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⑪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해선 안 될 일이다. 한국은행 본연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최근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자본확충펀드에 10조원을 대출하기로 한 데 대해 원로경제학자인 조순(88) 서울대 명예교수가 정면으로 비판했다.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조 명예교수는 7일 SBSCNBC의 <제정임의문답쇼,힘>에 출연해 "한국은행의 임무는 물가안정과 자본시장안정을 책임지는 것"이라며 조선·해운 등 특정분야 대기업 구제를 위해 조성되는 펀드에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또 "구조조정은 기업들이 스스로 하도록 맡겨야한다"며 "정부가 자꾸 (구제하는 방향으로) 개입하지 말고 문제의 근본을 수술하는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덧붙였다.

▲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대기업 구제를 위해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것은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 SBSCNBC

대기업 자생 맡기고 중소기업을 ‘난초 돌보듯’ 육성해야 
 

조 명예교수는 특히 정부의 경제정책이 수출 중심의 대기업을 편중 지원하는 기조에서 벗어나 중소기업과 내수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현재 우리 경제가 ‘저성장, 저소비, 저물가, 저금리, 고부채’로 특징지어지는 ‘뉴노멀(new normal) 상태’에 있다고 진단하고 해외수요 감소로 인한 '수입 불황'은 어쩔 수 없으나 중소기업과 내수산업을 홀대해서 생겨난 ‘국산 불황’은 정책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은 스스로의 힘으로 경쟁하도록 놔두고, 중소기업은 ‘난초를 기르는 정성’으로 적극 육성하는 것이 성장엔진을 되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며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 조순 명예교수가 중소기업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SBSCNBC

브렉시트, 경제 불확실성 커졌지만 큰 걱정할 필요는 없어

조 명예교수는 브렉시트, 즉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과 관련해서는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단기적으로 국내외 금융시장 등에 충격이 있겠지만 장기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입장을 보였다. 그는 “영국은 자원, 기술, 정치안정 등 경제발전의 3요소를 고루 갖춘 나라이므로 결국은 잘 헤쳐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명예교수는 그러나 브렉시트에 영향을 미친 반(反)이민과 보호무역주의 정서가 미국 대선 공화당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열풍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 브렉시트로 단기적으로는 국내외 경제에 충격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조순 명예교수. ⓒ SBSCNBC

한나라당 초대 총재와 15대 국회의원도 지냈던 조 명예교수는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불거진 개헌 논의에 대해 “내각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가 ‘대의제’와 같은 말이라고 할 때, 대의제와 가장 잘 호응하는 제도는 내각책임제”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이원집정부제(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 형태)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조 명예교수는 “내년 대선에 출마할 후보들은 자신의 임기 중에 개헌하겠다는 공약을 걸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1995년 시민이 직접 뽑는 1기 서울시장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던 조 명예교수는 취임하자마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수습하고 당산철교 재시공을 추진했던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당산철교의 붕괴위험이 커지고 있는데도 (비용 문제로) 임기응변 수리만 하고 언론도 전면 재시공에 반대했다”며 “거센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지진이 나도 끄떡없을 정도로 다시 지어 시민 안전을 지킨 것이 시장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학 초석 놓은 학자, ‘나이 들수록 나아졌다’ 평가 듣고파 

조 명예교수는 한국 현대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학자로 평가된다. 192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그는 육군사관학교 영어교관 등을 거쳐 30세의 나이에 무일푼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약 10년 만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돌아왔다. 정운찬,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그의 제자들은 정관계와 학계 등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조 명예교수가 40여 년 전에 쓴 <경제학원론>은 ‘최초의 국산 경제학교과서’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후 제자들이 공동저자로 참여해 지금까지 개정판이 나오고 있다. 조 명예교수는 이날 방송에서 “2015년 완성한 논문 ‘자본주의 경제의 지속발전을 위한 경제운영의 원리’를 풀어서 ‘자본주의의 시련과 한국의 진로(가제)’라는 책을 올해 말 출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후대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하는 질문에 “젊었을 때 괜찮다가 나이 들어 노욕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나이 들면서 조금씩 나아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 아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나이 들면서 조금씩 나아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한 조순 명예교수. ⓒ SBSCNBC

경제방송 SBSCNBC가 지난 3월 24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을 신설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부터 50분간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주요 방송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 전체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810724

 

편집 : 이명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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