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나’

▲ 신혜연 기자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유독 많이 남겼다. 69년 생애에 100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다. 그는 젊은 시절 초상화가로 명성을 날리며 부자가 됐지만, 자신만의 화풍을 시도하면서 인기를 잃었다. 사람들이 바라는 그림은 가장 멋진 자기 모습을 담은 초상화였다. 화가의 독특한 시각이 그림에 담겼는지는 안중에 없었다. 고객이 하나둘 떨어져나가자 그가 말년에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은 자신뿐이었다. 빵 살 돈조차 없는 궁핍한 살림이었지만, 그는 자기 화풍을 꺾지 않고 그림을 완성해갔다. 쉰 살에 파산 선고를 받은 렘브란트는 10년을 더 살다가 임종하는 사람도 없이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 <베레모와 옷깃을 세운 자화상> (1659). 53세의 렘브란트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 pixabay

“저인지 못 알아봐도 좋으니 예쁘게 보정해주세요.” 취업용 증명사진 속 나는 평소 내 것이 아닌 완벽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력서라는 캔버스에 담긴 내 모습은 현대판 자화상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려진 ‘그림 속 나’는 잔뜩 분을 칠했다. 못난 부분은 빼고, 조금 봐줄만한 부분은 부각시킨다. 자기소개서에 따르면 나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난관을 훌륭하게 극복해냈고, 창의력이 넘치며 리더십까지 갖춘 인재다. 다른 경쟁자들에게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붓을 든 손이 떨린다. 원서 마감 날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물감을 덧칠한다.

한국 사회의 자화상은 갈수록 요란해진다. 경쟁심리가 이를 부추긴다. “기죽지 말라”는 말을 주문처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영웅서사’에 빠져든다. 사람들은 누구나 영화 속 영웅에 자신을 투사한다. 자신만은 역경을 이겨내고 영웅이 될 거라고 굳게 믿는다. 자의식 과잉은 다시 나에 대한 집착을 키운다. ‘주체’를 세우면 필연적으로 주체에 대항하는 ‘객체’가 양산된다. ‘나’를 강조하는 순간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강화되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 한국에서 시비가 걸릴 때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다. 한국인은 다 제 잘난 맛에 산다. 우리의 자화상은 “내가 더 잘났다”고 외치는 선전광고다.

치장한 자화상 안에 진짜 내 모습은 없다. 남과 비교하며 경쟁하듯 찍어낸 내 얼굴은 남의 얼굴만큼 낯설다. 자화상 속 모습은 다들 갈수록 세련되는데, 정작 사람들은 행복과 점점 멀어진다. 한국보다 행복지수가 40단계는 높은 덴마크 같은 북유럽국들이 공유하는 원칙 중에 ‘얀테의 법칙’이 있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무도 당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가 포함된 10가지 법칙이다. ‘나’를 강조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게 자화상을 멋지게 완성하는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렘브란트의 전성기는 파산 선고 이후에 왔다. 바로크 시대 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그조차도 부와 명성을 버린 끝에 온전한 자화상을 그려낼 수 있었다. 미국의 한 정치인은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걸린 렘브란트의 53세 때 자화상을 보러 간다고 한다. 53세의 렘브란트는 젊은 시절에 그려진 초상화 속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누추한 모습이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고 당당하다. 렘브란트가 ‘빛의 화가’로 기억될 수 있는 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화려한 초상화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8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1학년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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