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지키실 줄은 몰랐어요. 저를 집에 들이시기로 한 결정 말이에요. 한 동물단체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될 날만 기다리던 저를 발견했죠. 대통령이 되면 저를 입양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하시던 날이 기억나요. 저에게 쏟아진 관심은 놀라웠습니다. ‘퍼스트 도그’라나요. 천만 애견인 시대 ‘동물권 신장’이란 상징성을 등에 업고, 저는 당당하게 청와대에 입성했습니다. 넓은 앞마당을 뛰어다니는 일도, 맛있는 사료를 매끼 꼬박꼬박 먹을 수 있는 것도 믿기지 않아요. 비좁은 철망 안에서 지내던 과거 일은 빛 바란 흑백사진처럼 아득하게 느껴
편집 : 임형준 기자
“선원들이 언제든 죽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이지만, 선장은 신경 쓰지 않는다. 바다에 내다 버리면 그만이니까.” (생존 노예의 증언)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3000킬로미터(km)가량 떨어진 외딴 섬 벤지나(Benjina). 2015년 3월 미국 통신사 <에이피(AP)>가 ‘수산업 노예’의 실상을 보도하기 전까지 이곳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었다. 수천 명 노예가 철창에 갇혀 지내며 강제노동에 시달리거나 무덤에 묻혔지만, 바깥세상에서는 알 길이 없었다. 2014년 11월 이곳을 찾은 <
편집 : 남지현 기자
화창한 봄날, 아직 발길을 정하지 못한 이들이라면 동네 책방길 산책은 어떨까? 서울시가 지난 16일, 개성 있는 동네 책방을 고루 즐길 수 있는 ‘서울 책방길 11선’을 선보였다. 서울 시민들이 직접 짠 책방길은 △망원 △홍대앞 △연남 △이대앞 △경복궁 △해방촌 △이태원 △종로 △혜화 △강남 등 11곳이다. 지역 놀이터 같은 ‘망원 책방길’, 인디 문화의 발상지 홍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홍대 앞 책방길’, 가장 오래된 서점부터 가장 트랜디한 서점까지 다양한 책방의 면모를 체험할 수 있는 ‘경복궁 책방길’ 등이 눈길을 끈다. 이
서울 전자‧전기 산업의 메카 세운상가가 새 옷을 갈아입는다. 1971년 준공된 주상복합단지 세운상가는 ‘우주선도 만들어낸다’는 소문이 돌 만큼 능력 있는 장인들이 자리 잡은 터전이다. 1990년대 이후 재개발 논란 속에 방치되며 퇴락해가던 세운상가. 서울시가 지난해 2월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세운상가 살리기에 돌입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스타트업 기업들을 지원하고, 세운상가 활성화 아이디어 사업 공모전을 펼치며 도시재생사업에 나서 활력을 되찾았다.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세운상가에서는 그동안 재생사업 성과를 발표하는
“저널리스트는 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기왕이면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죠.”<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 이창곤 <한겨레> 선임기자는 복지 관련 책을 4권이나 쓴 복지전문가다. 대학에서 복지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복지부 출입 기자도 아니었다. 이 선임기자는 “기자의 역할을 고민하다 보니 복지전문가가 돼 있었다”고 털어놨다.‘더 좋은 사회’ 고민이 복지전문가로 이끌
김소란, 김순악, 박영심, 문옥주, 배봉기, 김복동, 김옥주, 송신도, 박옥련, 하상숙. 80여 년 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죽음보다 아픈 세월을 모질게 견뎌내야 했던 여성들이다. 부끄럽게도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의 일부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함께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이하 <‘위안부’ 이야기>)>를 펴냈다. 앞서 언급한 ‘위안부’ 피해자 10명의 증언과 사료를 토대로 ‘위안부’ 문제를 구조적으로 파헤친 성과다. 끌려갈 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식민지 미국의 젊은 변호사 패트릭 헨리가 조국 독립을 위해 칼을 뽑으며 내뱉은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인류의 자유를 향한 갈망은 본능이다. 루이 16세의 목을 베고 공화정을 세운 프랑스 혁명의 가치는 ‘자유, 평등, 박애’였고, 20세기 전 세계를 휩쓸었던 68혁명 물결은 인종차별과 성차별, 무의미한 전쟁으로부터 자유를 외쳤다.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나를 파괴할 자유’를 주장하기도 했다. 마약 복용을 일삼다 생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3학년 황운중(22) 씨는 지난 17일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부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왜 전화했는지 알지?”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감이 잡혔다. 시흥캠퍼스 이전에 반대하는 점거농성 가담 학생들에게 학교 측이 징계를 검토한다는 소문이 돌던 때였다. “징계자 명단에 네가 있더라. 너는 사건 주동자가 아니니 면담을 통해 풀어보자”는 제안이었다.이후로도 황 씨에게 학교로부터 세 차례 더 연락이 왔다. 지도교수는 물론 과 전문위원들로부터 카톡, 문자를 통한 개별 연락이었다. “징계 대상 학생들과 공동으로
연중 가장 춥다는 소한 추위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였다. 시민들의 옷차림도 이전 집회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반대로 시민 표정에는 어둠이 짙게 배었다. 참사 1000일을 맞았지만, 아직 선체는 물론 진실마저 캄캄한 바닷속에서 떠오를 줄 몰라서일까. 지난 7일, 광화문 광장의 2017년 새해 첫 촛불집회는 세월호에 책임 있는 권력과 위선은 내려오고 진실은 떠오르게 하자는 시민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후 5시행사 시작 전부터 세월호 천막이 자리한 광화문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세종문화회관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水能載舟 亦能覆舟, <정관정요>).” 민심의 풍랑이 청와대를 덮쳤다. 지난 9일 국회에서 대통령탄핵안이 가결됐다. 주말 촛불집회에서 200만을 훌쩍 넘는 국민이 “하야하라”는 외침을 보낸 덕분이다.민심에 불을 댕긴 건 언론이다. <한겨레> <조선일보> 등 종이신문부터 등 종편방송까지 합심해 몇 달 전만 해도 40%대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하던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1974년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집요한 취재로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켰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방불케
“청년 실업, ‘헬조선’, 경기 침체….” 깜깜한 무대 위로 뉴스 보도 음성이 배경처럼 깔린다. 우울한 단어가 한참 귓전을 때리고 나서 무대가 밝아진다. 이어 젊은 배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판소리 가락.“일제 강점기의 경성, 대한민국의 서울. 부르는 이름도, 시대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었으니. 자신들의 나라를 여전히 ‘조선’이라 부르는 것이며, 아늑한 가정에서 떨어져 나와 좁은 방에 기대어 살아가는 고된 청춘들이 많다는 점이다.” ‘헬조선’ 청년, 역사에 비춰볼까지난 29일 저녁 5시, 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은 나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가톨릭대 제 강의는 화요일만이므로, 그 외 날이라면 내가 스쿨 견학도 겸해서 세명대로 갈까요?”인터뷰 요청을 하자 흔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젊은 예비 저널리스트들을 만나고 싶다는 그의 말이 진심으로 들렸다. 17일,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을 방문했다. 이봉수 교수의 <언론과 한국사회> 강좌 중 ‘언론의 독립과 자유, 책임’이라는 주제에 맞춰 강의 앞부분 잠시 강단에 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언론인은 20여 명 청년 저널리스들과 스스럼없이 대화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선비 허생은 전국의 물자 유통망을 독점해 부자가 된다. 허생은 당시 천하게 여겨지던 상업, 정확히는 유통업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제사용품, 말총 등을 매점해 당시 최대 상업 중심지인 안동 시장에서 팔았다. 사람들은 허생이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르고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오늘날 페이스북, 구글이 하는 일과 같다. 허생은 말총과 제사용품을 직접 만들지 않았지만, 이를 운반하는 유통과정을 장악함으로써 돈을 벌었다. 오늘날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 역시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 정보 유통
“내가 여기 일일 사장님이야.” 충청북도 제천시 공영주차장에서 일하는 일흔 살 할아버지는 자신을 ‘사장님’이라 소개한다. 30분에 300원 주차 비용을 받아 날마다 자신을 고용한 하청업체에게 일종의 ‘사납금’을 지불하고 남은 금액을 수입으로 챙긴다. 정해진 출근 시간도, 퇴근시간도 없지만 아침 9시부터 시에서 주차요금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저녁 8시까지 하루 11시간 씩, 주6일 일한다. 그래야만 ‘사납금’을 내고 월 120만원 정도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핵심은 독특한 계약 관계에 있
19일,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사실상 끝났다(일부 상임위는 21일까지 국감 일정 진행). 20대 국회 첫 국감 성적표는 낙제다. 시민단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F’ 학점을 매겼다. 15대 국회부터 국감을 모니터링해온 시민단체 모임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은 지난 7일 이번 국감에 대해 '역대 최악의 국감'이라고 깎아내렸다. 애초 국감 일정은 9월 26일부터 10월 15일까지 20일간 잡혔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에 대한 항의표시로 새누리당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반쪽 국감'으로 쪼그라들었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