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몸’

▲ 이성훈 기자

'시민의 몸'은 한 사회의 가치체계를 반영하는 척도이다. 한 국가의 구성원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 신체 자유를 구속당하는가? 그 사회의 시민은 생존권, 표현의 자유, 주거권, 이동권 등 육체적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는가? 몸의 자유를 구속할 권리는 오직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에게 주어진다. 따라서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우리는 한 사회 구성원의 몸에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몸의 자유'는 처음에는 노골적으로 파괴당했다. 고대∙중세시절 권력에 저항한 자들은 공개처형, 신체절단, 유배 등의 처벌을 받았다. 게다가 형 집행 전까지 광장, 시장, 거리 등 개방된 장소에 전시돼 군중 앞에서 멸시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몸의 자유’는 점차 은밀하게 공격당했다. 수많은 시민운동가, 양심수들이 은폐된 장소에 끌려가 고문, 구타, 감금을 당했다. 고문당했던 지식인들이 이제는 국회의원, 교수 등 여론주도자가 되어 당시의 참혹함을 증언하기도 한다. 얼핏 보면 예전보다는 신체적 자유가 커진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육체 자유의 확장이 아니다. 푸코의 말을 빌리면 그저 몸을 억압하는 방식이 변화한 것뿐이다. 21세기 들어 시민의 몸은 교묘한 새 방식으로 통제당하고 있다.

흔히 ‘87년 개헌’으로 법치-민주주의의 형태는 완성됐다고들 한다. 하지만 오히려 법을 수단으로 한 지배가 강화됐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시위, 언론보도 등 공적 참여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강화됐다. 이명박 정부는 밀실 FTA, 용산참사, 쌍용차노조 진압 등 시민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정을 추진했고, 비판하는 시민단체들을 향해 ‘법대로 합시다’라며 ‘명예훼손죄’ 또는 ‘집시법’으로 고발했다. 박근혜 정부도 세월호 사건, 노동법개정안, 위안부 협상 등을 비판하는 언론인, 시민단체에 소송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이 벌금 또는 징역형을 받거나 장기간 법정공방에 휘말렸다. 예나 지금이나 표현의 자유를 누리려면 ‘몸의 자유’를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 표현의 자유는 헌법 제22조에 명시된 국민 기본권이다. 벤저민 타도조 미국 전 대법원장은 "표현의 자유는 다른 모든 형태의 자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며 기반"이라고 말했다. ⓒ flickr

처벌의 형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벌금형이든 징역 또는 장기 소송전이든 약자들은 그 비용을 ‘몸’으로 치러야 한다. 집시법 위반으로 과태료 100만 원을 부과받은 대학생은 시급 6천 원짜리 편의점에 나갈 경우 160시간 ‘감금’되고, 대통령 비방전단을 뿌린 시민운동가는 정밀수사를 명목으로 구치소에 8개월 ‘수감’되는 식이다. 이와 같은 보복성 소송, 경고성 벌금형 등의 공적 보복은 궁극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킨다. ‘비판하면 몸이 고달플 것’이라는 메시지가 반복 주입되면서 사회적 참견을 의무로 삼는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은 물론이고 풀뿌리 시민도 사회참여를 주저하는 것이다. 정치학자 토크빌은 ‘일상적 자유에 대한 공격이 거대한 자유의 박탈보다 두렵다’고 했다. 감시와 처벌이 일상화하여 ‘유순한 시민’이 길러지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공적 참여를 보장할 방안은 무엇일까? 일찍이 서구 국가들은 공적 보복으로부터 '시민의 몸'을 보호하고자 다양한 법적 장치를 마련해두었다. 독일은 200년 전부터 공익을 위한 제보자의 신원을 법무부가 보장하는 ‘방패법’을 운영한다. 미국은 공적 참여에 대한 보복성 소송과 행정처벌의 부담을 덜어주는 ‘전략적 소송 방지법’을 두어 시민의 공적 참여를 보장한다.

심대한 신체적 처벌을 감수하고 사회참여를 하는 사람을 ‘지사(志士)’라고 한다. ‘지사’의 등장은 바람직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지사’가 대거 나와야 하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시민이 ‘지사’가 될 각오를 하지 않고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합의가 시급하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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