만 매진했다. 반면 노예계급은 훈련은커녕 무기조차 지급받을 수 없었다. ‘전사’는 일부 특권층에게 한정된 직업이었다. 페르시아 100만 대군에 맞선 스파르타 전사가 300명뿐이었던 이유도 일부를 스파르타에 남겨둔 탓이기도 하지만 전사계급 자체가 소수였기 때문이다. 이는 극단적 양극화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다.

▲ 영화 '300' 스틸컷. 스파르타 자유시민의 유일한 소임은 국가를 보위하는 일이었다. ⓒ 다음 영화

스파르타를 보면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이 팽배한 한국이 떠오른다.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하는 나라로 그 비율이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8명이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했다.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특히 소득 불평등에 따른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각종 조사 결과들은 중산층의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산층의 몰락은 국가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더 큰 문제는 청년세대의 가난이다. 최근 30년간 20~30대 청년세대의 가계소득 증가율이 다른 연령대에 견주어 현저히 감소했다고 한다. 한국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바 있다. 부모의 후광으로 취업한다는 현대판 음서제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시대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마저 사라진 마당에 청년들의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청년들의 ‘헬조선’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을까?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소득불평등 해소는 임금인상에 따른 가계소득 증가가 중요한 열쇠다. 미국과 영국 등 세계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시간당 6030원인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OECD 국가 중 중하위권에 속한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스파르타 상위 10% ‘금수저’의 전투였다. 고도의 훈련을 받았다지만 300명만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이어진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른 것은 아테네 병사들이다. 그들 중에는 농부도 있고, 대장장이도 있었다. 아테네는 ‘솔론의 개혁’을 통해 노예에게도 시민권을 개방한 상태였다. 페르시아의 대군을 물리친 건 ‘소수 엘리트 전사’가 아니라 계층의 양극화를 허문 ‘민주사회의 병사’였다.

정부가 사드 도입을 발표했다. 민생은 염두에 두지 않고 미사일을 뻥뻥 쏘는 북한이나 그것을 막는 데 실효성도 별로 없는 사드를 성주에 배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남한이나 민주주의 체제와는 거리가 멀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의 대안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국민을 윽박질렀다. 진정한 안보는 민생 안정과 양극화 해소, 민주적 정책 결정, 외교 강화에 달렸지만, 남북의 최고권력자는 최하수인 군비경쟁에 몰입하고 있다. 사드의 대안은 민주주의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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