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⑩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

경제학자인 정갑영(65) 전 연세대 총장은 조선·해운 등 대형 부실기업의 구조조정과 관련, “한국은행이냐 정부냐 자금조달 책임을 먼저 따지는 것은 논의의 순서가 틀렸다”고 비판했다. 정 전 총장은 26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할 것이며 기업주 경영진 노조 등 책임 당사자들의 고통분담은 어떻게 할 것인지 먼저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한국형 양적완화’로 표현한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보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서 구조조정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원칙에 맞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전 총장은 또 우리나라가 산업화, 민주화에 이어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적자본과 물적자본 외에 ‘신뢰’ 등 사회적자본을 축적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날 방송의 주요 내용.

▲ 26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한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 ⓒ SBSCNBC

지난 1월 총장 퇴임 후 평교수로 신입생 경제 강의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제정임의 문답쇼 힘. 오늘은 대중의 눈높이에서 경제교육에 앞장서 온 대표적 경제학자시죠,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 모셨습니다. 총장님은 2012년부터 4년 동안 연세대 총장으로 일하셨고요, 지난 1월 퇴임하셨죠? 퇴임 이후 어떻게 지내셨어요?

정갑영(前 연세대 총장): 많이 바빠졌어요. 우선 제 재임 기간 동안 (인천) 송도 캠퍼스에 1학년 학생들 제가 다 보냈어요. 기숙형 캠퍼스(Residential College) 프로그램을 했는데, 제가 시간이 나는 대로 거기를 자주 가봐야 되는데 그동안 그러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선은 제가 송도 강의를 맡겠다고 자원해서 1학년 경제학 입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강의 방식을 조금 새롭게 하느라고 여러 가지 내용을 녹화해서 동영상을 한 23시간쯤 녹화했고요. 또 기존에도 제가 경제학 내용을 쉽게 보급하는 일에 많이 노력을 했었는데, 케이무크(K-MOOC)라고 전 국민 대상 온라인 강의에 경제학 첫걸음 강좌를 올리기도 했어요.

: 아까 잠깐 언급하셨습니다만, 독특한 방식으로 강의를 하신다고 소문이 났어요. 수강생이 미리 동영상을 보고, 수업시간에는 다른 것을 한다고 그러던데요.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 제 강의 방식은 하버드 대학 교수가 처음 도입했던 건데, 우리말로 한다면 거꾸로 수업(Flipped Learning)입니다. 기존의 전통적 강의는 교수중심이거든요. 교수가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우리 대학 사정으로는 질의응답 이런 게 거의 없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교수가 강의실에서 직접 전달하는 지식과 정보는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제가 강의할 내용을 미리 녹화를 해서 온라인에 올려놓습니다. 학생들은 수업 전에 그 강의를 보고 반드시 숙제를 제출해야 합니다, 온라인으로. 그럼 저는 수업시간에 가서 숙제 중심으로 토론만 합니다. 기존에는 학생들이 조용히 앉아 있다가 중간고사 기말고사 보면 그 코스가 끝났는데 지금은 그렇게 갈 수가 없죠.

: 예전에는 교수님이 해주신 얘기를 잘 암기해서 답안을 썼다면, 지금은 자기 생각이 있어야 수업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겠네요.

: 그렇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되죠. 그러고 이번 강의가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 학생들을 위한 강의니까 이걸 조금 수정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케이무크에 올려놨어요. 제가 강의하는 내용을 누구라도 수강료 전혀 없이 클릭하고 들어가면 들을 수가 있습니다.

▲ 거꾸로 수업(Flipped Learning)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정 전 총장. ⓒ SBSCNBC

: 총장님은 재임시절에 백양로 재창조 사업을 포함해서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힘 있게 추진하셨다는 평가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 일들 중 가장 보람 있고 자부심이 느껴지는 일로 뭘 꼽으시겠어요?

: 저희 대학이 작년에 130주년이었어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야된다는 차원에서 제일 크게 한 사업이 송도에 1학년 학생들 다 보낸 겁니다. 반대가 참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한발자국도 안 나가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전 세계 30개 사립 명문대학을 분석해 보니까 공통점이 기숙형 캠퍼스 운영을 하는 거예요. 24시간 살면서 전인교육을 하고 교수님도 거기서 같이 사는 거죠.

: 공부뿐만 아니라 생활도 같이 하면서 배운다는 거죠.

: 네, 우리 보통사람들도 여행을 같이 다니면 금방 모든 걸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게 제일 큰 사업이었고, 지금은 5천2백 여 명 학생들 모두가 만족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사업은 신촌 캠퍼스에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를 했는데 지상, 지하 합해서 약 3만8천 평 정도 돼요. 거기에 주차장, 문화시설, 교육연구공간을 만들었는데 아마 서울에서 명소의 하나일 겁니다. 공원처럼 돼 있고요.

국민이 경제를 제대로 알아야 올바른 정책 추진 가능

: 대중들에게 경제학을 굉장히 쉽게, 재미나게 얘기하시는 경제학자로 유명합니다. 신문 칼럼도 쓰셨고 방송도 한동안 하셨죠. 심지어는 어린이 만화까지 내셔서 베스트셀러가 됐고요. 그렇게 대중을 향한 경제교육에 열정과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 우리 경제가 1997년에 외환위기를 맞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2008년에 시작됐잖아요. 저는 우리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이해수준이 높았더라면 97년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경제는 결국 정부가 어떤 정책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부가 선택하는 정책은 국민 여론에 의해 영향을 받거든요. 국민 여론은 바로 경제에 대한 이해수준에서 결정되고요. 그런데 경제학이 어렵기도 하고 요즘에는 경제학 전공하러 오는 아이들도 고등학교에서 경제를 선택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능에서 점수가 불리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외환위기 직후에 제가 어느 신문사에 직접 전화를 걸었어요. 내가 칼럼하나 쓸 텐데 일주일에 한 번씩 쓰겠다, 그리고 굉장히 쉽게 쓸 테니까 지면을 좀 달라. 그 대신 한 두 달 연재해보고 인기 없으면 그만두자. 그리고 맨 처음 쓴 칼럼이 ‘첫사랑의 경제학’이었습니다.

▲ 국민의 경제 이해도가 높아야 하는 이유에 대에 설명하고 있는 정 전 총장. ⓒ SBSCNBC

: 아, 그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설명한 그 유명한 칼럼이군요.

: 네. 사람들이 대개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오랫동안 갖고 있잖아요. 첫사랑에 모두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잠깐 스쳐지나갈 수도 있고 혼자 짝사랑으로 끝날 수도 있는데 그걸 오래 기억하는 것은 처음 느낀 감정이기 때문이죠. 처음 느끼는 감정은 강렬하죠. 그걸 경제학 전문용어로 한계효용이라고 부릅니다. 등산을 갔을 때 아주 목마른 상태에서 콜라 한 잔을 먹을 때 그때 한계효용이 엄청나게 크죠. 그렇기 때문에 세상 재화들의 가치는 한계효용이 결정합니다.

: 너무 목말랐을 때 처음 마시는 콜라 한 잔, 그건 굉장히 효용이 크지만 이미 갈증이 해소된 후에 마시는 콜라 한 잔, 그건 큰 가치가 없는 거죠.

: 그렇죠. 그러니까 등산할 때 산꼭대기에서 파는 콜라가 비쌀 수밖에 없죠.

아이의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4+9’교육

: 내 인생의 키워드, 첫 번째로 4 더하기 9를 꼽아주셨는데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 저는 이 얘기에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라는 경제학자가 있어요. 이 사람은 거의 천재였습니다. 8살 때까지 라틴어와 대학 수준의 많은 학문을 섭렵한 사람이죠. 그런데 덧셈을 못했어요. 4 더하기 9를 2라고 썼습니다.

: 왠지 마음에 드는데요, 수학을 못했다고 하니까.(웃음)

: 그런데 아버지가 제임스 밀이라는 철학자였는데 아들이 학교에서 그것 때문에 왕따가 되니까 스트레스가 많았겠죠.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 밀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산책을 했어요. 그리고 아들에게 물었어요. “너 덧셈 때문에 학교에서 얼마나 고생하느냐, 그런데 너는 왜 4더하기 9가 2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니까 아들이 “아버지, 나하고 아버지하고 걸어가면 두 사람 아닙니까. 작은 나무하고 큰 나무하고 합하면 둘 아닙니까. 4하고 9하고 더하면 둘이지 그게 뭐가 틀렸습니까” 하는 거예요. 그 다음 아버지 제임스 밀의 말이 존 스튜어트 밀의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너 천재다. 네 말이 옳다. 그런데 세상에는 너 같은 천재만 사는 게 아니다. 보통사람들이 산다. 보통사람들이 너하고 나하고 걸어가면 얼마나 차이가 나고 저 나무와 큰 나무와 비교해보면 그게 얼마나 다른가를 비교하기 위해 규칙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십진법의 원리를 며칠을 두고 가르친 거예요. 존 스튜어트 밀이 그때부터 수학도 천재가 된 거예요. 그런데 저 자신을 포함해서 이 일화를 들으시는 시청자 분들도 아이가 4 더하기 9를 2라고 썼으면 천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가 가진 재능, 그 재능을 표현하는 방법을 부모가 개방적으로 포용하면서 잠재력을 실현시킨 가장 좋은 사례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뒤부터 모든 학생들을 대할 때, 뭔가 잘못 가고 있으면 그 원인이 뭔지 알아보려 하고, 얘가 생각하는데도 분명히 논리가 있을 텐데 그걸 이해해 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존 스튜어트 밀과 아버지의 대화를 설명하고 있는 정 전 총장. ⓒ SBSCNBC

: 교육자가 교육을 받는 당사자 입장에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헤아리는 마음,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정말 위대한 인물 뒤에는 위대한 부모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 총장님은 자녀교육을 어떻게 시키셨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자제분들이 생명공학자로, 또 장애인 의료로봇 전문가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 뭐 특별한 건 없고요. 저희 집에는 딸만 셋이 있는데, 큰 아이는 생명공학 해서 미국 좋은 대학에 교수로 가 있고, 둘째는 회사 다니다가 다음 달에 출산 준비하느라 요즘 쉬고 있고, 셋째는 로봇공학을 전공했는데 최근에 장애인이 입을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해서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했어요. 저는 아이들하고 얘기할 때 '부모가 항상 너하고 같이 있다', 그런 느낌을 많이 주는 교육을 했어요. 저희가 떨어져 있는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는 편지도 자주 썼고요. 저희 아이들도 여러 가지 고비가 많았어요. 그 중 둘은 재수하느라 고생도 많이 했고 중간에 전공도 바꿨고. 그럴 때마다 이해해주고, 누군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얘기해 줬죠. 너는 잠재력이 대단히 크고, 잠재력만 제대로 발휘하면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의식을 계속 심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험거부한 뒤 장학금 자격 상실로 울던 제자

: 두 번째 키워드는 장학금을 꼽아주셨어요.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제가 85년에 처음 교수로 왔는데 당시만 해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시험을 거부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때 경제원론 필수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겨울이었습니다. 거의 백여 명 되는 클래스였는데 보니까 7명만 시험을 봤어요. 그래서 중간고사까지 합해서 100명 중 87명에게 F를 줬습니다. 그랬더니 반민주화 교수다 뭐다 대자보도 붙고 난리가 났어요. 그때만 해도 제가 방학 때 미국에 있는 지도교수랑 논문 쓰러 갔거든요. 다녀오니까 어떤 남학생이 제 연구실에 와서 계속 우는 거예요. 뭐냐 그랬더니 “교수님 저는 가정도 어렵고, 4년 동안 장학금을 받는 걸로 들어왔는데 필수과목에 F를 받아서 자격 상실이 됐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시험을 다시 보게 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너 생각해봐라, 너만 시험을 다시보고 학점을 고쳐주면 그건 공평하지 않지 않느냐고 돌려보냈어요. 매일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당시 학점이 4.0 만점이었는데 이번 학기에 3.75이상 받아오면 내가 어떤 방법으로든 장학금을 만들어주겠다 하고 보냈어요. 그리고 저는 사실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학기말 쯤 되니까 그 학생이 찾아온 거예요. 교수님, 성적 이렇게 받아왔습니다, 장학금 만들어주세요. 어떡해요. 교수가 약속을 지켜야죠. 그래서 뭐 저도 일부 보태고 이것저것 털고 뭐 여기저기 연락해서 장학금 만들어준 기억이 있습니다.

제: 학교 장학금은 자격을 상실했지만 책임을 지셨군요. 교육한 지 30년 넘으셨잖아요. 많은 학생들과 다양한 인연이 있으실 텐데, 특별히 기억나는 학생이 또 있으세요?

: 언젠가는 한 번 시험을 보느라 출석을 부르는데, 분명 여학생인줄 아는데 남학생이 대답을 해요. 클래스가 크기 때문에 구별을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쳐다봤어요, 누군가하고. 시험 끝난 뒤에 다시 누구 하고 불렀더니 또 남학생이 벌떡 일어나요. 그래서 알았다 하고 걔는 돌려보냈어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다음날 여학생을 불렀어요. 그랬더니 들어오자마자 계속 우는 거예요. 대리시험을 본 거예요. 너는 F다, 너는 징계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게까진 안 하는데 너는 이 수업 F니까 더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계속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젊은 교수로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떤 게 이 학생을 위해 교육적인가. 내가 정말 F를 엄격하게 주고 끝내버리는 게 나은가, 아니면 얘를 구제해주는 게 더 나은가, 상당히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그 학생한테 너 정말 그렇게 반성한다면 앞으로 매주 여기 와서 시험을 봐라 했어요. 그랬더니 정말 거의 10주 동안을 매주 와서 시험을 치르더라고요. 저도 지치고 힘들었는데, 얘는 진짜 경제학 공부를 하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 학생을 구제해줬어요.

제: 다음 키워드는 ‘러브레터’입니다. 연애시절에 편지 꽤 쓰셨나 봐요.

: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문예반에 들었고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글 쓰는 습관이 있어서 제가 연애할 때도 집사람한테 편지 많이 썼고, 집사람은 지금도 편지 때문에 반하게 됐다고 말해요. 저는 사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공부하느라) 집을 떠났어요. 집이 아주 시골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전화가 많이 보급되지 않아서 유일한 통신수단이 편지였습니다. 아버님도 저한테 편지를 자주 보내고 그래서 그때부터 습관이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저희 자녀들한테도, 아이들이 입시준비하고 어려울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때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 아빠가 널 떠나있지만, 멀리서라도 네가 하는 모습을 잘 지켜보고 있다, 너는 할 수 있다, 그런 편지들을 많이 썼어요.

▲ 연애시절 썼던 러브레터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정 전 총장. ⓒ SBSCNBC

: 연애시절에 쓰신 러브레터에는 어떤 감언이설을 담아서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 감언이설도 있었겠지만 저는 집사람에 대해서 정말 사랑한다 이런 것 보다는 제가 보면서 느꼈던 사물에 대한 얘기를 많이 썼어요. 그런 것들이 감동을 줬던 것 같아요.

국가도 이웃도 못 믿는 우리 국민, ‘신뢰자본’ 부족  

: 제가 ‘인생의 지혜를 나누는 강의’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국 선진화의 길’입니다. 대한민국이 산업화, 민주화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 성공적으로 했다고 평가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다음에는 뭐냐, 저는 한국사회가 가야 될 방향이 선진화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 세월호 사태나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국민들이 많이 좌절했거든요. 좌절하면서 느낀 게 뭐냐,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죠. 시스템은 기기, 체계, 제도 등 생명력이 전혀 없는 거잖아요. 시스템이 바뀌어야 된다는 얘기는 그 시스템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거든요. 세월호 사태를 비유한다면 선장에서부터 최고의 정책책임자까지 그 사건을 보는 생각의 문제거든요. 앞으로 우리가 선진화하려면 우리 국민들의 사고, 더 큰 표현으로는 문화라고도 할 수 있죠, 이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우리 언론기관에서 선진국의 조건, 중산층의 조건을 물으니까 우리 국민들은 뭐 아파트는 30평, 해외여행을 얼마나 하고 1년에 수입이 얼마냐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선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에 대해 중산층이 뭐고 당신은 선진시민으로서 갖춰야 될게 뭐냐 그러면 전혀 다른 얘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제2외국어 하나는 해야 한다, 또는 요리 하나는 해야 된다 등의 얘기가 나오고요. 공통적으로 나오는 게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된다,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어야 된다. 즉 국민들의 의식, 가치관, 문화에 관련된 내용이었어요.

: 의식과 문화에 관련된.

▲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선 제3의 자본, 신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 전 총장. ⓒ SBSCNBC

: 그렇습니다. 제가 경제학자지만 우리가 앞으로 선진화하려면 국민들의 문화, 국민들의 인식, 국민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게 인간의 생명, 인권,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것이고요, 남을 배려하는 생각이 많아야 하고, 남을 신뢰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79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습니다. 코넬 대학에 다녔는데, 캠퍼스가 엄청 컸어요. 그래서 학교 내에 버스가 다녔습니다. 처음 버스를 탔는데 저는 공짜인줄 알았죠. 그때는 달러, 다임, 쿼터도 구별을 잘 못했는데, 버스 요금을 딱 넣어야 문이 열리는 거예요. 제가 지갑을 뒤지며 당황하고 있는데, 버스에 앉아있던 서너 사람이 동시에 일어나 제 버스 요금을 내주려고 하는 거예요. 저는 정말 감명을 받았어요. 남을 배려하는 거거든요. 우리는 뭐 동전 때문에 전화기 앞에서 큰 사건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너무 신뢰수준이 낮습니다. 과거에는 경제가 발전하려면 두 가지 자본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하나는 사람, 인적자본. 또 하나는 돈, 물적 자본. 두 개의 자본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학자들은 또 하나의 자본이 필요하다, 제3의 자본이 필요하다고 얘기합니다. 믿음에 기초한 사회적 신뢰입니다. 정부, 언론기관, 모든 사회 조직에 대한 신뢰가 깊어야 되는 거죠. 그런데 그걸 구성하는 게 또 사람이거든요. 결국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깊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우선 남을 믿지 않아요. 세계적인 기관에서 조사한 것도 있어요. 전 세계의 국민들에게 ‘남을 믿습니까’ 하면 한국은 10명 중 3명만 믿는다고 그래요. 우리가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못산다고 믿는 중국은 5명이나 되고요. 신뢰수준이 제일 높은 북구는 8~9명 되는 거예요. 신뢰수준이 낮으면 경제적인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요. 제가 얼마 전에 유엔(UN)에 갔었는데 미국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서 전화상에 갔어요. 값싼 미국전화를 하나 사려고 했더니 40달러를 내면 전 세계, 국내 데이터까지 한 달 동안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는 거예요. 더 놀랐던 것은 신분증, 신용카드, 일체 요구를 안 해요. 현금 주고 딱 끝났어요. 우리는 전화 하나 개통하려면 얼마나 힘듭니까. 우리가 신뢰수준을 높이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계약을 준수해야 하고 법치를 준수해야 되고 단계가 점점 높아지거든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30여개국) 중에서 법질서를 얼마나 잘 지키느냐 해보니까 우리가 거의 스무 번째예요. 사회전체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구축해야만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 너무나 공감이 가는 말씀이십니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봤을 때 우리나라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신뢰수준이 낮은 것은 어떻게 보면 경험의 결과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국가를 믿었더니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더라, 경찰, 검찰, 언론, 사법부, 국세청, 다 신뢰를 마땅히 받아야만 하는 조직들이 나중에 보니까 국민을 배신한 그런 역사적인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는 낯선 사람보다 정부 조직을 못 믿겠다는 의견도 있잖아요. 정부기관, 권력기관 이런 사회조직들이 신뢰받을 수 있도록 개혁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 굉장히 중요하죠.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사람이니까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거든요. 각 사람이 개인적인 차원은 물론 공적인 차원에서 신뢰받을 수 있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뢰반경이 너무 좁아요. 혈연, 지연, 학연 이런 것인데, 신뢰 반경이 좁으면 그 사회가 효율적이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유능한 사람이 있어도 신뢰 반경 바깥에 있으면 그 사람을 등용 못하는 것이거든요. 갈등의 원천도 여기서 나오고. 어느 민간연구소에서 추정해보니까 2012년에는 사회적 갈등으로 잃어버리는 게 GDP의 27%였어요. 그런데 경제성장 1~2%하려면 얼마나 애를 먹습니까. 그러니까 공적인 기관, 언론, 정치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데 처음 출발은 '나'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행 발권력 동원보다 정부 재정 투입이 바람직

: 경제현안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경제의 뜨거운 현안이 구조조정입니다. 조선이나 해운, 철강 같은 거대 산업의 부실기업들이 문젠데, 모두가 유념해야 할 구조조정의 원칙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 구조조정에는 연착륙(Soft Landing)과 경착륙(Hard Landing)이 있습니다. 소프트랜딩은 시장에서 계속 이루어지는 것들이에요. 가게가 잘 안되면 문을 닫고, 다른 곳에서 문을 열고. 민간 기업은 정부의 관여 없이 자연스레 연착륙이 가능하거든요. 하지만 지금 문제는 조선, 해양 등의 분야고 대우조선해양 같은 경우는 거의 공기업이거든요.

▲ 기업 구조조정은 필요할 때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게 바람직하지만 지금은 경착륙(Hard Landing)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설명하는 정 전 총장. ⓒ SBSCNBC

: 대우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책임을 지고 있죠.

: 왜 경착륙을 하게 됐는지 살펴보면 많은 경우에 경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때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이번에 조선, 해양에 물린 은행을 보면 민간은행이 별로 없어요. 민간은행은 어떻게 했느냐?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발을 빼는 거죠. 대우조선 같은 경우에는 몇 년 전에 구조조정을 한 번 해서 공적자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이번 구조조정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게 중앙은행이 돈을 넣느냐, 정부가 돈을 넣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정부가 넣으나 중앙은행이 넣으나 궁극적으로는 다 국민의 부담입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명분 다툼일 수 있어요. 왜냐하면 중앙은행이 돈을 넣으면 중앙은행의 부채가 되고, 정부가 돈을 넣으면 정부의 부채가 됩니다.

제 생각에 더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냐 하는 큰 원칙이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조조정은 단순히 돈을 넣는 게 다가 아니거든요. 이 기업을 어느 규모로 살릴 것인가, 고용은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 어려운 기간을 극복할 때까지 기업주, 노조 등이 어떻게 고통을 분담할 것이냐 하는 것이 결정돼야 하거든요. 이렇게 큰 방향이 설정된 뒤에 돈을 누가 넣느냐를 정해야 하는데 우리는 좀 앞뒤가 바뀌었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났을 때 자동차 산업, 지엠(GM)과 크라이슬러에 정부가 직접 돈을 넣었습니다. 오바마가 그런 발표를 했을 때 다들 깜짝 놀라고 비난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GM은 거의 50조원 이상을 투입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거의 국영기업이거든요. 그리고 정부는 일체 관여를 하지 않고 경영을 모두 전문가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GM은 흑자로 돌아섰어요. 

: 경영주, 노동자 등 관련자들이 어떻게 고통분담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합의를 먼저 해야 한다, 그다음에 돈을 어떻게 조달할 건지 얘기를 해봐야 된다는 생각이시군요. 아까 잠깐 언급해주셨던 부분,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서 넣느냐, 정부가 정부 채무로 돈을 넣느냐가 중요한 문젠데요, 새누리당이 ‘한국형 양적완화’라며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겠다는 얘기를 했잖아요. 어떤 쪽이 돈을 쓰는 방식으로 더 맞는 건가요?

: 중앙은행이 지금까지 민간 기업에 직접 돈을 쓰는 사례는 없었어요. 한국은행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돈만 넣고 아무것도 안한다면 공적자금은 주인 없는 돈이 되는 셈입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려 꺼리는 것 같은데, (둘 중에서) 좀 더 나은 선택은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기업 경영에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많아요. 그리고 정부는 다른 수입도 있거든요. 반면 한국은행은 제약이 많습니다. 한국은행의 자금이 투입될 경우 기업 경영에 관여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요약한다면 지금은 돈 자체를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고통분담을 해가면서 이 기업을 살릴 것인가를 정하고, (나중에) 돈을 어떻게 넣어야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기업 부실의 책임자들 분명히 대가 치러야

: 고통분담 얘기도 거론해주셨는데, GM의 경우는 부실화에 책임 있는 경영진이 다 쫓겨났잖아요. 자본가들도 손 털고 나간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주, 혹은 경영진의 문책은 어떤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 우리나라도 당연히 소유주의 고통분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맞죠. 그렇기 때문에 큰 원칙에서 보면 정부가 공기업 같은 것을 많이 안 갖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공기업이 꼭 필요한 데가 있고 그런 부분은 적자가 나도 공공을 위해서 당연히 부담을 해야죠. 하지만 조선은 꼭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분야가 아닙니다. 그런데 공적인 기관이 맡으면서 구조조정이 안 된 것이거든요. 그런 원칙에서 보면 공공부문은 최소화하고 또 민간 부문의 원칙(부실 기업주와 경영자에 대한 문책)은 그대로 지켜야하죠. 민간 부문은 손실이 나면 책임을 지잖아요. 그런데 공적자금을 넣는다는 것은 제3자가 기업의 책임을 진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제3자에게 큰 피해를 주는 셈이죠. 공해물질로 인해 제3자가 피해를 입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죠.

▲ 경영자에 대한 책임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정 전 총장. ⓒ SBSCNBC

: 책임 있는 당사자한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고통 분담을 확실히 해야 된다는 말씀이었네요. 지금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 대규모의 실업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커요. 우리 사회가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어떤 제도적인 장치, 혹은 조치들이 필요한지 말씀해 주시죠.

: 대량실업을 막기 위해 구조조정을 할 때 감원의 시기를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이 있고요, 일정기간 실업수당을 조정하는 방법도 있고, 재훈련도 있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감원이 점진적으로 되도록 유도하고 그분들에 대해서 실업수당을 더 주거나 재훈련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실업의 충격을 줄여줄 수 있는 일종의 안전망을 확충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 구조조정이 순조롭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치권에도 어떤 역할이 있을 것 같아요. 정치권의 역할은 뭐라고 보십니까?

: 제가 항상 얘기하는 것이지만 ‘경제 문제는 경제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에 정치권이 동의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정치 원리를 적용한다면 억지로 일자리를 유지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금은 세상이 다 열려있는 경제이기 때문에 어떤 기업이라도, 국영기업이라도 경쟁력이 없으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정부가 메꿔야만 하거든요. 정치권이 너무 개입하면 안 되고 일단 돈을 넣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기업을 어떤 방식을 써서 살릴 것인지 시장 원리에 맞게 전문 경영진에게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갑내기 연세대가 스탠퍼드처럼 도약하려면

: 이제 대학 얘기로 넘어가 볼게요. 연세대학교하고 스탠퍼드대학이 창립연도가 같죠? 연세대학교도 명문이지만 스탠퍼드대학은 명실상부한 벤처기업의 산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대학 출신의 창업 기업가들이 창출한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따져보면 어지간한 나라의 몇 배다 하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우리 대학들이 어떤 개혁을 하고 어떤 노력을 하면 그런 경쟁력 있는 학교가 될 수 있을까요.

: 우선 스탠퍼드대학은 전공을 넘어선 융합교육을 합니다. 특히 인문 분야의 교육을 강화하고 다문화적인 교육을 해요. 그래서 학생들이 젊은 시절부터 세계적인, 넓은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고요. 그리고 네트워킹, 서로 협력해서 수업을 듣고요. 네트워크 스타트업 클래스라는 창업 교육도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시스템이 굉장히 개방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대학들은 학과 간 장벽이 높잖아요. 그런 것이 없어요. 또 스탠퍼드 대학 등록금이 우리나라 대학의 5~6배입니다. 130년 동안 이렇게 많은 등록금을 받았다면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얘길 합니다.(웃음) 또 하나는 우리 한국 대학은 정원이 정해져있습니다. 스탠퍼드는 총장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의 자율화와 투자가 많이 이뤄진다면 스탠퍼드 같은 대학이 나올 수 있습니다.

▲ 자율형 사립대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정 전 총장. ⓒ SBSCNBC

: 우리나라 대학이 스탠퍼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자율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맥락에서 ‘자율형 사립대’ 얘기를 하셨나 봅니다. 어떤 개념인지 설명해 주세요.

: 우리나라는 전국의 모든 대학을 교육부가 같은 기준에서 지원하고 규제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예전보다 조금 떨어졌는데도 70%나 되거든요. 세계에서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나와서 백수가 되는 현실이고요. 대학을 국제적인 경쟁력이 있게 하려면 정부가 돈을 들여 지원하지 말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특성화 대학은 특성에 맞게 정부가 지원하고요. 그래야 경쟁력도 높아지고 경제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 그 주장에 많은 분이 동의할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처럼 대학 서열화가 심한 곳에서는 더 서열화가 될 것이다, 그리고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가능성은 더 막히는 게 아니냐하는 반론이 금방 나올 것 같은데요.

: 당연히 나오죠. 그래서 자율형 사립대학에는 반드시 하나가 더 붙어서 나와야 합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책임입니다. 미국 대학들은 등록금을 굉장히 비싸게 유지하면서도 사회적인 책임을 감당하거든요. 제가 얼마 전에 앰허스트 대학을 갔었는데 등록금이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기숙사비를 포함해서 연간 약 9천만 원입니다. 그런데 ‘퍼스트 제너레이션에 대한 배려’ 얘기를 하더라고요. 무슨 얘기냐면, 부모가 대학을 못간 아이는 퍼스트 제너레이션, 조부모가 대학을 못간 아이는 세컨드 제너레이션이에요. 그래서 미국의 좋은 대학에서는 3대째 대학을 못 보낸 가정에 우선입학을 시켜주는 등 굉장히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장학금도 주고요. 소외계층도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거든요. 우리나라의 지금 제도에서는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소외계층의 입시 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지금 할아버지의 재력까지 동원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등록금 절대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소외계층을 많이 배려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 소외계층이 재정부담 없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학 서열화에는 획일적인 정책이 큰 원인이거든요. 선진국 대학 중에는 일부 학과만 유지하면서 잘 나가는 대학이 있고, 아주 작으면서 경쟁력 있는 대학도 많잖아요. 그렇게 계속 탈바꿈을 해야 하는 거죠. 지금 정책이 계속되면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크게 우려가 되고요, 그것은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인재의 경쟁력이 우려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대학의 학과 구조조정도 자율에 맡겨야

: 최근 대학가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프라임사업이라고, 취업을 고려해서 인문·예체능계를 줄이고 이공계를 늘리는 방향의 사업입니다. 그것 때문에 학내 분쟁이 벌어지기도 하고요. 총장님은 취업이 하나의 잣대가 되는 구조개편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대학 정원이 2010년에서 2020년 사이 약 30%가 감소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당장 2017년, 2018년부터 급격히 떨어질 거예요. 정부는 학령인구 급감에 대비해서 대학 구조조정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특히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인문계를 줄여야 한다고 보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최선책은 대학 구조조정 역시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고 당연히 큰 대학들은 인문, 예술 분야를 유지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외에는 특성화 대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요 대학은 고등교육, 고등학문 연구의 베이스이기 때문에 인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대학에 다양한 시각을 위한 폭넓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정 전 총장. ⓒ SBSCNBC

: 연세대 같은 명문대 졸업생마저도 취업이 잘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 취업 문제로 마음고생 많이 하고 있는 젊은이들한테 한마디 조언의 말씀을 해주세요.

: 제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에도 취업은 어려웠습니다. 우리 때는 부모들도 어려웠고요. 그러나 지금은 어려워도 평균적으로 가정이 괜찮아졌고 주변에 기댈 데가 있습니다. 위기에 좌절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고요. 제 주변에 새 연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는 바람 부는 날 집을 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집이 안 떨어진다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끈질기게 노력하면 결실이 있을 것입니다.

제정임의 마침표: 대중의 눈높이에서 지식의 보따리를 풀어주는 경제 이야기 박사 정갑영.


경제방송 SBSCNBC가 지난 3월 24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을 신설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부터 50분간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내용을 전재한다. (편집자)  

* 전체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800313

편집 : 문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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