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정체성’

▲ 박진우 기자

97년 외환위기 이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상위 10%의 소득을 하위 10%의 소득으로 나눈 10분위 배율은 해마다 오르고 있다. 굳이 양극화 수치를 들지 않아도 하늘의 별 따기인 취업 현실과 수십 년 간 월급을 모아도 지상에 내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든 부동산 가격 상승을 생각하면 얼마나 살기 힘든 세상인지 실감한다. 가히 ‘헬조선’ 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전국민의 소득분위가 뒤집어져 있다면? 예컨대 골프장 회원권과 구직활동증명서의 주인이 바뀐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과연 가난했던 사람들은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양극화 해소에 앞장설까? 얼마간 통쾌하긴 하겠지만 결론은 회의적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경쟁에 중독됐다. 모든 사고의 밑바닥에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한다. 남들보다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게 인생의 목표다. 그러나 ‘좋은 것’의 기준이 ‘남들’이기에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 작동한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연예인 김정은씨가 나와 감동스럽게 외친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는 무식한 소리다. 경제적 관점에서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령 되더라도 가난한 사람, 즉 비교 대상이 없어지면 행복도 없다. “거기 당신, 너만 부자 되세요”라고 하는 게 오히려 현실적이다.

▲ 경쟁주의 사회에서는 결혼도 경쟁이다. ⓒ pixabay

결혼도 경쟁이다. 양극화로 혼인율도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바탕에는 남자의 신혼 집과 여자의 혼수를 교환하는 관행이 전제되어 있다. 신혼 부부의 새 출발을 지원하는 선의의 목적은 뒷전이고 이제는 ‘어련히 해오겠지’를 넘어 ‘안 해오면 싸움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아가 ‘스드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합친 말) 상술에 알고도 속아 넘어가고 굳이 ‘비수기’의 호화 결혼식장을 예약한다. 결혼식 당일에는 거의 1 시간 단위로 신혼 부부가 생산돼 마치 고도화한 ‘결혼혁명’이라도 보는 것 같다. 그 밖에 안 친한데 답례로 온 사람, 사진도 안 찍고 밥만 먹고 가는 사람, 꽃 값은 지불했으니 꽃이라도 들고 가는 사람 등 이미 한국의 결혼 문화는 정상에서 한참 벗어났다. ‘일생에 한 번’ 그리고 ‘남들 다 하는데’ 라는 말에 속아 ‘일생에 한 번 하는 결혼식 남들 다 하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휴전협정을 맺기도 한다. ‘클론 패션’ 이다. 복제라는 뜻의 ‘클론’에 ‘패션’이 결합한 신조어로, 똑같은 종류의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 등을 착용하는 것을 말한다. 고등학생들이 교복처럼 입는 ‘노스페이스 패딩’이 대표적인 예다. 처음 인터넷에서 ‘클론’들을 봤을 때는 단순히 ‘저렇게 길에서 우연히 같은 옷을 보면 좀 민망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한 학생은 오히려 평범한 게 괜찮아 보여서 더 손이 간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패션이 ‘시각 정체성’(Visual Identity)이라면 패션 클론들은 정체성 경쟁에 지쳐 탈진한 것이다.

과도한 경쟁의 원인은 교육 환경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다이어그램에서 최상위 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인데 한국 교육과정에서는 자아를 찾기 힘들다. 중학교 도덕 시간에 처음 접하는 ‘기호’ ‘자아정체성’ 따위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다 까먹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우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 생각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경쟁을 조장하고 패배에 대한 책임을 학생에게 떠넘기는 유기 행위다. 진정 학생을 생각한다면 경쟁에서 벗어나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줘야 한다.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는 말은 헛소리다. 경쟁 사회에서 목표가 하나라면 낙오자는 반드시 생긴다.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개인주의가 필요하다. 그 놈의 ‘정’ 때문에 비리가 넘쳐나고 절차는 무시된다. 잘 사는 놈 주변만 잘 살게 되는 ‘정’을 버릴 때 모두 조금씩 잘 살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얼렁뚱땅 넘어간 것들이 중요한 순간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기도 한다. 각자 자신이 선택한 공동체에서 욕심부리지 말고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자유를 누리는 것이 돈 없이 행복해지는 길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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